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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교호 May 03. 2024

소나무와 같이


과거를 돌아보며 미소 짓다 문득 거울을 보며 생각했어요. 분명 미래엔 이 순간을 떠올리며 그때 내가 얼마나 빛났는지 아름다웠는지 추억하게 될 날이 올 거라고. 분명코 지금 내가 그런 날들 속에 있음을 확신하며 누구보다 따스히 나를 바라봤어요.


삶의 어떤 날들은 특별히 행복하진 않아요. 대부분 특별히 불행하지 않은 상태에 가깝죠. 그건 중성인 걸 거예요. 리트머스 시험지를 대어도 아무 색도 나타나지 않겠죠. 무색무취의 나날들이라고 사람들은 말하겠죠.


하지만 그런 일상을 선명하게 물들이는 것은 단 한 방울이면 충분해요. 그러면 산성이든 염기성이든 대번에 색이 변해버리죠. 그 한 방울은 특히 좋은 바람일 수도 있고, 습도일 수도, 햇살일 수도 있고요. 볼에 스치는 꽃잎이나, 호박벌의 귀여운 궁둥이나 고양이의 호동그란 눈동자나 그런 작은 것들이죠.


요즈음 유달리 감동적인 것들은 오후의 햇살입니다. 그림자들도 깊이를 가진다는 걸 아시나요. 가끔은 물 속을 들여다보는 것 같아요. 수십만 원짜리 우디 향수보다 손끝으로 찍어 맡은 송진의 냄새가 더 좋을 수 있다는 걸 아시나요. 눈가는 마치 가만히 가라앉아가는 진흙처럼 조용히 꺼져가요. 소나무의 껍질처럼 피부의 결은 선명해져가죠. 이것이 노화인가요. 하지만 훗날의 나는 지금의 나를 무척 빛나고 아름답게 추억할 테니 괜찮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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