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 신기한 일이다. 가을이 시작되자마자 몸이 확연히 좋아진 것이 느껴졌다. 여름까지는 만성 피로를 짊어진 사람처럼 쉽게 피곤하고 지쳤었다. 이 피로감을 그저 쉼이 없는 8년간의 육아 때문이겠거니 하고 여겼다. 그나마 시골에 와서 몸이 좋아지긴 했어도 대낮에 아이를 낮잠 재우면서 조금이라도 누워서 짧은 잠을 청하거나 휴식을 취하지 않으면 내내 피곤한 몸을 이끌고 하루를 보내야만 했다.
하지만 가을에 접어들면서 놀랍게도 피로도가 현저히 줄어듬을 느낄 수 있었다. 오히려 몸에 기운이 돌았다. 낮에 누워있지 않아도 전혀 피곤하지 않았다. 딱히 휴식을 취하지 않더라도 몸에서 기운이 도는 것이 느껴지니 잠시 누워 있다가도 다시 벌떡 일어났다. 나는 가을에 가장 살아나는 가을형 사람이었구나. 이것을 계절의 변화를 세심하게 느끼게 되면서 알게 되었다.
아랫집에 계신 분이 집 앞의 길을 코스모스로 가꾸어 놓으셨다. 차를 타고 오가면서 양쪽으로 코스모스에 파묻혀 길을 지나간다. 가을은 코스모스의 계절이 맞구나. 지나갈 때마다 황홀한 기분이 든다. 심은 적 없던 코스모스가 마당 여기저기에 뿌리를 내리고 한들한들 흔들리고 있다. 가을이 너무 아름답다. 앞집 아주머니가 툭툭 따서 주신 가지, 고구마, 그리고 자두들을 감사히 받았다. 수확하는 계절. 이웃을 잘 만나는 것도 복이라던데 정말 인심이 너무 좋으시다. 지금 살고 있는 이곳이 아주 마음에 든다.
꽃과 열매가 지나간 자리엔 다시 씨앗이 맺힌다. 여름 내내 열리던 열매들의 씨앗들을 거둔다. 사과참외와 토종호박들 씨앗들마다 저마다 특색이 있다. 동글동글 오크라 채종이 가장 쉽고 재미있어서 아이도 옆에서 함께 씨앗을 채종을 했다. 그사이 새로운 마늘 종자 씨앗이 도착했다. 씨앗을 거두고 씨앗을 받고 씨앗을 나눈다. 씨앗으로 시작해 다시 씨앗으로 남는다.
아침에 마당에 나가보니 풀들의 기세가 꺾여있고 주저앉아 있다. 10월부터는 매일 정원 손질을 하지 않아도 될 것 같다. 밤에 잘 때는 이불을 꼭 덮어야 한다. 이제 제법 추워졌다. 보일러 돌릴 때가 다가오고 있다.
도서관에서는 허브 공부를 위한 책을 빌렸다.
연휴 내내 뛰지 말아야 했던 아이들은 집으로 돌아와 다시 신나게 뛰기 시작했다.
여름 내내 들리지 않던 밤새 소리가 다시 들리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