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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계와 움직임, 겨울 햇빛

[조르바의 춤] 1.

by 하이디어

서둘러 걸어 도착한 곳에는 이미 사람들이 원을 둘러앉아있었다. 나도 그 원을 잇는 존재로 앉아, 주변을 둘러보았다. 한 면을 채운 창들을 통해 겨울 오후의 귀한 햇볕이 들어오고 있었다. 햇볕. 햇빛이 부채꼴 모양으로 펼쳐진 모양을 가리킨다 했다. 그래, 그날은 햇볕을 만났다.


원으로 앉아있는 사람들 중 누군가는 다시 만나는 인연으로 인사를 나누고 있었고, 나도 아는 얼굴과 짧게 인사를 나누었다. 그러나 나는 방금까지 있었던 지하철 안과 지금이 다르지 않은 것 같이 느껴져, 사람들과 이야기 나누는 게 어색하기만 했다. <조르바의 춤> 시간이 진행되어도 한동안은 그랬다.


<조르바의 춤>은 5, 6년 전에 참여해 보고, 오랜만이었다. 기억의 조각이지만, 움직이는 시간에서 나는 내 몸에 대해서, 타인의 움직임에 대해서 언어가 아닌 형태로 받아들이고 있었다. 그때의 나는 남편과 엄마에게 그런 말을 한 적이 있었다.


"내 몸이 나를 공격하는 것 같아."


한 달의 반 이상을 두세 시간밖에 자지 못했고, 폐에 구멍이 생기는 기흉은 자꾸 일어나 응급실에 가야 할 때도 있었다. 결국 기흉은 재수술을 해야 했고, 그 뒤에도 기흉은 계속 발생했다. 시도 때도 없이 식은땀을 흘렸고, 자다가 공포에 질려 일어날 때도 있었다. 집에서 TV나 책을 읽다가 창을 통해 날이 저문 것을 확인하자마자 비명을 질렀다. 좋지 못한 생각이 떠올라서도 아니고, 그저 날이 저물었다는 것을 본 것만으로 불안에 떨었다. 호르몬이라는 게 이렇게 나를 좋지 못한 자리로 이끌고 재규명한다는 걸 알게 됐다. 그러면서도 '아직은'이라는 생각으로 시험관 시술을 하고 있었다. 내 몸은 나를 위협하고 (뭘 위해서 인지도 모르게) 굴복시키게 만들려는 것 같았다.


그 시절 읊조리듯 주변 사람들에게 고백하던 게 또 있었다.


"나 혼자 아주 긴 시간을 살고 돌아온 것 같아. 그런데 나에겐 기억이 없고 오래 살았다는 느낌만 남은 거야."


서른 중후반의 몸이지만 스스로 느끼기엔 아흔의 할머니가 있는 것 같았다. 영화 마지막에 사랑했던 기억을 모두 잃고 이유도 없이 갑자기 우는 인물처럼. 나는 무얼 잃어렸는지도 모르면서, 떠올리지도 못하는 중요한 걸 잃어버린 사람이 되어 울었다.



7년 간의 시험관 시술을 그만하겠다고 선언하고, 그 뒤부터는 내 평안을 우선시하기도 했다. 그 뒤로도 기흉으로 응급실을 가고 입원을 하기도 했지만, 다행히 위험한 적은 없었다. 나를 위한 약을 먹고, 천천히 몸은 나에게 돌아오는 듯했다.



그럼에도 나는 '몸'이 무섭다. 내 몸도 그렇지만, 타인의 몸도 나에겐 두려운 것이다. 사람이 지나치게 많아서 지하철 안에서 옴짝달싹 못하게 껴있는 경우보다 적당히 사람이 많고 공간도 있는데, 자꾸 공간을 확보하려는 나에게 가까이 다가오는 사람들의 '몸'이 싫다. 더 이상 오지 말라고 소리치고 싶을 때가 여러 번이었다. 그 몸이 남자인지 여자인지, 노인인지, 청년인지는 별로 상관없다.


나는 경계에 대해 생각해 본다.


조르바의 춤에서 짝꿍과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며 춤을 따라 하고 내 춤을 짝꿍이 따라 하는 걸 보며, 일정한 경계가 나에게 필요하다는 것을 생각했다.


중학교 때까지는 1년에 한 번씩 고열로 고생했는데, 보통 새벽에 아팠고 저녁이 되면 조금씩 나아졌다. 아플 때에는 빛도 고통스러워서 커튼을 친 어두운 방 안에서 홀로 머문다. 자는 것이 일이니, 잠을 많이 잔다. 잠과 잠 사이에 문 밖으로 가족들이 켜놓은 TV 소리가 들렸다. 나도 저기에 있고 싶은데, 하면서 잠에 다시 들곤 했다.


엄마가 내 땀을 닦아주고, 매만지는 손길에 잠에서 깼을 때 이젠 아프지 않다는 느낌과 엄마의 손에서 느껴지는 따뜻함이 좋았다. 새우처럼 모로 누워 자는 내 등을 쓸어내리는 투박하지만 온기 있는 엄마의 손.


평소에는 엄마든, 남편이든 아무리 가까워도 내 몸을 만지는 것에 대해 경계한다. 타인의 몸이 닿을 때 자주 통증을 느끼기 때문이다. 아무래도 촉감이 예민한 것 같다.


그런 몸에 갈비뼈와 뼈 사이에 가장 큰 흉관을 삽입하고 진통제 없이 수술을 기다렸던 적이 있었다. 내 인생에서 가장 고통스러운 시간이었다. 숨을 쉬기도 어려웠고, 돌이켜보면 불필요하기까지 한 의미 없는 엄청난 통증이었기 때문에 화가 나기도 한다. (수술 후 흉관 삽입을 하면 진통제를 먹을 수 있는데, 응급이 아니었기 때문에 굳이 수술 전에 흉관 삽입을 할 필요는 없었다. 타인의 고통에 무감각한 의사 때문에 겪은 고통이었다.)


내 피부를 째고 뼈와 뼈 사이를 헤치고 폐에 꽂아둔 관이 주는 고통의 기억으로, 나는 몸의 경계를 지나치게 지키고 싶어 하게 됐는지도 모른다.




눈을 감고 뒤로 걸으며 짝이 내 뒤를 봐주며 따라 걸을 때 자유로움을 느꼈다. 내 손 끝을 잡은 그 사람이 나를 지켜줄 것이라고 내가 믿고 있다는 게 좋았고, 부딪치더라도 괜찮아서 좋았다. 모두가 천천히 걸으니 타인의 몸과 내 몸이 부딪쳐도 다치지는 않았다.


눈을 감은 짝을 따르며, 그와 내 손에 닿는 햇볕을 느끼는 게 좋았다. 아주 미세한 온기를 가진 하얀 햇빛. 겨울의 햇빛이 그렇다. 겨울에는 햇빛을 만나기도 어렵고 만난다 하더라도 짧은 시간 머물다 사라지곤 하지만, 여름의 햇빛과 다르게 창을 통해 공간을 빛으로 가득 메운다. 창으로 들어오는 하얀 햇빛의 길이가 길다. 바깥에서 햇빛 아래를 걸을 때에는 거친 추위로 인해 햇빛의 미세한 온기는 느끼기 어렵다. 그래서 겨울 햇빛의 여린 온기를 느낄 수 있을 때, 나는 내 민감한 촉감에 감사하게 된다. 때때로 날카로운 겨울바람으로 고통스러워한 적이 많았으나 고통과 고통 사이에 겨울 햇빛이 있었음을 알게 된다.




오늘 낮에 이사 후 처음 가보는 철길 옆 동네를 걸으며, 내 몸에 대해 생각해 봤다. 내가 움직이고 싶은 대로 움직여야지. 빠르게 걷기도 하고, 이상하게 걷기도 하고, 느리게 걷기도 하면서. 팔을 좌우로 흔들어보기도 했다. 몸에 힘을 주고 있다가 놓기도 하면서.


철길 옆은 짧고 엄청난 소음과 긴 정적이 함께 했다. 소음과 정적이 함께 있다니. 나에게도 고통과 감사도 함께 했었지. 겨울이 바람과 햇빛이 함께 하듯이. 멈춰있는 것이 아니라, 흘러가면서.


처음으로 영원하지 않은 것에 대해 편안하게 받아들이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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