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읽는 우체통
클레오파트라의 코가 1밀리만 낮았어도 역사가 바뀌었을 것이라는 이야기가 있다. 역사는 가상이 없다. 이미 일어난 일을 기술한 것이 역사이기 때문에. 그러니 우리가 바라는 일은 일어나지 않고 역사적 사실은 우연이든 광기든, 용기든 만용이든 바뀔 수 없다. 현재가 있는 이유는 그러한 과거가 있기 때문이라는 원인과 결과의 철저한 계산에 의해서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우린 역사를 통해 배우는 것이 있다. 인간은 완전하지 않고 알고서도 실수를 반복한다. 기술된 역사를 통해서 우리는 앞서 했던 실수륵 반복하지 않을 것 같지만 인간의 불완정성과 욕망은 비슷한 실수를 매번 한다. 그럼에도 인간은 앞으로 나아가는 존재이다. 역사가 증명하고 있지 않은가. 슈테판 츠바이크의 '광기와 우연의 역사'는 거의 백 년 전에 써진 역사서이다. 역자의 글에 '역사를 이해하려면 인간 심리를 꿰뚫고 있어야 한다. 사건 깊숙이에서 나는 소리를 귀 기울여 들을 줄 아는 특별한 능력이 있어야 한다."는 말처럼 이 책에 편재된 사건은 역사적 인물의 행동이 어떤 결과를 초래했는지 보여준다. 그 과정에서 인간-그것도 초인적이거나 영웅적인 인물-이 어떤 심리 상태에서 판단하고 결정했는지 그리고 그것이 가져온 결과를 이야기로 풀어내고 있다.
책을 펼치면 '키케로에서 윌슨까지 세계사를 바꾼 순간들'이라는 책 속의 내용이 천 년의 세월을 넘어 역사적 순간을 맞이했을 때 인물들이 내린 결정적 순간이 이 책엔 담겨져있구나,라는 짐작을 하게 한다. 첫 장은 로마제국의 종말을 가져온 사건의 단초부터 동로마제국의 멸망, 워털루 전쟁에서 나폴레옹이 패전한 뒷 이야기, 점령지 남미에서 땅따먹기를 하며 생존하며 권력을 취하던 사람들, 비밀리에 국가간 협약을 통해 이익을 취하던 만행을 멈추고 평화와 통합을 추구했던 한 인물이 어떻게 자신의 소신을 굽혀야 했는지를 다룬 마지막 장까지 20세기 초까지 빠르게 진행된 역사적 순간을 한 권의 책에 담기에 인간의 역사는 욕망과 피와 미가 묘하게 어우러져 있다. 역사적 순간들이 인간의 욕망과 그 밑에 복잡하게 얽힌 심리적 갈등과 우연에 의한 결과를 초래한 경우가 많았다. 인간의 이성이 아무리 뛰어난다 하더라도 항해하는 배가 모든 풍랑을 피해갈 수 없는 것처럼 내일 맞닥뜨릴 상황은 예축할 수 없다.
우리가 사는 현재도 먼 미래에는 역사가 될 것이다. 내가 오늘 한 행위는 역사서에 기록되지 않겠지만 내가 참여한 현재의 상황은 어떤 사건의 목격자로, 혹은 방관자로, 혹은 참여자로 남겨질 것이다. 우린 자기 목소리를 갖지 못한 평범한 사람들이다. 역사는 승리자의 기술이다. 하지만 역사를 바라보는 다양한 층위를 가진 기록자가 있는 한 승리한 자의 기록 뒤에 숨은 우연과 변수들은 언제든 새로운 시각으로 기록될 것이다. 우린 뛰어난 자가 얼마나 어리석은 판단으로 세상을 위험에 빠트리는지, 조금은 부족한 사람이 주변의 도움과 천운으로 세계의 위대한 지도자로 거듭나는지 역사를 통해 확인한다. 그러니 현재 너무 잘난 사람으로 살 필요도 없고 못났다고 너무 자책할 필요도 없다. 어차피 일어날 일은 일어날 것이고 우린 그 흐름에 우리를 맡길 뿐이다. 현재를 열심히 사는 것, 내가 존재하는 공간에서의 충실함이 스스로의 만족만으로만 끝나지 않을 것이다. 역사는 그저 지나간 기록일 뿐이다. 그러나 그 안에서 우리가 놓치지 말아야 할 것도 분명 있을 것이다. 내가 역사에 기록되지 못하는 것은 역사의 큰 흐름을 만든 보통의 거대한 힘을 일으키는 사람 중의 하나라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