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모안 May 10. 2023

감각하는 존엄

<존엄을 외쳐요> 김은하 글 윤예지 그림


2021년 국제엠네스티 한국지부는 국제엠네스티 창립 60주년을 맞아 <세계인권선언>을 대중에게 알리고자 일러스트레이터 윤예지와 함께하는 <존엄 캠페인: 나, 존엄을 외치다>를 기획합니다. 그 결과 작가 김은하의 글까지 함께 해 그림책 <존엄을 외쳐요: 함께 만드는 세계인권선언>이 발간되었습니다.


<세계인권선언: Universal Declaration of Human Right>은 제2차 세계대전 직후 심각한 인권 유린에 대한 반성으로 확립되어 1948년 유엔에서 채택되었습니다. 국제인권법의 토대로 수많은 국제인권규범을 낳은 중요한 문서입니다만, 원문은 용어나 표현 면에서 이해하기에 어려운 점이 있고 또 현재의 변화나 이슈를 담아내기에 부족한 점도 있습니다. 이에 김은하 작가는 <세계인권선언>을 지금, 여기의 언어로 새롭게 살려냈습니다.





<세계인권선언>에서는 자유, 권리, 기본권 등의 인권에 관한 많은 개념을 제시하고 있습니다만, 이 책에서는 특히 ‘존엄’이라는 개념에 관심을 집중하고 있습니다. 작가는 이 존엄 개념을 정의 내리는 데, 현학적인 이념적 정의 대신 ‘마음’과 ‘감각’으로 풀어냅니다.


“존엄은 너와 내가 이 세상에 오직 하나 뿐이고 감히 누구와도 그 무엇으로도 바꿀 수 없이 소중하다는 마음이에요.  … … 존엄하게 산다는 감각이 무엇인지 찾아내고 살려 낼 거예요.” (p5)


존엄을 마음과 감각으로 정의 내리는 것이 다소 소박하고 천진해 보일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최근 많은 부문에서 ‘sensitization’을 번역한 ‘감수성’ 개념을 ’인권감수성, 젠더감수성, 성인지감수성‘등으로 확장하며 강조하고 있습니다.


감수성 개념이 거슬러 올라가면 ‘sense’ 즉 감각이라는 단어에서 파생된 것임을 감안하면, 이 책이 내리는 존엄의 정의는 시의적절하면서도 핵심을 잘 파악한 결과입니다. 아울러 그저 이해해야할 숙지해야할 개념이라기보다는 실제 삶 속에서 구현하고 활용할 수 있는 정동이 된다는 점에서 더욱 의미있기도 합니다.




이렇게 작가의 섬세한 의식으로 새롭게 구현된 글을 읽다 보면 계속해서 반복되는 단어가 눈에 들어옵니다. ‘우리, 모두, 누구나’와 같은 불특정다수를 가리키는 단어들입니다. 위에서 말했듯이 세상에는 하나뿐인 내가 있고 또 역시 세상에 하나 뿐인 나인 너가 있습니다. 하나 뿐인 고유한 존재, 너와 나. 둘을 혹은 셋은 혹은 수천명은 언제 어떻게 이 분리를 극복하고도 스스로 존엄 할 수 있을까요?


“나는 나의 존엄을 외쳐요. 그리고 한번도 만난 적 없는 너의 존엄을 외쳐요”(p71)


한번도 만난 적 없는 너. 나는 미지의 존재를 상상합니다. 너는 아직은 알 수 없는 것이며, 알고자 하지 않았던 것이며, 심지어 불가지론의 영역일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엄중히 존재하는 그러한 너의 존엄을 나는 외칩니다. 나의 존엄을 외치듯이.


왜냐하면 나 또한 누군가에게 한번도 만난 적 없는 너이기도 하니까요. 참 호혜적인 발상입니다만, 역시 상상해보세요. 어떠한 조건도 없이 사랑받을 수 있기를 바라는 나의 마음 생김새를. 그 조건이 사라진 토대를. 온전히 사랑받는 나를. 그리고 사랑하는 나를.


매거진의 이전글 사랑의 시작은 사랑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