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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혜원 Apr 11. 2021

'선택'을 잘한다는 착각

승환의 이야기(1) - 시드(진로탐색)

'선택'을 잘한다는 착각

대학에 오기까지 나는 인생 동안 나름의 "선택"을 잘 해왔다고 생각했다. 가고 싶은 대학교에 진학하기 위해 중학교 때부터 특목고 입시 준비를 밟아 특목고에 진학했고, 고교 시절에는 '자율 학습'에 걸맞게 수많은 학습 교재와 강의를 선택하여 수능을 준비했다. 그렇게 수능을 치르고는 가고 싶던 대학에 입학하고, 경제학을 전공하기 위해 사회과학대학을 선택했다. 하지만 돌아보니 그것은 나 자신의 비판적 사고의 흐름의 결과로서 내린 '선택'이라기 보다는 우리 사회의 교육 시스템이 제도적으로 안내하는, '좋다고 정의된' 길을 무비판적으로 수용한 것에 불과했다. 내가 원하는 결과들을 선택하여 만들어낸 거라 생각했으나, '나는 왜 그것들을 원하였는가'는 결여되어 있었다. 즉, 나의 주관이 결여된 선택이었다.



시간표도 혼자서 못 짜던 학생

입학 전 1학년 신입생들을 맞이하는 행사 기간부터 이를 절실히 느꼈다. 이 때까지의 학교들과는 다르게, 대학은 나 스스로가 듣고 싶은 수업들을 선택해서 시간표를 구성해야 했다. 이러한 선택을 용이하게 할 수 있는 환경은 이미 구축되어 있었다. 재학생들의 집단지성과 소수의 프로그래밍 역량이 더해져, 모든 강의에 대한 세세한 리뷰를 조회할 수 있는 사이트가 있었고, 쉽게 시각적으로 주중 시간표를 만들 수 있는 프로그램도 존재했다. 하지만 문제는 강의를 '선택'하기 위해 필요한 주관이 나에게 결여되어 있다는 점이었다. 애초에 '경제학' 전공을 위해 사회과학대학을 선택한 것 자체가 나의 니즈와는 전혀 무관한 선택이었던 것이다.


"듣고 싶은 수업이 너무 많아 2학기로 넘겨야겠어." "듣고 싶은 강의가 있었는데 교수님이 안식년이라 내년에 들어야겠어." "계량 경제학을 듣기 전에, 인사수 → 선형대수학 → 경제통계학 코스를 밟는게 좋을 것 같아"

대단한 학구열 그 자체도 놀라웠지만, 학구열이 일관된 방향성을 갖추고 있음에 큰 경외감을 느꼈다. 나는 듣고 싶은 강의도 없었고, 그저 앞날이 걱정될 뿐이었다. '사회과학이라는 것이 나랑 잘 맞을까.' 1학년 1학기 시간표는 결국 '친구들이 좋은 강의라고 말해주는" 강의들과, 1학년 때 필수로 들어야 하는 강의를 대충 섞어서 만들었다. 진정한 주관에 기반한 선택들을 해온 친구들은, 선택의 자유도가 높아진 대학생 신분을 맘껏 즐기는 것 같았다. 반면 나는 주어지는 자유를 어떻게 써야할지 몰라 벙찐 상태로 첫 수업에 들어간다.


정치학원론 수업의 첫 시간, 대형 강의실의 강단 앞 칠판에는 "정의란 무엇인가" 라고 적혀있었다. 수업 첫날인 만큼 각종 필기구와 노트를 챙겨간 나는, 정의의 정의가 무엇일지 필기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하지만 수업은 내 예상과 전혀 딴판이었다. 나지막한 목소리의 교수님은 들어오시자마자 출석 체크도 하지 않고는, 정의가 무엇인지 각자의 생각들을 손들고 이야기 해보자는 것이었다. 놀라운 광경이 펼쳐졌다. 대형 강의실에 앉아있는 학생들이 빼곡히 손을 들기 시작하는 것이다. 처음에는 각자의 생각들을 이야기하더니, 점차 토론처럼 이전 학생의 의견에 대해 다음 학생이 의견을 덧붙이거나 반박을 하는 구도가 되었고, 그렇게 1시간 15분 동안 학생들의 발표만 이어지다가 수업이 끝났다. 나는 정의란 무엇인지 생각을 깊게 해본적도 없었고, 생각을 해본들 그 생각을 조리있게 구성하여 전달하는 능력도 없었다. 마침내 내 삶이 단단히 잘못되어 왔음을 깨닫게 된 순간이었다.



카페 아르바이트로 트인 생각

'수업'이라는 것이 존재했던 1학기는 그나마 수업을 듣고 친구들과 놀며 보냈는데, 수업도 없고 친구들도 없는 (대다수가 지방으로 내려갔다.) 여름 방학이 되자 나혼자 오롯이 24시간을 구성해야만 하는 큰 문제(?)에 봉착하게 된다. 주어진 자율무엇을 어떻게 선택해야 될지, 뭘 하고 싶어해야 할지도 모르면서 마음만 조급해졌다. 일단은 뭐라도 해야겠다 싶어 계절학기를 등록하고, 학점을 잘 주기로 유명한 강의를 3개나 수강했으나, 1개는 도중에 수강 취소를 하고 2개는 C 를 맞으면서 나의 정신은 피폐해져 갔다.


그러던 2010년 8월의 어느 날 고등학교 친구가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는 카페를 방문하면서 처음으로 방향의 기틀을 갖추게 된다. 2010년 당시에는 프랜차이즈 카페가 우후죽순 들어서던 시기였고 커피 한잔 값이 어느 정도 비싸다는 감이 있던 때였는데, 그 비싼 커피를 종류별로 제조하는 것을 직접 보자 문득 그것이 멋있어 보였다. '아 재밌겠다 !' 라는 생각이 스치는 순간, 마침 자리에 카페 사장님이 계셔 일을 배워보고 싶다고 말씀을 드렸다. 즉석에서 면접을 보고, 그 주부터 일을 배우기 시작했다. 단숨에 모든 레시피를 외우고 그 다음날부터 출근하였는데, 어찌보면 나의 첫 사회생활의 시작이기도 하다. '카페'라고 하는 일상 속 흔한 공간이 어떻게 운영되고 관리되는지 알아가는 것이 재미있었다. 사람들이 흔하게 소비하는 무언가를 만들어서 제공한다는 것에 큰 매력을 느꼈다. 무엇보다 내가 무언가 하고 싶은 것이 생겼다는 사실에 기뻤다. 방학 동안 잠깐 하기로 했던 카페 아르바이트는 2학기 개강 이후에도 주 4회 출근을 하며 지속했고, 월 120만원의 소득은 나의 2학기 삶을 제법 풍요롭게 해주었다.


이 기간은 내가 '공부'한 것들에 대한 회의감이 짙어진 때이기도 하다. 정규 교과과정의 가르침은 분명 삶을 윤택하게 해주는 데에 도움이 되는 것은 사실이지만, 학창시절 나는 그것이 삶의 전부인 줄만 알았다. 삶을 윤택하게 해주는 데에 도움이 되는 것을 넘어서서 윤택한 삶 자체를 보장해주는 것인줄 알았던 것이다. 어차피 내가 학자의 길을 걷지 않고 '일'을 하며 살거라면, 적정한 기술을 배우거나 최소한의 업무 적성을 파악하기 위한 교육 과정을 밟는 것이 훨씬 도움이 되지 않았을까. 이 때부터 나는 조금이라도 필요성을 못느끼거나, 관련성이 없다고 판단되는 '공부'에 대한 적대감이 커졌다. 오히려 내가 하고 싶은 '일'에 대해 집착을 하기 시작했고, 그 '일'들을 제대로 수행하는 데에 직접적인 도움이 되는 '공부'만을 취하기로 했다. 또한 '소득'의 중요성도 함께 깨닫게 되었는데, 내가 소비할 수 있는 경험의 폭이 넓어진다는 것은 굉장한 매력이었기 때문이다. 내가 하고 싶은 '일'을 찾아, 그 '일'을 잘 수행하기 위한 '공부'를 하고 이를 통해 나의 경험을 더 넓힐 수 있는 '돈'을 버는 것 -  조금 늦은 감이 있었지만 1학년 말미에나마 대학생활에서의 나름의 방향성을 정립할 수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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