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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안 May 14. 2023

겪어보는 시

<인생의 역사> 신형철

‘인생’과 ‘역사’라는 쉽지않은 단어도 그렇지만, 게다가 시론(詩論)이었다면 아무래도 책 표지나 한번 쓸어보고 말았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다행히 부제로 이것은 시화(詩話)라고 소개하고 있어, 이야기라면 좋지 하는 마음으로 집어들었습니다.


시에 얽힌 배경부터 시의 주제에 상응하는 고통과 사랑 같은 인생의 주요한 문제들을 거쳐 그에 관한 저자의 이해와 통찰까지. 시를 통해 전해주는 인생담이 참 유려하고 담백합니다. 그 조근조근한 맛이 보통의 것은 아님을 알면서도 이상하게, 나도 시 한번 읽어볼까 하는 용기가 나게합니다.


“나는 인생의 육성이 있다면 그게 곧 시라고 믿고 있다.” (p7)


“내가 조금 단호하게 말 할 수 있는 것 중 하나는 시를 읽는 일에는 이론의 넓이보다 경험의 깊이가 중요하다는 사실이다.” (p8)


나의 인생이 시의 목소리를 빌린다면 어떤 시가 될까 하는 호기심이 일었습니다. 대가의 시화를 잠시 내려놓고, 나도 한 번 읽어봅니다. 어디 한 번 내멋대로. 자꾸 걸리는 시가 나타납니다. 베르톨트 브레히트의 <아침저녁으로 읽기 위하여>와 김영광의 <사랑의 발명>


참으로 어질지 못함인지, <아침저녁으로 읽기 위하여>에서 빗방울을 맞아 살해 될까 두려워 하는 마음을 놓고는 ‘그래서야 살아지나?’했고, 산에 구덩이를 파고 곡기를 끊겠다는 사람을 위해 사랑을 발명하겠다는 마음을 놓고는 ‘평강공주 컴플렉스인가?’했습니다.


그러고는 덮고나니 내 이야기가 치밀고 올라와 견딜 수가 없게 되어서 시를 다시 읽고 또 옮겨쓰는 지경이 되었습니다. 아무래도 그런 두려움을 갖고는 못 살겠다 싶던 모습이 이미 나였고, 취중에 못난 말을 꺼내놓던 모습도 이미 나였고, 그래도 사랑해 주겠다는 너도 있었고, 두려움을 위하는 마음으로 변화하게 해준 또 너가 있었다는 것을 점차로 알아차립니다.


그렇게 시가 나의 이야기로 화하는 것을 보고나니, 기대감이 생깁니다. 내가 말하지 못하는 것들을 깨어 줄 시가 또 어딘가에서 묵묵히 기다리고 있을 것 같습니다. 시를 또 읽어 보아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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