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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리는김작가 Nov 01. 2017

#1. 아버지 보러 가는 길

<  시가 내게로 왔다- 나의 첫 시 이야기 >



아버지 보러 가는 길    



           

김영주                     





굽이

또 굽이

휘어진 산길따라 나홀로

그리운 아버지 보러 가는 길     



투명실처럼 이어진

아버지와 나의 간격

그 사이 놓인 실타래에서

긴 실 둘둘 말아 올리며 따라가듯

그리운 아버지 보러 가는 길     



아무도 오르지 않는 이른 산길을 돌고 돌아

새벽이슬 마르지 않은 풀길 사이로

내 발걸음은 훠이훠이

살아생전 즐겨드시던 막걸리 사들고

눈에 넣어도 안 아프다시던 애틋한 막둥이 기다리실

그리운 아버지 보러 가는 길      



왔냐…

늘 그렇게 뵐 때 마다

나의 긴 인사에도 짧게 말씀하시던

그저 엷은 웃음만 띄우시며 바라보시던 그 모습

그 모습 유독 떠오르는,

보고 싶은,

그리운 아버지 보러 가는 길            



             





그 날은 아침 일찍 아버지를 홀로 보러가고 싶었다.

오랜만에 내려간 고향집.

새벽부터 부산하게 움직이시는 엄마의 소리에 부시시 잠을 깬 나는,

'엄마, 그냥 지금 일찍 저 혼자 아버지 한테 다녀올까 봐요.'

했다.

엄마는

'그래라'

하시며 별 말씀없이 그날 따라 허락을 하셨고, 나는 아이들과 남편이 깨기 전에 후딱 다녀올 생각으로 주섬주섬 아버지께 가져갈 음식들을 챙겼다. 그리고서는 다녀오겠습니다, 하고 차 키를 들고 집 문을 나섰다. 새벽 5시즈음이던가 그래도 한여름이라 날은 제법 훤해 아주 어둡지는 않았다.  






차를 몰아 그렇게 나홀로 아버지를 뵈러 산으로 가는 길.

고향집에서 30여분을 달려야 한다.

시립묘지에 아버지가 계신다.

벌써 17년째이다.

나는 익숙하고 정겨운 고향 골목길들을 따라 운전을 한다. 그렇게 곧장 쭉, 큰 길을 따라 한 10여분을 가다 보면 굽이 굽이 산으로 이어지는 길이 나온다.




산으로 이어지는 길 옆에는 올망졸망 그야말로 오래된 시골의 집들이 한가득이다.

가다보면 정겨운 전봇대도 나오고 허름한 담장들도 보인다. 졸졸 흐르는 시냇물, 큰 나무들, 길가에 아무렇게나 세워진 오토바이와 자전거도 보이고 이어서 잘 정돈된 논이 보이고  여기 저기 아무렇게나 흩어져있는 농기구들과 밭이 보인다. 그 옆에 풀과 나뭇가지 등을 잔뜩 실어놓은 트랙터들도 보인다.  모두 모두 다 보인다. 도시에서는 흔히 볼 수 없는 정겨운 풍경들이다.

그 풍경들을 눈에 담으며 나는 이내 굽이친 높은 산길로 접어든다.

아... 마음이 왠지 툭 놓인다. 상쾌하다.

아마도 그리운 아버지를 보러가는 길이기 때문이리라. 그리운 아버지 곁으로 가까이 다가가기 때문이리라.




가는 길에 아버지 생전에 좋아하시던 막걸리를 하나 사든다. 어릴 적 막걸리 심부름을 종종 했던 나인지라 그리 좋아하지는 않았지만 막걸리를 사는 일은 늘 익숙하다. 그렇게  좋아하시던 막걸리를 사서 손에 쥐어 들고 차에 올라타 운전대를 몰아 산에 오른다.




산의 중턱 쯤 갔을 때다.

문득 아버지에게 가는 길이 나와 연결된 어떤 보이지 않는 긴 실을, 긴 끈을 휘감아 올라가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겁이 많은 내가 홀로 이렇게 아무도 없는 이른 새벽에 시립묘지를 향해 가다니.  아버지를  보겠다는 생각 하나로 아주 깊은 산 속으로 어찌 보면 무섭기 그지없는 데 아무렇지않게 공동묘지를 찾아가는 일은, 마치 아버지와 나 사이에 보이지 않는 그 긴 실을 누군가가 잡아 당기는 게 아닌가 싶었다.



그  알 수 없는 힘으로 그 날 나는, 아무 무서움도 없이 마냥 즐거운 마음으로 아버지를 만나러 가면서 하늘이 맺어준 아버지와 자식의 관계를 생각했다.

끊을래야 끊을 수 없는 그 천륜의 무게.

불현듯 자식으로서 돌아가신 아버지에 대한 한없는 그리움도 느꼈다. 평소 살아계실 때 유독 별 말씀이 없으시던 아버지와 그 아버지의 막내에 대한  내리사랑이 떠오르면서, 나도 이제 그 사랑의 깊이를 이해할 수 있는 나이가 어느 새 되었구나 싶어 한없이 가슴이 먹먹해지고 눈시울이 뜨거워졌었다.



바로 그 때.

운전대를 잡고 산 언저리 어딘가를 바라보며 운전을 하고 있는 때, 이 시가 내게로 왔다.

어디선가 저 시들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나는 어디선가부터 흘러나오는 이 시 구절을 가만가만 머릿속으로 받아적었다. 운전중이라 손으로 직접 받아적을 수도 없었고 차를 멈추면 시도 멈출 것만 같았다.  다만 이 시를 잊지 않아야겠다는 생각에 몇 번을 머릿속으로 되돌려가며 시의 구절들을 기억해두었다. 그렇게 흘러나오는 시들을 몇 번이나 머릿속으로 암송하고, 산에 가서 아버지를 뵌 후 다시 산을 내려와 집에 오자마자 쓴 시가 바로 지금 이 시  <아버지 보러 가는 길> 이다. 

나의 첫 시다.

감사합니다 아버지.

아버지께 이 시를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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