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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떤책방 Aug 17. 2023

있었는데 없어졌어요


직장 동료가 알려준 제일 병원의 외래 진료에서도 수술을 피할 수 없음을 알게 됐다. 며칠 전 갔던 동네 산부인과에서도 수술을 하라고 했는데, 제일병원에서도 마찬가지의 진단을 내렸다. 월경혈*이 어떤 이유에서 그런지는 명확히 알 수 없으나 내 난관에 붙어 4cm의 혹을 만들어서 수술로 떼어내는 수술이라 했다. 몇 달간 허리가 끊어질 것 같은 극심한 통증이 이것 때문이었구나, 원인을 찾아서 다행이었다. 당시 결혼한 지 6개월도 안 된 신혼이었기 때문에 임신에 대해 걱정을 내비쳤는데, 의사는 심각한 것도 아니고 수술 이후에 임신 가능성이 훨씬 높아질 거라 했다. 그땐 그 말을 진짜 믿었다. 지금이라면, 훨씬 신중하게 결정했겠지만.


*여자들은 어느 정도 다 알겠지만, 월경혈은 액체의 피로만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임신을 위해 자궁내막이 두꺼워진 부분들이 더 이상 임신에 필요 없다고 여겨져 떨어져 덩어리처럼 나오기도 한다. (자세한 건 의학 정보 참고)





수술 후 깨어났더니, 몇 달 간이 통증을 압축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무통 약이 링거로 함께 달려있어, 30분에 한 번은 그 버튼을 눌러 잠깐의 평화를 찾을 수 있었다. 남편이 내가 다시 잠들지 못하게 자꾸 깨웠다. 나는 알겠다고 하면서도 자꾸 눈이 감겼다.


얼마 있다가 간호사가 와서 소변을 봐야 한다고 했는데, 나는 요의를 느껴서 화장실을 왔다 갔다 했으면서도 누가 내 방광 밸브를 꽉 잠근 것 같았다. 간호사가 몇 시간 동안 왔다 갔다 하며 체크했는데, 내가 노력해도 안 된다고 말했더니 소변줄을 가지고 와서 해결해 주었다. 창피한 것보다 너무 신기했다. 산부인과 병동에 입원한 이상 웬만한 일에 부끄러움이 없어졌는데, 행동 심리학에서 나쁜 습관이나 특정 공포를 없앨 때 사용했다던 지금은 폭력적이라고 사용하지 않는 홍수 기법 같았다. (아이가 "쥐가 너무 무서워요" 하면, 아이를 쥐가 가득한 방에 가둬버리는 거다. 그러면 자극이 홍수처럼 밀려와서 오히려 쥐에 대한 공포가 사라진다는... 아주 짧은 시간에 해결되는 치료 기법이지만, 충격으로 인한 무감각 무감동의 부작용이 크다.)


그날 밤을 넘기고 아침이 왔다. 의사는 내 나팔관을 잘랐다고 했고, 혹시 나팔관에 붙은 혹이 암세포인지 알아보기 위해 조직 검사를 할 수 있는 곳에 보냈다고 했다. 의사가 간 뒤 남편이 그걸 본 이야기를 했다.


"수술실 앞 보호자 대기실에 앉아있는데, 갑자기 보호자를 부르더라고. 가봤더니, 수술로 제거한 부분이라면서 보여줬는데, 시뻘겋게 뭐가 있는데 사실 뭐가 뭔지 모르겠더라."


나는 내 속에 있던 걸 바깥에 꺼냈다는 그것에 대해 신기함을 느끼면서도 슬슬 화가 나기 시작했다. 내 몸의 일부인데도 내 통제 권한 밖에 있었던 그 순간이 어쩔 수 없다면서도 화가 났고, 혹만 제거하면 된다고 해놓고 나팔관을 댕강 잘라버린 후 아무렇지도 않게 얘기하는 의사 때문에 화가 났다. 병원이라는 곳은 올 때마다 내 몸에 대한 자유를 내게서 빼앗아가는구나. 나는 그 대가로 돈을 지불하고 낫기를 구걸하는 느낌이었다.


결과적으로 그 이후로 난 임신이 어려워졌다. 시험관 시술을 6년 가까이했지만 나이가 들기 때문에 급속도로 가능성이 희박해졌다. 시험관 시작할 때부터 AMH 수치가 0.00, 0.01이라 가능성이 낮은 거였지만, 그게 34세일 때에는 '그래도 또 한 번!'이라고 의사도 힘내자 하지만, 마흔일 때에는 의사가 '권하지 못하겠어요.'라고 말한다.


나의 동년배들에게서 나와 같은 비슷한 사례를 많이 찾아볼 수 있다. 사회생활을 하던 중 임신하기 전 자궁내막증이나 자궁근종을 제거하고 이후에 임신이 어려워지는. 수술실에서 오래 일했던 간호사 지인이 있었는데, 아무래도 의료 수가가 정해져있기 때문에 그렇게 공격적인 제거를 했을 거라고 했다. 나팔관을 댕강 잘라서 20분 만에 수술을 끝내든 공들여 하나하나 어렵게 병변을 제거해서 한 시간이 걸리든 의료 수가는 정해져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병원과 의사 입장에서 가장 효율적이고 깔끔한 방법을 택하겠지. 그리고 그 대가는 지금 이렇게 개인의 고통으로 치르고 아주 작은 부분 사회가 보조해 주는 '시험관 시술 비용'으로, 밑 빠진 독에 물 붓게 되었다. (현재는 난임 환자의 급증으로 재생산에 관련된 부위의 병변을 공격적으로 제거하지만은 않는 걸로 알고 있다.)


만약 남성의 불알이었어도, 자신의 장기였어도 이렇게 공격적으로 제거했을까?


나는 32살 자궁내막증 수술받은 뒤로 마흔이 된 현재까지 여성 호르몬의 급감으로 남들보다 빠르게 늙어갔다. 그 와중에 폐는 호르몬으로 인해 계속 고장이 났고 재수술을 할 수밖에 없었다. 창밖에 해가 지는 걸 보면서 가슴이 쿵쾅거리고 식은땀이 흐르다가 땀이 멈추면 이런 반복이 너무 지쳐서 운 적도 있었다. 어찌해볼 수도 없이 나에게서는 시간이 빨리 흘러가는구나.



외출할 때마다 손수건과 부채를 챙겨 다니면서 사람들이 "땀을 흘리는 거 보니, 몸이 건강한가 보네."라고 웃으며 하는 얘기에 함께 웃었다. 한 명씩 붙잡고 "저 몸이 안 좋아서 그런 거예요."라고 하기도 싫고, 한 번 그렇게 말하고 나면 만날 때마다 아픈 사람으로 대하는 것도 싫었다. 살아있는 인간으로서가 아니라, 병변 제거에만 집중하는 의사가 자꾸 오버랩되었다. 지금이라면 '그럴 수도 있지'라고 넘어갈 수 있는 많은 부분이 호르몬으로 힘든 그때에는 가능하지 않았다. 내 몸이 시간을 건너뛰다시피 빠르게 앞으로 달려가고 있는데, 내가 할 수 있는 건 겉으로 겨우 '평정해 보이는 것' 뿐이었다.


현재는 시험관 시술을 더 이상 하지 않고 내 호르몬 증상을 완화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 하루 한 알로 찾은 평안은 값진 것이었다. 내일의 계획을 세울 수 있게 했고, 약속을 지킬 수 있게 했다. 내 얼굴을 하고 있는 미지의 존재가 내 머리채를 끌고 어둠 속으로 끌고 가는 느낌도, 날 낭떠러지에 던져버리는 느낌도 더 이상 들지 않았다. 나는 이제 통일된 '나'로 살게 되었다. 내 글 또한 분절되지 않고 점차 일관성을 갖게 되었다.


그럼에도 약으로 완벽하게 통제할 수 없는 호르몬의 반응에서 그런 건지, 아님 내 무의식이 그런 건지... 더 이상 시험관 시술을 받지 않겠다는 내 선택으로 내 미래에 존재할지도 모르는 아이를 못 만나는 거 아닌가라는 두려움이 몰려올 때가 있다. 그럴 때면 다시 내 얼굴을 하고 있는 검은 존재가 서서히 나에게 그림자를 드리우는 것 같다.


고양이 영상.

고양이 영상을 보면, 마음이 편안해진다. 이렇게 세상에 사랑스러운 존재가 많다는 것에 감사하게 된다. 그리고 엄마. 막내딸인 날 사랑해 주는 엄마를 떠올려본다. 그럼, 점점 내 안에 빛이 커져가는 것 같다.





이 글의 제목을 마지막에 적으면서 뭘로 할까 고민했다. 제목이 코믹해서 이 글의 무게가 그나마 가볍게 느껴진다면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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