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에 머물 일이 생겼다. 호텔 체크인을 하고 밥을 먹으러 밖으로 나와 오랜만에 홀로 서울 거리를 걷게 되었다. 걷다 보니 조금씩 20대 시절의 생각과 추억들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사진과에 입학하고 사진숙제를 하는 것을 시작으로 카메라를 메고서 혼자 서울 거리를 참 많이도 돌아다녔다. 내 몸과 발 그리고 서울의 땅은 그때의 그 느낌을 기억하고 있는 듯했다. 지도를 보며 음식점을 찾다가 이내 핸드폰을 끄고 발길 가는 대로 골목을 걸었다.
아이를 둘 키우면서 내 몸은 변화했지만 날렵했던 20대 시절의 내가 지금의 나와 공명하고 있는 것이 느껴졌다. 그 시절의 내가 어딘가에서 살아 나와 씩씩하게 나와 함께 걷고 있었다. 밥 먹는 것도 잊고 한 시간이 넘도록 실컷 걸은 것 같다. 걷다 보니 서울의 도심도 썩 괜찮게 보인다. 매끈한 바닥들엔 잡초들이 자랄 일이 없어 보였고, 뱀이나 벌레들이 튀어나올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되었다. 곳곳에 나무들이 바람에 흩날린다. 빌딩들은 왜 이리 멋진지 눈이 휘둥그레 해졌다. 이곳에서 줄곳 살다가 자연을 느낄 수 있는 시골에서 사는 것을 선택해 지금 살고 있지만 오랜만에 보니 도시도 나쁘지 않아 보였다. 정말 새롭게 다시 보였다. 특유의 정돈되고 쾌적한 느낌이 있었다. 지금 살고 있는 곳도 확실히 좋은 점이 있지만 이곳도 이곳 나름대로의 모습이 멋지구나. 각 장소마다의 특색과 장점이 그대로 드러났다. 두 곳에서 모두 살아보았기 때문에 알아볼 수 있었다. 순간적으로 어느 곳에 살던지 그것이 절대적으로 중요한 건 아닐 수도 있겠다 싶은 생각이 들었다. 서울 한복판이든 외딴 시골이든 내가 핵심적인 감정을 느끼고 반응하는 것은 비슷했다. 환경이 바뀌어도 나는 그대로 이기 때문이다. 어디에서 살던 결국 중요한 건 내 모습이라는 것을 느꼈다. 이곳도 좋고 그곳도 좋다. 그래 어디든 좋은 것이었다. 어디든 잘 살아내는 내가 더 중요하구나. 양쪽 생활을 다 해보고 나서야 알게 된 것이다.
서울.
해가진 서울 거리에는 힙한 느낌의 사람들이 적당히 떨어져 함께 거리를 걷고 있었다. 시골이 자연 에너지의 계절, 정서의 영향을 더 많이 받는다면 서울은 사람들의 에너지를 많이 받을 수밖에 없는 곳이다. 공간적으로 함께 스치며 살아갈 수밖에 없다. 자연스럽게 사람들과 가깝게 지내게 되는 곳 그러면서 서로가 서로에게 밀접하게 영향을 주며 살아가는 곳. 혼자인 듯 함께 인 것이다. 내 감각이 예민해져선지 스쳐가는 사람마다의 에너지가 느껴지기도 했다. 그중에는 몹시 우울해하고 지쳐있는 사람도 있었다. 내 몸에도 그 사람의 우울한 슬픔이 느껴졌다가 이내 멀어져 갔다.
도시에서 사람들이 가깝게 살아가는 만큼. 더욱더 서로의 에너지가 참 중요하다는 걸 느꼈다. 나 자신을 살피고 돌보는 것이 정말로 내 주변 사람을 살피고 살리는 것이 될 수가 있다. 내가 좋은 사람이 되면 내 주변의 사람들에게도 좋은 영향을 줄 수가 있다. 다른 사람들도 나의 영향을 받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같이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주변의 사람들을 소중히 여기고 일상을 잘 밝히고 가꾸며 살아간다면, 도시에서도 마음 가득 차오르는 행복을 느끼며 살아갈 수 있을지도 모른다. 일단은 내가 행복한 사람이 되어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