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시차>
연극 <시차>, 두산아트센터. 2024. 10. 30. 수요일 관람.
시차라는 단어를 입 안에서 굴리며, 연극을 보기 시작했다. 1부는 주로 1994년에 대한 이야기다. 무대 위에 날짜들이 표시되는데, 아직은 어떤 의미인지 모른다. 날짜가 연극 내에서 중요한 역할을 할 거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평소 유독 날짜와 사람 이름과 같이 ‘명명’하는 것에 대한 기억을 잘 못하는 나로선 날짜의 의미를 못 알아볼까 봐 살짝 불안했다.
2부는 주로 2014년의 이야기다. 1부의 1994년 인물들이 20년이 흐른 2014년에는 어떤 모습이었을까. 인물들은 시간 사이에서 어떤 변화를 맞이했을까.
1부와 2부 인물들의 공통점은 ‘상실’이다. 아주 중요한 인물들, 심리학에서는 ‘의미있는 타인들(significant others)’을 잃은 사람들이 살아가는 이야기다. 의미있는 타인의 상실을 담담하게 받아들이는 사람도 있지만, 너무 큰 슬픔에 돌아오라고 얘기하기도 하고, 상실을 극복하지 못해 말없이 괴로워하기도 한다. 시간의 변화만 있을 뿐, 이들은 상실로 연결되어 있다.
어떤 날짜는 기억력 좋지 못한 내가 알아보기도 했다. 성수대교가 붕괴한 1994년 10월 21일, 삼풍백화점 건물이 무너진 1995년 6월 29일, 제주도에 도착하지 못하고 바닷속으로 침몰한 2014년 4월 16일 세월호 침몰 사고, 2022년 10월 29일 이태원 참사가 그것이다. 내가 기억하지 못하거나 알아보지 못한, 내가 태어나기 전에 있었던 재난도 있었다. 이 연극에서는 그 재난을 개별적인 사건으로 보지 않는다. 소중한 사람들을 잃어버린 세상에 남은 사람들끼리 또 연결이 되어, 그들의 상실로 인해 서로 보살피고 보살핌을 받고 있었다. 연극 <시차>는 우리 모두를 그 사건들과 연결시키고 슬퍼하게 하지만 서로가 아픔을 나눌 수 있는 존재임을 잊지 않게 해 주었다.
개인적으로 연극에서 인상적이었던 것 중 하나는 무연고 사망자의 장례식이었다. 최근 사회적 질병으로서의 외로움을 논문으로 쓰기도 해서 그런지, 무연고 사망자의 마지막을 외롭지 않게 그들의 장례식에 가는 정현이 인상적이었다. 나도 장례식장 어느 작은 곳에 있을 무연고 사망자의 죽음을 기리고 싶었다. 죽은 그의 이름을 불러주는 사람이, 그의 죽음을 알아봐 주는 사람이 되고 싶다.
두산아트센터에서 하는 <시차>, 안 본 사람 없게 해 주세요!
(1부 : 90분, 인터미션 : 15분, 2부 : 60분 진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