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김없이 마당에 풀을 뽑으러 나갔다. 주택살이를 하면서 풀 뽑기는 꾸준한 필수 일과가 되었다. 그런데 뭔가 달라진 것 같다. 가을에 접어들고 나서 풀이 좀 질겨진 기분이다. 기분 탓일까? 싶었지만 확실히 다른 느낌이다. 같은 자리에서 풀을 한두 번 뽑아본 게 아니기 때문에 분명히 풀의 상태가 달라진 것을 느낄 수 있었다. 풀이 쨍쨍해지고 질겨진 것뿐만 아이라 독성이 강해진 느낌도 받았다. 커뮤니티 카페에 물어보니 날이 서늘해지면서 풀이 자라는 속도가 느려지는 대신 치밀하고 질겨지는 목질 형태로 바뀐다고 한다. 계절의 변화에 맞추어 변화하는 풀의 모습이 정말 놀라웠다. 아니 금세 이렇게 달라진다고? 자연은 이렇게 기후에 몸을 맞추어서 변화하는구나. 저런 유연함을 나도 배워야 하는데. 너희들은 날씨가 변한다고 불평하지 않는구나. 그저 그에 맞추어 조용히 모습을 바꾸어갈 뿐- 다만 인간들이 그 자리에 머물러 있으려고 안간힘을 쓰는 걸까.
오늘은 남편에게 아이를 맡기고 혼자서 차를 끌고 장을 보러 나갔다. 마트에 도착했지만 근처의 카페에 들어가 커피를 시켰다. 장을 보기 전 잠깐 노트북을 꺼내어 사진 리터칭 공부를 하기로 했다. 요즈음 멈춰졌던 내 일을 다시 시작할 준비를 하고 있다. 사진 영상과를 졸업하고 쭉 사진을 붙잡고 살았지만 육아로 인한 경력단절이 8년이다. 그사이에 사진 장비들도 변화가 생겼다. 천천히 예전의 감각들을 찾아가는 중이다. 현장에서 촬영일 하는 걸 무척 좋아하는 나였는데 그동안 너무 멈추어 있었다. 이제 슬슬 나도 일에 복귀할 때가 되었음을 느낀다. 감각을 다시 깨우는 시간을 조금씩 가지고 있다.
밭에서 키워낸 하나의 농작물이 오롯이 내 손에 들어오는 것은 쉬운 것 같지만 쉽지만은 않은 일이다. 그동안 마트에서 쉽게 바구니에 담아 계산만 하다 보니 인식하지 못했다. 오늘 밭에서 수확한 호박을 기분 좋게 가져다가 도마 위에 놓고 갈랐다가 깜짝 놀랐다. 호박 안에서 살아있는 애벌레들(?)을 만난 것이다. 너무 놀라서 그대로 밖으로 나가 호박을 뒤뜰에 집어던졌다. 알아보니 노지에서 기른 호박들에는 호박 파리가 열매가 맺히기 직전에 알을 까놓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하필 내가 그 호박을 가른 것이다. 전혀 예상치 못했기에 정말 깜짝 놀랐다. 솔직히 충격에 가까웠다. 호박을 기를 때 주의를 기울여서 재배해야 한다는 것도 알았다. 물론 다 그런 건 아니었고 깨끗하게 수확해서 먹게 된 호박도 있었다. 다만 이제는 자연 상태에서 자란 호박을 가를 때엔 마음의 준비를 단단히 해야만 했다. 아예 호박은 집 밖에서 갈라보고 멀쩡한지 확인하고 집에 들이게 되었다.
나에겐 정말 놀랄만한 사건이었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니 이 모든 것이 생태계 곤충들과 동물들도 같이 살아야 하기 때문이란 걸 알았다. 곤충도 알을 낳고 살아가야 하니 하는 행동들이겠지. 산에서 내려와 텃밭의 농작물을 먹는 고라니나 맷되지도 먹고 살아가기 위해 하는 행동들이고 내가 꺼려하는 생물들도 생존을 위해 움직이고 있을 것이다. 미래에는 기후변화로 인해 작물을 얻는 것이 점점 더 어려워지고 식량도 귀해질 것이다. 미래의 아이들에게 땅과 다양한 작물을 길러내는 법을 물려주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들이 땅에서 직접 가꾸고 길러내어 먹을 것을 얻을 수 있는 힘을 가지게 되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