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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작가 Jul 26. 2018

대책이 필요해

독박육아를 피할 수 있는 방법이 있을까?


독박육아
배우자나 다른 사람의 도움 없이 혼자서 어린아이를 기르는 일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출처: 다음 한국어사전)



두 번째 학기가 시작했다. 친정엄마가 와주신 덕분에 일단 한 고비는 넘겼다. 하지만 안심하긴 일렀다. 스위스는 양자협약보다 쉥겐조약을 우선시하는 유럽 국가라서 중간에 다른 나라로 출국했다가 재입국해도 비자가 갱신되지 않는다고 했다. 즉, 관광비자로 체류할 수 있는 최대 기간은 90일. 문제는 친정엄마가 귀국해야 하는 5월 초는 학기 중이라는 것. 게다가 한 달이나 버텨야 한다. 



나 어쩌지... (출처: 구글 이미지 검색)


수업 외에도 기말 과제, 시험, 국제기구와 진행하는 리서치 프로젝트에 졸업 논문 프로포절까지 써서 지도교수님 컨택도 해야 하는 상황. 다시 말해, 혼자 있어도 할 일이 많아 눈코 뜰 새 없이 바쁠 시기에 돌도 안된, 손이 아주 많이 필요한 아기와 단둘이 남겨진다는 뜻이었다. 학기 말에 곧 불어닥칠 재난 같은 상황에 대처하기 위한 묘수가 필요했다.  

  


첫 번째 대안은 당연히 스위스 공립 보육기관. 스위스 사람들도 임신 3개월부터 미리 신청해놓고 기다린다는 그 크레쉬를 너무 만만히 봤던가, 내가 원하는 시기에 자리가 날리 없었다. 대기 신청서에 절박함을 가득 담아 구구절절 사연을 썼다. 나는 풀타임 대학원생이고 배우자는 한국에 있다, 육아를 도와줄 수 있는 가족은 비자 문제로 장기 체류가 불가하다, 아기 때문에 학업을 포기하고 싶지 않다 등등. 정성이 갸륵했는지 나중에는 자리가 났다는 연락이 왔다. (지금 말고, 세 번째 학기가 시작하는 9월부터! 그것도 감지덕지)

  

이 판타스틱한 교사 대 학생 비율 좀 보시라 (출처: thttps://www.tdg.ch/geneve)


두 번째 옵션, 사립 보육기관. 정부 보조금 없이 운영되는 집 근처(유엔 앞에 있는)로 알아봤다. 주 5일 풀타임(아침 7시 45분~저녁 6시 30분)에 2,880 CHF. 1프랑당 1120원으로 낮춰 계산해도 한 달에 320만 원이 넘는다. 주 3일만 보내도 월 200만 원이다 (대체 급여를 얼마나 받길래 여길 보내는 걸까). 그래도 대기 신청을 넣었다. 어떻게든 방학 때까지 한 달만 버티면 되니까. 국제기구 직원 자녀들이 많이 다닌다는 이곳, 한 두 달만 보내길 원하고 게다가 수입도 없는 학생의 자녀를 쉽게 받아줄 리 없었다. 대기접수는 됐으나 연락은 깜깜무소식… 

  

세 번째는 *오페어(au pair). 공식적인 오페어는 아니고 비공식적으로 주변 지인들에게 의견을 물었다. 내가 수업이 있는 날(주 3일) 아기를 봐주고, 나머지 4일은 어학연수를 하거나 스위스를 베이스캠프 삼아 유럽 여행도 할 수 있도록 왕복 항공료와 숙식, 소정의 용돈을 제공한다는 조건이었다. 믿고 아기를 맡길 만한 사람(게다가 나와 동거도 가능한 성별의)을 찾다 보니 제한적이었다. 친구, 후배들도 정당한 사유 없이 그저 나의 육아를 돕겠다는 명목으로 스위스까지 오긴 쉽지 않았다.  

*오페어: 외국인 가정에서 일정 시간 동안 아이들을 돌봐주는 대가로 숙식과 급여를 받고, 자유시간에는 어학공부를 하고 그 나라의 문화를 배울 수 있는 문화교류 프로그램 (출처: 위키백과) 

  

(출처: https://southwestmums.com)


네 번째는 이곳 현지에서 베이비시터를 구하는 것이었다. 베이비시터 연결해주는 웹사이트도 찾아보고 (특정 교육을 이수했다는 사실만으로는 아기를 맡길 만한 사람인지 신뢰할 수 없었다), 한인교회를 통해 소개를 받기도 했지만 결국 스케줄 조정에 실패해 무산됐다. 학생이라 들쑥날쑥한 내 시간표가 문제였고, 그분은 풀타임으로 장기간 일하길 원했지만 그러기엔 내가 재정적으로 감당하기 어려웠다.


마지막 방법은 친정엄마가 아기를 데리고 다시 한국으로 들어가시고, 방학하자마자 내가 다시 데리러 한국에 다녀오는 방법도 있었다. 가장 현실적인 대안이었으나 내게는 최악의 방법이었다. 백일밖에 안된 아기를 떼어놓고 한 학기 간 지내보니 친정엄마도, 아기도 힘든 일이었고 무엇보다 엄마인 내가 너무 고통스러웠다. 고작 한 달이라 해도 다시는 아기와 떨어지고 싶지 않았다. (나중엔 이 결정을 하지 않은 나 자신을 원망했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  

  




  

결국 독박육아의 길은 피할 수 없게 됐다. 

남편도, 양가 어머니도, 시터 이모님도, 어린이집 선생님도 없는 해외에서의 진정한 독박육아 유학생활. 


학창 시절 모토 중 하나가 '즐길 수 없으면 피하라'였는데 그건 멋모르는 꼬꼬마 시절 이야기고, 이제는 어찌할 수 없는 상황임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수밖에 없었다. 그래, 긍정적으로 생각하자. 직장도 그만두고 나이 들어 시작한 공부는 끝을 봐야 하고, 박사과정까지 하려면 앞으로 최소 5년은 더 해야 하는데, 내 인생에 불쑥 끼어든 이 아이와의 동거는 최소 20년은 빼도 박도 못하게 예정되어 있으니, 한 걸음 한 걸음 보폭을 맞춰가는 첫 단계의 진통이라고 생각하자. 그 진통이 허리가 끊어지고 다리가 후들거리고 9층 테라스 난간에서 아래를 내려다보게 할 정도로 클 줄은 상상도 못했다. 육아는 혼자 감당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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