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12년 서울살이와 서울살이 종료
인구 10만도 안 되는 도시에서 초중고대를 지내왔는데, 친구를 만나러 간 그 서울 길에 무작정 서울행을 선택하게 될 줄 누가 알았을까. 작은 소도시에서 지내왔던 나는 간호대학 실습을 하면서 청주, 대구를 다니며 도시라이프를 즐겼지만, 그 친구를 만난 서울에서 여태 살면서 느껴보지 못한 젊음을 느꼈다.
아직도 생각 나는 홍대 밤거리, 화려한 불빛 사이로, 젊은 대학생들, 노래를 사랑하는 이들의 버스킹
20대 초반의 나는 서울의 화려함에 함께 할 수 있으리라. 믿고 서울로 올라왔다.
대학 졸업식 이틀 뒤에 서울에 올라온 나는, 병원에서 제공하는 2인 1실의 기숙사 생활을 하기로 마음먹었다. 하지만 3교대를 하면서 다른 사람들과 살아가는 건 만만치 않았다. 대학생 생활을 하면서 숙소생활을 했어서 가능할 줄 알았다. 돈을 벌면서 이런 곳에서 나는 휴식을 취할 수 없었다.
k-장녀였던 나는 어쩔 수 없이 고시원으로 향했다.
동생들도 다들 자취하여 월세를 부모님이 다 주고 있었기에, 부모님에게 또 보증금으로 부담을 줄 수 없었기 때문이다.
면목동 길게 늘어진 방석방을 지나 얻은 고시원
그 당시에도 고시원은 월 50만 원이었다.
병원 생활하면서 고시원에 산지 6개월가량 지나니 그저 관짝 안에 들어가 있는 기분이었다.
그렇게 지친 생활에 투정을 부리던 나는, 아빠가 올라와 방을 구하기로 했는데,
병원 근처 방세는 풀옵션 50만 원이었다.
관리비까지 하면 엄두가 나지 않아, 나는 무옵션 다가구 분리형 원룸을 선택했다. 말이 원룸이지, 다가구를 쪼개 쪼개 월세 받고 있는 주택이었다. 세면대도 없고, 에어컨도 없는 이 원룸을 선택하여 진짜 고생 많이 했다.
낡은 집이라 곰팡이도 피고, 세탁기, 냉장고, 가스레인지도 없는 진짜 아무것도 없는 방이었다.
낡은 원룸에 낡은 전기제품을 채워 넣고, 방이 생겼다고 나는 좋아하며 살았다.
나날이 더워지는 찜통더위에 나는 또, 눈물 바람이었다. 에어컨을 달기엔 터무니없는 가격과 월세방에 에어컨이라니?
요즘은 창문형 에어컨이 참 잘 나오지만, 그 당시에 그런 게 있을 리가 있나..
결국 이리저리 검색해서 이동식 에어컨을 달았는데 아주 조금 살만한 정도였다.
더운 낡은 방에서 얼마나 서러워서 울었는지 모른다. 화려한 서울에서 나는 집 없는 서러움이 느껴졌다.
간호사로 병원 3교대를 하니 6개월, 1년이 금방 지나갔다. 데이근무 3개가 하루 같고, 이브닝 근무 4개가 이틀 같았다. 내가 간 병동은 신경과 병동이었는데, 희귀 신경질환자, 재활환자, 노인성질환자들이 주로 입원하는 병동이었다. 23살의 나이에 아픈 이들이 병원에서 나아서 가는 모습을 보지 못한 채 간호하니, 내 마음이 병들었다. 그 당시 삶과 죽음에 대한 생각으로 가득 찼고, 그 생각들은 나를 저 바닥으로 끌고 들어갔다.
그러던 와중 tv에 나온 스님이 '삶을 왜 살까 생각하다 보면 결국 죽음에 이른다'라고 말하는 것을 듣고 화들짝 놀라서, 그 관짝에서 나왔다. 사실 그 스님의 말을 듣고 내가 관짝 안에 들어가 있다는 것도 알았다. 마음이 관짝에 이미 들어가 있더라...
그렇게 정신을 차리고 '나는 무얼 할까... ' 방향을 찾아야만 했다.
그러던 중 '돈을 좇아서 살아갈 것인가?'와 '도움을 주면서 살아갈까?'라는 두 가지 선택지가 떠올랐고, 그렇게 공적인 영역에서 조금 더 활동하자는 결론을 내서 '간호직 공무원'을 선택했다.
'간호직 공무원'을 선택해서 공부할 때 무모하기도 했다. 사실 공부를 그리 잘한 타입도 아니라서 많이 망설였다. 대학교에서 상위권이면서 간호사 국가시험도 학교에서 1등을 한 친구가 '공무원'을 준비하면서 계속 낙방하는 모습을 봤기에.. 많이 두려웠다.
'아.. 내가 될까? 저 친구도 계속 낙방하는데..'
아빠는 도전하라고 했다. '그 친구랑 너랑은 다르다'라고 말해줬다.
그렇게 나의 5년 장수생 생활이 시작되었다.
나의 12년 서울살이 중 2년은 신경과 병동 생활, 5년은 장수생 생활, 4년은 간호직공무원으로 생활했다.
12년 중 5년의 비중은 상당하다.
지금은 흐릿해지긴 했지만, 지금 생각하면 '뭐 때문에 그렇게 살았을까' 싶기도 하다.
장수생 5년 중에 약 2년은 공시생 생활을 하고 약 3년은 직장병행으로 준비했다. 타 직렬로 바꿀 생각도 했지만 금방 다시 간호직 공무원 준비를 했다.
그렇게 어렵게 간호직 공무원이 되고 또 겪었던 일들 곧장 쭉 서울에 살 것 같던, 그 누구보다도 서울을 즐기며 살았던 내가 왜 서울을 떠나게 된 건지.
나의 서울살이를 시작했던 일.
어떤 서울 살이를 했는지.
그리고 서울살이를 왜 종료하게 된 건지.
그리고 탈 서울 하여 지방소도시의 삶을 연재해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