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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친해지면 안 돼?

by 이영선

내게 다가오는 사람들의 패턴을 발견한다. 처음엔 호기심과 호감을 가지고 내게 급하게 달려든다. 이전에 알았던 사이도 아니고 내가 누구라고 직접 소개한 적도 없다. 모르는 사람들이 너무 반갑게 맞이해 주고 나는 오는 친절이 반갑고 감사해서 자신을 속이는 사람만 있는 게 아니구나 생각하며, 원래 그러했듯이 투명한 마음문을 활짝 열고 사람들을 마음에 기꺼이 들인다.


그런 후에는 예외 없이 온갖 사적인 질문들이 집요하게 파고든다. 나는 상대가 물으니 자연스럽게 대답을 하는 수순을 따른다. 대부분은 내가 돈을 어떻게 버는지, 집은 어디에 사는지, 부모님은 뭐하는지, 어디에 사는지 등을 물어본다. 요즘은 아무나 들이지는 않지만, 처음엔 스튜디오에 오고 싶다고 하고, 그다음엔 내가 사는 집에도 가보고 싶다고 하는 순서로 다가온다. 아무런 생각이 없던 몇 년 전까지 나는 사람들이 스튜디오에 놀러 오고 집에 오는 게 반가웠다.


나를 아끼던 친구는 그런 질문에 왜 모두 대답을 해주냐고 핀잔을 주기도 했지만, 물어보는데 답을 하는 건 자연스러운 반응이 아닌가? 나는 ‘물어보니까 대답을 했지!’라고 친구에게 말한다. 친구는 모든 질문에 대답을 할 필요는 없다고 내게 누차 말을 해주곤 했는데, 나는 그걸 늘 잊었다. 나도 사람들에게 궁금한 것이 있으면 물어보는 편이다. 나랑 상대가 뭐가 다를까 했는데, 사람들이 질문을 하는 건 순수한 호기심이 아니라 나의 위치를 확인하고 자신들의 위나 아래에 놓아야 할지를 측정하고 있는 것에 가까웠다. 아니면, 뭔가 자신들에게 이익이 되는 것이 있는지 확인하려는 것이다.


친구는 또한 집에 사람을 함부로 들이는 게 아니라고 했다. 나는 의아했다. 친구들 집에 놀러 가고 또 놀러 오고, 집이 가장 편한 장소이기도 하고 집은 그냥 집이 아닌가? 언제부터 집에 놀러 오는 그런 게 위험한 일이 되었는지 모르겠지만, 친구는 그건 위험한 일이라고 했다. 동네 아줌마는 집에 와서 내 옷장을 휘젓고 갔다. 친구는 그 얘기를 듣고 기겁을 했다. 그 아줌마는 매우 위험하니 만나지 말라고 내게 주의를 주었다. 사람들이 집에 와서 나의 경제적, 사회적 측면을 측정하고 있다는 것을 몰랐다. 그런데 훔쳐갈 것은 별로 없다. 내가 소중히 여기는 것들은 사람들에게는 엿을 바꿔먹지도 못하는 것들이니 말이다.


이런 사람들은 그 과정에서 나를 그들과 비교하고, 나의 결점이나 흠을 탐색하며, 자신들의 에고를 재확인한다. 순수한 관심이 아니라 적진을 수색하는 스파이처럼 나를 염탐하는 것이다. 자신들 나름대로 편견 어린 탐색이 끝나면, 태도가 바뀌기 시작된다. 자신들이 부럽다고 느끼는 부분에 대해서는 비아냥거리고, 빈정대고, 나를 다 알지도 못하면서 나를 깎아내리는 듯한 말투를 쓰기 시작한다. 나는 진정성을 가지고 살려는 사람이지만, 그렇다고 그리 단순한 사고를 가진 사람은 아니다. 그에 비해 사람들의 염탐은 그리 명민하지도 않다. 자신들의 수준에서 판단한 결과를 가지고 나를 다 파악한 듯 행동한다. 아이러니하게 그때부터는 내가 상대의 그릇을 알아채기 시작한다. 내가 알아채는 게 아니라 너무나 자연스럽게 그들이 언행이 바뀌면서 드러난다. 그들만 그것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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춤추고 쓰고 그리고 만드는 통합창작예술가. 장르와 경계를 녹여내어 없던 세상을 만들고 확장하는 자. 그 세상의 이름은 이영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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