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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작가 Aug 20. 2018

독박육아 2주째: 엄마가 되어 간다

아기를 오롯이 혼자 키울 때 느껴지는 감정들



그동안 몰랐다. 엄마라서 느낄 수 있는 황홀한 순간이 있다는 걸.

모든 수고를 잊게 하는 마법 같은 찰나가 찾아올 때

아기를 키운다는 게 바로 이런 거였구나, 하고 감탄한다.



등에 업힌 아기가 고개를 내 날개뼈 사이에 포옥 파묻을 때, 노래를 불러주면 나나나 하고 따라 부를 때, 지친 엄마를 위로하듯 작은 손으로 내 팔을 쓰다듬을 때, 얼굴을 비비면 인상 쓰고 싫어하던 아기가 기분 내키면 흔쾌히 뽀뽀해줄 때, 이리 오라고 팔 벌리면 환하게 웃으며 달리듯 기어 올 때, 안아달라고 다리를 붙잡고 매달리는 너를 안으면 좋아서 히히히 소리 내어 웃을 때, 공원 산책 간다고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는 동안 신나서 눈을 마주치고 애교 부릴 때, 자고 있는 아기의 목에 얼굴을 묻고 너에게서만 나는 향기를 맡을 때.


내가 낳은 아기라 엄마라는 이름은 갖고 있지만, 내가 키우지 않았기에 정작 엄마에게는 보여주지 않던, 주 양육자인 할머니에게만 보이던 내 아기의 진짜 모습. 스위스에 남아 단 둘이 지낸 지 2주가 되어서야 비로소 알 수 있게 됐다. 넌 이런 아이였구나, 넌 그런 표정을 갖고 있었구나. 네가 12개월이 되어서야 깨닫다니. 엄마가 그동안 몰랐어서 미안해.






하지만 아기가 예쁜 건 예쁜 거고, 힘든 건 힘든 거다.

하루에도 몇 번씩, 더 이상 못하겠다는 생각이 든다.


아기 재우고 밤늦게까지 과제하느라 세 시간밖에 못 잤는데 넌 벌써 푹 자고 일어나 엄마한테 배고프다고, 심심하다고, 놀아달라고 보챌 때. 칭얼거리는 아기에게 핑크퐁 틀어주고 30분이라도 더 자려고 하는 좀비 같은 내 모습을 발견할 때. 아침을 먹여야 하는데 해놓은 음식이 없아기 밥과 내 밥을 동시에 최대한 빨리하고 있는데 그 시간을 못 기다리고 다리에 매달려 엉엉 우는 너를 어찌해야 할지 모를 때. 밥알과 숟가락을 집어던지고 짜증을 내는 너를 다독여줄 마음의 여유가 없어 똑같이 화를 내는 내 모습에. 


서랍의 옷을 다 꺼내고, 장난감을 사방에 흩어놓고, 머리카락과 굳은 밥알, 먼지까지 주워 먹는다는 걸 알면서도 하루에 한두 번 청소기 돌리는 것 말고 다른 청소는 할 엄두를 못 낼 때. 내야 할 과제, 해야 할 미팅, 준비해야 할 시험은 몰아치는데 시간이 부족해 심장이 두근거릴 정도로 압박감을 느낄 때. 양해를 구하고 모임에 널 데려가 미팅 내내 칭얼거리는 널 달래려 안고 있어야 할 때. 어떻게든 미팅은 끝났는데 무슨 얘기를 나눈 건지 하나도 기억이 안 날 때. 화장실 가는 틈도 허락하지 않고 24시간 붙어있길 요구하는 너를 볼 때. 아기를 씻기고 뒷정리까지 마치고 정작 나는 지쳐서 씻지도 못하고 잠이 들 때. 


왜 하나님은 남자와 여자 둘이 만나 가정을 이루고 아기를 낳게 하셨는지 알 것 같다. 한 아기를 키워낸다는 건 어떤 경우에도 혼자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서. 남편이 옆에 없다는 사실이 화가 나고 원망스럽다. 내가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겠다고 이렇게 애쓰고 있는 걸까? 






'잘' 하려고 하지 말고 그냥 '살아있기만' 해.



"어떻게든 내가 잘 해볼게."

친정엄마와 신랑을 떠나보내며 반쯤 울상이 된 얼굴로 말하는 내게 남편이 한 대답이다. 당시엔 피식 웃어넘겼는데, 막상 겪어보니 신랑이 합류할 그날까지 아기와 둘이 건강히 살아남아 있는 것조차 큰 도전과제였다. 잠을 제대로 못 자니 면역력이 떨어져 감기 걸려도 쉽게 낫지 않고, 허리는 삐걱거리고, 어깨에는 곰 세 마리가 올라앉았다. 혹시라도 아기가 아파서 응급실 갈 일이 생기면 어쩌나, 베이비시터와 있는 동안 다치기라도 하면 어쩌지, 아기가 정서적인 문제가 생기는 건 아닐까, 하며 일어나지도 않은 일을 걱정부터 한다. 어쩌면 그동안 제대로 못했던 육아를 짧은 기간에 한꺼번에 몰아서 적응하려니 몇 배로 더 힘든 건지도 모르겠다. 아기를 낳았다고 자동으로 엄마가 되는 게 아니었다. 


아무리 그리워도 신랑과 친정엄마 편에 아기를 한국에 보내버릴걸, 어쩌자고 내가 맡아 키우겠다고 고생을 자처했나. 우리 둘을 너무 혹독한 상황으로 밀어 넣은 내가 한심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막상 베이비시터에게 아기를 떠맡기듯 떼어놓고 한두 시간이라도 수업 들으러 다녀오면 기분전환이 되고 에너지가 살짝 생기는 걸 느낀다 (아가야, 미안하지만 엄마도 사람이라서). 아기도 더 예뻐 보이고, 왠지 아기도 전보다 더 엄마를 잘 따르는 듯한 느낌은 나만의 착각일까. 


수업에 참여하고 친구들과 이야기하는 두 시간은 '누구의 엄마'가 아닌 본래의 '나'로 돌아간다. 새로운 걸 알게 됐을 때 즐거워하는 나, 안 되는 영어로 의사소통이 되는 게 재밌는 나, 힘든 시간은 지나가고 언젠가는 마음이 이끄는 일을 하고 있을 내 모습을 꿈꾸는 나. 




사람들이 말하는 모성과 희생, 헌신의 '엄마' 이미지를 닮으려 애쓰기보다는 나를 인정하고, 아기와 내가 처한 상황에 맞는, 세상에 하나뿐인 엄마 상을 만들어 나가고 싶다. 매끼 화려한 이유식을 차려주지 못해도, 항상 깔끔 청결하게 집안을 관리하지 못해도, 온몸을 던져 아기와 신나게 놀아주지 못해도, 가끔 스마트폰과 텔레비전에 의존할지라도. 


나중에 아기가 자라면 이야기해주고 싶다. 엄마가 한때 이렇게 치열하게 살았고, 너의 행복을 위해 내가 행복하려 노력했다고. 당시엔 쓰러질 듯 힘들었지만 엄마는 한 뼘 성장했다고, 삶의 맷집이 좀 늘었다고 말이다. 나는 그렇게 조금씩 엄마가 되어 가고 있다.




엄마도 창문 너머 넓은 세상에서 신나게 뛰어노는 꿈을 꾼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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