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하는 우체통
'모난 돌이 정 맞는다'는 말이 있다. 어디서든 튀지 말라고 가르치고 감정을 드러내지 말라고 말하고 지나치게 솔직하지 말라고 말한다. 요즘은 거기다 혼자 있는 시간을 기꺼이 여겨야 한다고 말한다. 사람들과 만나고 돌아와서 허전함이 클 때 그 말은 효과적으로 내 마음을 위로한다. '다음부터는 사람들 모임에서 내 생각을 표현하지 않아야지. 쉽게 마음을 터놓지 말아야지.' 나만 그런 생각을 하는 게 아니었다. 어쩌다 사람들과 마음 속을 터놓는 시간을 맞이했을 때 많은 사람들이 나와 비슷한 생각을 갖고 있었다.
사람들이 말하는 걸 지켜보기만 하고 내 감정을 드러내지 않으며 좋은 사람으로 남는 게 좋은 것일까. 내 마음 속에 울렁거리는 감정을 드러내지 않고 주변을 살피며 관계를 유연하게 맺는 게 좋은 것일까. 그렇게 질문하면 분명 그건 아니라고들 말할 것이다. 그런데도 우린 내 감정과는 무관하게 다른 사람의 시선을 의식하고 다른 사람이 나를 어떻게 볼 것인가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그러다 보니 내 감정을 들여다볼 기회가 많지 않다. 모임에서는 대체로 공부든 경제적으로든 외모든 권력이든 남보다 낫다고 흔히 말하는 사람들이 주관하는 경우가 많다. 어쩌다 말 한 마디를 하면 그게 맞는 말이라고 하더라도 신뢰를 얻기가 쉽지 않다. 그래서 나온 말이 목소리 큰 사람이 이긴다는 말이다. 그 말 속엔 목소리를 크게 낼 수 있는 자격이 있는 사람이 있다는 말이기도 하다. 그런데 이런 이야기를 하면 불끈 불쾌한 감정이 솟구치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꼭 그렇지만은 않다고. 정말로 그럴까. 이야기를 주도하다 집으로 돌아와서 후회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 이유를 들여다보고 그 감정을 들여다보면 답은 나와 있다.
독일 영화 '나의 구원자(A Fish Swimming upside Down)'를 보면 사람은 얼마나 자신을 철저히 속이고 살 수 있는지 알 수 있다. 안드레아는 장애인 시설에서 일하는 교사다. 그들과 함께 있을 때의 안드레아는 너무 맑고 밝으며 선한 사람처럼 보여진다. 그러다 두 남자, 아빠 필립과 아들 마틴 두 사람 모두에게서 사랑을 받게 되자 안드레아는 조금씩 달라진다. 어떤 모습이 진짜 안드레아일까. 아들과 아빠와 관계를 맺고 그걸 숨기며 두 사람 모두에게 좋은 사람이고 싶었던 안드레아는 좋은 사람일까, 마틴을 죽음에 이르게 했으니 나쁜 사람일까. 영화가 끝난 후 안드레아의 묘한 분위기와 마틴의 방황과 우울함이 고스란히 남아 인간이 얼마나 부조리한 존재인지 다시금 생각하게 된다.
평생을 가난하게 살게 해서 자식에게 미안했던 전직 도둑 아버지가 유언으로 자식에게 훔칠 게 많은 집 금고의 비밀 번호와 그 집이 비는 시간과 훔치는 방법을 남겼다면 우린 그 아버지를 좋은 사람이라고 하지 않는다. 또 일에 대한 대가를 아주 많이 주면서 나쁜 일을 공모하길 권하는 친구를 의리가 있다거나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아들은, 친구는 당장의 가난을 벗어날 수 있어서 아버지를, 친구를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좋은 게 좋은 거라는 건 아주 고약하게 쓰일 수도 있는 함정이 있다. 사람들은 흔히 말한다. 좋은 게 좋은 거니까 어디서 튀게 자신의 주장을 하지 말라고. 일본에서만 사람들이 자신의 감정을 드러내는 걸 꺼리는 게 아니라 한국도 솔직한 감정 표현이나 불필요한 사람들과의 갈등을 피하길 원하고 쉽게 요구한다. 불의를 보고도 공정하지 않는데도 다툼이 싫어서 튀는 게 싫어서 아무 말하지 않는 사회는 행복하지 않다. 침묵하기를 강요하고 혼자 있는 게 더 낫다고 하는 사회도 건강하지 않다. 꼭 좋은 게 좋은 거로 살 필요는 없다. 그렇지만 사람들의 시선으로부터 완벽하게 자유를 찾을 수 없다. 우리의 딜레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