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춘식할아버지를 기억하며..
몇 해전 일본 강제징용 대상자들의 배상 소송에서 한국 대법원이 피해자에게 각각 1억 원씩 배상하라는 판결로 한일관계가 급속히 악화되었다. 당시 원고 중 유일한 생존자인 이춘식 씨는 미쓰비시제철(현재 일본제철; Nippon Steel) 가마이시 제철소로 끌려갔다. 기사에 의하면 탄차에 석탄을 퍼 올리거나, 코크스를 고로에 장입 하는 일 그리고 고온의 쇳물을 운반하는 등의 단순하지만 힘들고 위험한 노역에 참여했다. 강제동원에 대한 일본의 시각은 차이가 있지만, 지금의 언어로 해석해 보면 ‘취업비자 형식으로 들어와 엄중한 감시하에 더 이상 원치 않는 노역에 지속적으로 투입‘된 것이다. 현재는 이러한 작업이 모두 기계화 자동화되었고 사람이 직접 참여하는 것은 상상이 안 되는 일이다. 누군가는 해야 할 일이었겠지만 상대적으로 일본인들은 기술 활용 및 관리직에 투입되었을 것이고, 설사 이런 업무를 맡겨도 정상적인 고용관계에서는 충분히 노동강도와 근무시간 그리고 노동선택등이 가능했을 것이다. 이미 고인이 된 다른 징용자들은 각각 야하다 제철소와 오사카제철소에서 열차 선로 조작, 고로 석탄 장입 등 현재는 기계화, 자동화된 반복적이고 힘든 작업에 동원되었다. 피고가 된 회사는 몇 에 걸쳐 사명이 바뀌었지만 여전히 일본을 대표하는 철강사로서 군림하고 있고 강제징용으로 노역에 시달린 곳이 대부분 일본 제국의 제철소이었던 것은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일본의 근대화와 이에 따른 제국의 확장을 위한 전쟁을 수행하기 위해서는 중공업, 특히 철강산업을 기반으로 확대하였다. 따라서 자국의 여러 곳에 대규모의 제철소를 급속히 확장하는 동시에, 강제 점령된 조선의 북쪽에 별도의 제철소인 겸이포(兼二浦) 제철소를 운영하였다. 본래의 지역명칭이 송림동이기에 해방 후 송림제철소로 개명되었지만, 최초의 이름이 일본식으로 지어진 것은 의외였다.
기록을 확인해 보니 겐지(兼二)라는 이름을 가진 일본군 초급 장교 와타나베 겐지가 이 지역을 조사한 후 최적지로 확정한 것 때문에 그의 이름으로 지역과 제철소 명칭을 가지게 되었다는 가슴 아픈 역사를 가지게 되었다. 현재의 용고로 규모로 보면 1/20 규모의 작은 생산량을 가진 제철소이지만, 당시로서는 하루에 20톤을 생산할 수 있는 획기적인 근대식 제철소이었다. 문제는 고열과 분진 그리고 중량물인 철광석과 석탄을 이용하여 쇳물을 이리저리 옮겨야 하는 생산 흐름을 대부분 인력에 의존했다는 것이다. 제철소의 중심공정인 코크스로, 고로 등은 형태상 높은 구조물이기에 연, 원료가 되는 철광석과 석탄은 연속적으로 공급해야 하는데 전력수급도 부족하고 기계화가 덜된 그 시절에는 상당 부분 노동력에 의존하는 방식으로 운영되었다. 그 때문에 석탄을 대규모 연료로 사용되는 공정 특성상 대규모 채탄작업과 이를 이용한 제철소 운영을 위해서는 근대 유럽제국들의 아프리카 노예를 동원한 삼각무역 방식처럼 식민국의 값싼 노동 인력을 손쉽게 동원해야 했다. 몇 건의 자료에 의하면 겸이포제철소의 쇳물은 점령지 조선땅의 산업에 활용되지 않고 일본 해군 무기 제조를 위한 기반 원료로 활용되었다고 한다. 당시로서는 철강의 가치가 매우 높아 큰 수익이 많이 발생했지만 기계화등의 재 투자보다는 생산량 증대에 전념했기에 인력충원과 초과근무는 일상이었다. 하지만 상대적으로 저임금이었지만 변변한 일자리가 없었던 당시 시대상황에서는 제국 철강사에서 일할 수 있다는 채용광고에 손쉽게 손을 들 수밖에 없었던 100여 년 전 이 땅 선조들의 절박한 삶을 이해할 수 있다.
앞서 언급한 일본제국이 운영한 연산 20만 톤 규모의 철강제조설비는 북한 땅에 건설되었기에 해방 후 북한의 중공업 산업에 활용되어 남한보다는 빠른 공업화에 활용되었다. 남한에서는 뒤늦게 1960년 후반부터 기간산업을 구축하기 위한 선결 산업으로 일관제철소 건립을 추진했다. 자본도 연원료도 근대제철기술도 전무한 상황에서 시작된 연산 100만 톤 규모의 용광로를 비롯한 제철설비를 아이러니하게도 일본그룹의 도움으로 설비도입과 건설이 추진되었다. 이후 현대식 제철기술을 익혀 20여 년만에 세계 철강사에 유래없는 고속 성장 끝에 포항과 광양에 가장 경쟁력 있는 제철소 1,2위로 거듭나게 되었다.. 그 과정에서 성장 속도만큼이나 빠른 신 기술 도입과 자력개발을 통해 유래없는 새로운 공정을 개발하여 우리만의 공정을 상용화시켜 가동 중이다. 하지만 여전한 질문은 ‘왜 선진국은 이 공정을 사용하지 않는지’였다. 새롭게 시작하고 개발한 고유기술이 서구와 일본에서 도입된(알려진) 기존 공정과 비교하는 오래된 관행은 우리 사회가 가진 익숙한 질문이자 평가하는 가장 흔 한 잣대이다. 대조적으로 이 땅의 반쪽인 북쪽에서는 고집스럽고 융통성 없이 ‘주체적인’ 개발에 몰입하는 ‘관념의 과도함’으로 한 발짝도 나아갈 수 없는 함정 속에 갇혀 있다. 그런데 2025년 현재 대한민국의 철강산업은 최고의 경쟁력을 보유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탄소를 혁신적으로 감축한 철강재에 대한 전환요구와 대륙별로 불록화되고 있는 지역중심시장화로 난관에 봉착해 있다. 그야말로 매서운 한 겨울 눈폭풍 속에서 맨 앞에서 서서 분투하고 있는 모습이다.
사족: 이춘식 할아버지는 2025년 1월 27일 102세를 일기로 돌아가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