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명휘 Aug 15. 2023

집중력이 고갈된 그대에게

업무를 마치기 위한 최후의 발악 <타임 타이머>


최근 도무지 일을 제시간에 마칠 수가 없었다. 외부적인 요인도 아니다. 시간이 없지도 않았다. 단지 일이 하고 싶지 않아서 정말 하루 종일 변죽만 울리다가 결국엔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잠에 들었다. 마감은 코앞으로 다가왔고 마침내 나는 마감일을 어기고 말았다.


다른 사람을 만나면 나에게 번아웃이 온 것 같다고 말했다. 너무너무 일을 하고 싶지 않아서 도망치고 도망치다가 벼랑 끝에 서서야 겨우 움직였다. 이것이 정상이 아닌 건 나도 안다. 그리고 이렇게 일을 하다가는 프리랜서인 내 커리어가 엉망이 될 거라는 것도 알고 있다. 그런데도 꼼짝도 하기 싫었다.


그러나 번아웃은 핑계다. 엄밀하게 내 집중력 고갈은 휴대폰 때문이다. 흔히 말하는 도파민 중독이 오랜 시간 집중을 요하는 업무에 대한 적극성을 버리게 만들었다. 일을 마다하고 하는 행동은 거창하지도 않다. 드러누워서 휴대폰에 반짝이는 몇 초짜리 짧은 콘텐츠를 무의식적으로 흘려보내고 있을 뿐이었다. 스스로 생각해도 한심한 일을 반복하고 있다가 문뜩 떠올랐다. 집중력을 높여주는 타이머를.


타임타이머는 '구글 타이머'라는 별명으로도 유명하다. 구글에서 회의를 할 때 의미 없이 길어지는 것을 막기 위해서 시간을 정해두고 진행을 하는데 그때 사용하는 제품이 <타임 타이머>라고 한다.


<타임 타이머>는 최대 60분까지 시간을 설정할 수 있는 타이머다. 설정한 시간이 모두 지나면 알람이 울리는데 알람 기능을 끌 수도 있다. 이 시계의 특징은 설정한 시간이 줄어드는 것을 실시간으로 확인할 수 있는 점이다. 60분을 설정했을 때 시계 가득 찼던 색상이 시간이 흐르면서 조금씩 줄어든다. 시각적으로 시간의 흐름을 나타내기 때문에 시간을 의식할 수 있다. 다른 생각이 들거나 집중해야 하는 일에서 이탈할 때면 이 시계를 보면서 다시 돌아올 수 있다.


의도적인 촉박함은 업무의 효율을 높여준다. 처음 이 시계를 만들 때에도 아이들이 공부에 집중하게 하기 위해서 고민한 결과라고 한다. 공부와 업무는 닮았다. 하기 싫고 집중력이 필요하다. 그러고 보니 사람은 평생 같은 어려움을 겪으며 사는 게 아닌가 싶은데. 그렇다고 하면 이 시계는 평생 필요할지도 모르겠다.


시계는 아마존에서 2만 원가량에 구입했다. 여타 모델보다 조금 작고, 테이블에 올려두어도 크게 거슬리지 않는다. 일부러 옅은 색으로 골라서 인테리어 효과를 노렸다. 녹차아이스크림처럼 옅은 초록색은 시간을 표시하는 그래프도 녹색이어서 오리지널 모델의 붉은색보다는 경각심이 조금 덜할까 싶기도 하다. 중요한 것은 시간을 보여주는 시각화이니 그 점에서 큰 차이는 없기를 바란다.


목적에 충실한 제품이고 가격도 저렴해서 그런지 만듦새는 그리 좋지 않다. 거칠게 성형한 테두리가 날카롭고 질감도 저렴한 티가 난다. 소재가 달라지는 부분 없이 모두 같은 플라스틱을 사용한다. 바닥에 그 흔한 고무조각 하나 붙이지 않아서 테이블에 올려두고 손으로 움직여보면 메마른 소리를 내면서 쉽게 움직인다.


처음에 나는 이 시계의 타이머를 조작하면 태엽을 감는 느낌이 들 거라 생각했다. 기분 좋은 촉감을 느끼면서 시간을 설정할 거라 기대했지만 실제로 타이머를 조작하면 손끝에는 거의 아무런 저항이 느껴지지 않는다. 그저 플라스틱 다이얼과 맞닿은 다른 플라스틱 부품이 마찰하는 허무한 감각이 전부다. 예쁜 디자인과 기능에만 충실한 너무 단순한 구성에 조금 허탈했지만 기능은 확실했다. 시간에 따라 그래프를 착실하게 줄여갔고 시간이 다 되면 딱 네 번 알람을 울렸다.


구조는 단순해 보인다. 저렴한 탁상시계 부품의 분침에 줄어드는 색상 회전판을 올려둔 것 같다. 여기에 자전거의 프리휠 같은 라쳇 구조를 더해서 평소에 시계가 회전할 때는 작동하지 않고 다이얼을 돌렸을 때만 회전판이 돌도록 한 것 같다. 그래서 귀를 가까이 가져다 대면 미세하게 초침소리가 들린다.


시계를 사용하니 정말로 능률이 올랐다. 줄어드는 시간을 보면서 일에 집중할 수 있었다. 일단 책상에 앉을 수 있게 해 준 것만으로도 충분한 역할을 했다. 처음 한두 시간은 타이머를 감아서 시간을 설정했지만 그 이후에는 일에 몰입해서 타이머 없이도 업무를 지속할 수 있었다. 이 부분은 사람마다, 업무의 종류마다 다르겠지만 목적에는 충분히 부합했다고 느낀다.


이제 타임타이머는 책상 한편에 자리를 잡고 물끄러미 나를 바라보고 있다. 타이머를 작동하지 않아도 존재 자체만으로 내게 말하는 듯하다. 어서 일로 돌아가라고 빨리 시작하라고. 내 돈을 주고 공부하라 잔소리하는 어머니를 소환한 것 같은 기분이지만 그래도 덕분에 오늘도 일을 무사히 마친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