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개월 아기와 둘이서 유럽-한국 비행하기
봄학기는 5월 말이 되어 종강했고, 기말 시험과 각종 과제 제출은 6월 중순이 되어서야 끝났다. 그리고 6월 말엔 여동생의 결혼식이 예정되어 있었다, 한국에서. 인생의 전환점이 될지도 모를 중요한 식을 올리는 자리에 당연히 가족들은 나와 아기가 참석하길 기대했다. 긴 시간 고민했다. 겨우 8개월짜리 아기와 직항도 아닌 경유 비행기를 타고 16시간 걸려 온 게 불과 네 달 전인데, 또다시 유럽-한국 왕복을 할 수 있을 것인가, 그것도 아기와 단 둘이!
엄마라면 당연히 이 정도는 해야지?
어쭈? 그럼 이것도 할 수 있어?
고강도의 엄마 자격 테스트를 치르는 기분이었다. 그동안 공부한답시고 엄마 노릇 제대로 못한 벌을 받는 걸까, 아니면 짧은 시간에 "평범한" 엄마와 아들 사이가 되려다 보니 배로 힘든 걸까. 그래도 희망적인 사실은 성공적이진 않지만 매 단계를 겨우겨우 클리어해 나가고 있다는 거다.
레벨 1. 아기 세끼 밥 해먹이며 나도 세끼 밥 해 먹기
레벨 2. 아기 세끼 밥 해먹이며 나도 세끼 밥 해 먹으며 집안 정리정돈 청소와 빨래도 하기
레벨 3. 위의 것을 다 하면서 아기 낮잠시간에, 내 밤잠 시간을 쪼개 공부도 하기
레벨 4. 아기와 단 둘이 짐 싸서 이사하기
레벨 5. 아기와 단 둘이 장거리 비행하기
결국은 가게 됐다. 결정을 내리는 데는 여러 가지 동기가 있었다. 하나밖에 없는 언니와 조카가 결혼식에 참석하지 못한다는 걸 너무나 아쉬워하던 동생의 마음, 왕복 항공권을 지원해줄 테니 와 줄 수 있겠냐는 꼬드김, 아기 크는 모습을 너무나 궁금해하고 보고 싶어 하시는 양가 부모님, 결정적으로 신랑이 육아휴직을 내고 귀항 편은 같이 타고 오겠다는 약속, 그리고 한국 가서 자잘한 볼일들(아기 예방접종, 내 병원 진료, 미용실 등)을 처리하고 싶은 마음이 더해져 나 홀로 아기와의 여행을 도전해보기로 했다.
이대로 짐 싸서 떠나기만 하면 좋으련만, 작은 문제가 생겼다. 여름 방학 기간에 기숙사 욕실 공사가 예정되어 있었다. 8일 정도 아파트를 비워주고 기숙사 내 임시 거처에서 지내야 했다. 평소라면 크게 문제 될 일이 없었다. 짐 챙겨서 일주일 지내다 다시 돌아오면 되니까. 그런데 하필 공사 일정이 나의 출국 4일 전으로 잡혔다. 그 말은 곧, 짐을 싸서 아기와 다른 집에서 지내다가 거기서 다시 모든 짐을 정리해 우리 집에 가져다 두고 임시 거주지 열쇠를 반납하고 나서야 한국 출국 비행기를 타러 갈 수 있다는 뜻이었다.
난 짐 싸는데 소질이 없었다. 학창시절 1박 2일 엠티라도 떠날 때면 필요한 리스트를 적어두고 모든 짐을 바닥에 펼쳐놓은 뒤 하나씩 집어넣으며 밤늦게까지 짐을 싸는 손이 느린 사람이었다. 아기와 둘이 집을 떠나 지내는데 생각보다 필요한 게 많았다. 아기 이불과 베개, 애착 인형과 장난감, 밥솥, 식료품과 양념통, 이유식 재료, 아기 욕조, 아기 의자, 기저귀, 분유, 젖병, 분유 포트, 청소기 등.. 잡다한 짐이 많아 줄이고 싶어도 정작 내 기준에 필요하지 않은 건 없었다. 아기를 유모차에 태운 채 층을 오가며 짐을 날랐다. 다행히 같은 기숙사에 사는 친구의 도움을 받아 이것도 무사히 클리어할 수 있었다. 이제는 독박육아의 끝판왕, 아기와 둘이 비행하기만 남았다.
비행 편은 제네바를 출발해 로마를 거쳐 인천으로 가는 알이탈리아 항공이었다. 조금이라도 편하게 가고자 프리미엄 이코노미로 예약했다. 제발 옆 자리가 비어 있길 간절히 바라며 들어갔다. 아기가 혹시나 귀가 아플까 봐 이륙할 땐 끊임없이 과자를 먹였고, 착륙할 땐 짜 먹는 과일 퓌레와 물을 먹였다. 다행히 제네바-로마 한 시간 반 구간은 큰 무리 없이 비행할 수 있었다. 프리미엄 이코노미를 타면 이 구간은 비즈니스석으로 배정되기 때문에 사람이 적어 다른 승객들에게 피해가 갈까 염려하지 않아도 됐다. 제네바 공항에서 키즈 라운지를 이용할 수 있다는 것도 장점이었다. 아기는 처음 본 형아 뒤를 졸졸 따라다니며 대기 시간을 지루하지 않게 보냈다.
로마 공항에 도착해 당황스러운 일이 생겼다. 출발지 공항에서 유모차를 부칠 때 경유지에서도 받겠다는 말을 빠뜨렸다(아니 이 중요한 걸!). 한국에서 유럽으로 올 때는 친절한 승무원께서 경유지에서도 유모차가 필요한지 센스 있게 물어봐 주셨는데 스위스에서는 그렇지 않았다,라고 불평하고 싶지만 어쨌거나 먼저 체크하지 않은 내 잘못이 컸다. 내린 게이트와 타야 할 게이트의 위치는 거의 끝과 끝이었다. 면세점과 쇼핑센터, 식당가를 구불구불 돌아야 했다(동선 참 기가 막히게 짰네!). 게다가 공항 안은 왜 이리 더운지, 아기를 업고 있는 내 등과 아기의 몸은 땀으로 흠뻑 젖었다.
실은 공항에서 여러 사람들의 도움을 받았다. 비행기에서 내려서 버스로 이동할 때는 스위스 할머니가 짐을 들어주겠다 자청하셨고, 출국심사는 한 여성 스태프의 도움으로 줄 서지 않고 통과할 수 있었다. 화장실에서 기저귀를 갈고 다시 업다가 아기를 떨어뜨릴 뻔한 걸 본 한 백인 여성이 아기 업는 걸 도와줬다. 잠든 아기의 고개가 뒤로 젖혀지는 걸 보고 안타까워한 한 라틴계 여성이 아기를 앞쪽으로 업도록 도와줬다. 재미있는 건, 내게 도움의 손길을 먼저 내민 모두가 여성이었다는 것이다. 아기와 둘이서 낑낑대며 이동하는 내 모습이 분명 딸 같고, 친구 같고, 언니 같고, 동생 같았으리라.
10시간 45분의 비행은 무사히 지나갔다. 옆자리에 앉은 한국인 승객분께 조심스럽게 부탁드리니 흔쾌히 다른 좌석으로 옮겨주셔서 자리를 넉넉하게 썼고, 요청하지 않았는데도 배시넷을 설치해줘서 젖병, 장난감, 담요 등 잡다한 물건들을 올려놓을 공간으로 활용했다. 기내에는 나 말고도 아기를 혼자 데리고 탄 엄마가 한 명 더 있었고, 아이 셋을 데리고 탄 네덜란드 부부가 있었다. 덕분에 아기를 재우려 복도를 돌아다니고 화장실 앞을 서성이는 시간이 덜 괴로웠고 심적으로 의지가 됐다. 엄마의 긴장감을 마치 알고 있는 것처럼 아기는 출발부터 도착까지 16시간을 울지 않고 잘 버텨줬고, 인천에 도착해 내릴 땐 다른 승객으로부터 '아기가 있는 줄 모를 정도'로 조용했다는 말까지 들었으니 꽤 성공적이었다.
한국은 아침 9시 반이었지만 출발지 시각으로는 새벽 2시 반, 한참 잘 시간에 비행기 밖으로 나온 아기는 피곤했는지 엄마의 등에 고개를 박았다. 유모차와 짐을 찾고 출국장으로 나왔다. 남편과 친정 부모님이 마중 나와 있었다. 두 시간 반 정도 차로 이동해서 친정에서 지내기로 한 터였다. 익숙한 할머니, 할아버지, 아빠의 얼굴을 발견한 아기는 반가운 듯 씨익 웃었고, 세 어른에게 함박웃음을 선사했다. 남편은 고생했다며 내게 꽃다발을 내밀었다. 리본에는 짧은 메시지가 적혀 있었다.
귀국 축하해. 이제 헤어지지 말자
집을 떠난 아침부터 20여 시간을 한숨도 못 자고 아기를 케어하느라 녹초가 된 나는 그제야 마음을 놓을 수 있었다.
학기 중이라 자주 업데이트하지 못하는데 구독해주시고 댓글 달아주시는 분들 감사드립니다.
애 키우고 공부하는 얘기 누가 보겠나 싶어 솔직하게 써 내려가는 글이었는데 생각보다 많은 분들이 응원해주시니 큰 힘이 됩니다. 열심히 살고 자주 글 올릴게요: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