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부터 시골살이를 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다. 조용한 산과 들 파란 하늘이 펼쳐진 장소는 마음을 편안하게 했다. 20대 시절은 배낭을 메고 세계 여러 나라를 여행하였다. 다양한 곳을 여행하면서 아침이 그득히 느껴지는 초록초록한 풍경이 보이는 이런 자연스러운 곳에서 살게 되면 얼마나 좋을까 다시 한번 생각하곤 했다. 30대에 접어들게 되면서 결혼을 하고 두 아이의 엄마가 되어 도시의 작은 아파트에서 평범하게 가정을 꾸리며 살고 있었다.
첫째 아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할 때가 되었다. 초등학교에 입학하니 터를 굳히는 느낌이 들었다. 한데 이곳에서 터를 잡기에는 뭔가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늘 마음 한편에 있던 소망이 아른거렸다. 흙을 실컷 밟으며 자연적인 곳에서 살기를 원하는 나를 느낄 수 있었다. 마음은 품었지만 시골살이를 진짜로 실행해 본 적은 없었다. '그래 그렇게 노래를 불렀는데 한번 살아보자 딱 일 년만이라도 해보자'
그렇게 질러 버렸다. 서울에서 춘천 산자락에 이사를 오게 되었다. 작게 텃밭을 가꿀 수 있는 마당이 있는 집이었다. 배달음식은 오지 않고 도시에서 흔한 편의점도 15킬로나 떨어져 있는 곳이었다. 대신 공기가 아주 좋았다. 주변은 소음 없이 고요했고, 밤은 빛공해 하나 없이 깜깜했다. '밤이 원래 이토록 깜깜한 것이었구나' 밤하늘에 별들이 쏟아져 내렸다. 달이 뜨는 날에는 오롯이 달빛만이 주변을 채웠다. 순수한 달빛만을 만날 수 있었다.
그렇게 꿈에 그리던 시골살이를 시작하게 되었다. 시골살이가 불편하다는 말을 많이 들었지만 어쩐지 생활이 단순화될수록 삶의 질은 올라가는 것 같았다. 많은 물건과 음식들을 고르느라 소모되는 에너지가 줄어들었다. 그저 지금 이 순간에 충실하고 집중할 수 있었다. 식사를 할 때엔 간단한 요리들 만으로도 충분했다. 주변에 빵집이 없으니 오븐을 사서 빵을 만들기 시작했고 커피는 직접 내려 마셨다. 어느 카페보다 맛있는 커피를 만날 수 있었다. 집에서 할 수 있는 것이 많아질수록 밖에서 구할 것이 줄어들었다. 걱정했던 불편한 점들은 하나씩 사라져 갔다.
시골살이 전원주택의 최대의 장점은 아이들이 언제든 실컷 뛰어놀 수 있다는 점이었다. 이른 아침부터 늦은 밤까지 아이들은 마음껏 뛰어놀 수 있게 되었다. 아이들이 좋아하는 모습만 보더라도 이미 본전은 되었다고 느낄 정도였다.
물론 녹록지 않은 점들도 있었다. 매일 주변의 풀들을 정리해야 했고, 각종 곤충들과 집안을 기어 다니는 늑대거미에 깜짝 놀라기도 하고 마당에서는 뱀이 나올까 봐 늘 조심해야 했다. 말벌이 지붕에 집을 지어서 손수 벌집을 떼어내기도 했다.
처음 하는 일들도 많아졌다. 처음으로 직접 땅을 갈아 농작물의 씨앗을 심어 보았다. 땅에서 씨앗이 움트고 자라나는 것을 지켜보는 것은 정말 경이로웠다. 가슴 깊은 곳에서 행복이 팡팡 터지는 것 같았다.
봄이 되었다. 산이 점차 초록으로 물들다가 이내 물감을 찍은 듯이 하얀색 노란색 꽃들이 피어나는 광경을 보았다. 주변에 꽃들이 피어나고 있어 굳이 꽃구경을 하러 어디에 가지 않아도 되었다. 향긋하고 아름다운 봄의 색에 눈과 마음이 따스이 녹아내렸다.
여름에는 그야말로 생명력이 가득한 계절이었다. 나무는 울창하게 푸르르고 계곡물은 힘차게 흘렀다. 장마가 시작되자 마당의 풀이 자라는 속도가 빨라졌고 갑자기 곤충도 많이 보였다. 집 주변에서 모든 곤충들을 다 본 것 같았다. 깜짝깜짝 놀라 창문틈을 틀어막았다. 아이들과는 틈나는 대로 집 앞 계곡에 놀러 갔다. 시원한 계곡물은 더위를 차갑게 식혀주었다. 여름엔 다양한 소리가 들렸다. 힘차게 내리는 장마빗소리, 산에서는 새소리가 들려온다. 밤에는 밤새가 울었다. 벌은 웅웅 날갯짓을 하며 날아다녔다.
가을에는 산이 붉게 물들기 시작하는 것이 보였다. 바닥을 뒹구는 낙엽들과 흩날리는 코스모스는 가을을 알리기에 충분했다. 가을에는 뱀을 조심해야 했다. 그리고 실제로 마당에서 뱀을 처음 봤다. 시골살이 중 가장 우려했던 일이 벌어진 날이었다. 도저히 극복할 수 없을 것 같은 요소였는데 어느덧 뱀도 생태계의 일부로 느껴지고 조금씩 이해하게 되며 받아들이게 되었다. 텃밭에는 작물이 주렁주렁 열렸다. 마당에서 툭툭 채소를 뜯어서 집에 들어와 요리를 했다. 마트에서만 사던 채소들이 마당에 있는 기분은 정말 특별했다. 땅에서 많은 것이 나는구나. 가을의 땅은 많은 열매와 씨앗들을 돌려주었다. 가을엔 향기가 났다. 떨어진 낙엽 냄새, 열매와 가을의 냄새가 바람을 타고 전해졌다.
겨울의 강한 추위는 그동안의 왕성한 활동을 멈추게 하고 모두를 집으로 돌려보냈다. 곤충과 동물은 겨울잠에 들어가고 사람들은 집 안에서 서로 모여 따뜻한 시간을 보내게 했다. 모든 것을 쉬게 하는 어찌 보면 고마운 계절이다. 눈이 내린 자리에는 집 주변을 오가는 비밀 동물 손님들의 발자국이 찍혀 있었다. 집 앞의 쌓인 눈을 직접 치워야 했지만 왠지 재미있었고 덕분에 어느 때보다 눈과 가까이 만날 수 있었다. 눈을 쓸다 보면 몸에서 열기가 났다. 하얀 눈과 마주하면 머릿속마저 깨끗해졌다.
자연이 주변에 흐르고 있으니 굳이 어디론가 찾아가려는 욕구가 줄어들었다. 이곳에만 있어도 주변에서 펼쳐지는 사계절의 흐름을 가득 느낄 수 있었다. 시골살이를 경험함으로써 내 삶의 새로운 경험의 폭도 넓어졌다. 직접 해봐야만 알 수 있는 것들을 알게 되었다.
집 마당에서 처음 별이 가득한 하늘을 보고 아이가 말했다.
“우와 엄마 이런 거 처음 봐”
아이와 같이 실컷 밤하늘을 바라보다가 집으로 들어왔다.
이 행복감을 모르고 살뻔했다. 정말 잘한 선택이었다. 앞으로도 가슴이 원하는 것을 따르며 흐르는 삶을 살아가고 싶다. 겨울이 지나고 다시 봄이 올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