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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혜원 Apr 11. 2021

어쩌다가 스타트업에 왔나요?

승환의 이야기(2) - 엔젤투자(선택)

어쩌다가 스타트업에 왔나요?

지난 6년 동안 업계 종사자 분들로부터 이 질문을 정말 많이 받았다. 농담 삼아 "후배 따라 왔다가 코 꿰였죠." 정도로 받아치곤 했지만, 스타트업에서 일한다는 것이 그만큼 특이하고 질문함직한 것인가 의아스럽기도 했다. '특이해 보이는 것에 대한 질문'에 대한 대답은 아이러니하게도 굉장히 일반적이고 진부하다. 



그냥 취업 준비였습니다만

지난 카페 아르바이트 이후로 나는 온통 내가 하고 싶은 일을 찾아 일을 시작하고 싶다는 생각 뿐이었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실제 졸업 이후 겪게 될 삶에 대한 실질적인 정보값을 얻을 수 있는 채널이 부재했다. 각종 업계에 대한 정보, 실제 회사 생활에서 필요한 실무 지식/스킬, 조직내 보편적인 직무에 대한 소개 등 지금은 상식선에서 다룰 수 있는 이야기들이지만, 학생 신분에 이를 접하는 것이 쉽지 않다. 더군다나 지금과 같이 유튜브 컨텐트가 범람하던 때도 아니었기에, 보다 살아있는 컨텐트를 접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웠다. 주변 선후배나 친구들은 대다수가 행정고시, 금융 공기업 시험 공부를 하거나 로스쿨을 준비했다. 그렇다보니 나도 공무원으로서의 삶, 법조인으로서의 삶도 잠깐이나마 고민해보았으나, 이를 위에 또 막대한 양의 '공부'를 해야 한다는 것을 받아들이기에 해당 진로에 대한 내적 확신이 부족했다. 어떠한 '일'에 대해 확신을 갖기 위해 필요한 실질적인 정보값은, 아무래도 직접 경험을 해야만 얻어낼 수 있다고 판단했다. 가벼운 마음으로 시작했던 카페 아르바이트가 향후 방향성을 잡는 데에 큰 도움이 되었던 것처럼.


당시에 나는 이것을 마치 연애에 빗대어 생각했다. 연애를 위한 '준비'로 이론 학습을 하는 경우는 드물다. 오히려 연애 경험 자체가 다음 연애를 위한 가장 효과적인 '준비'이다. 여러 연애 경험을 지속하다보면 막연했던 '이상형'은 점차 구체화되고, 대체로 보다 까다로워진다고들 한다. 점차 무엇을 알아야 하는지, 무엇이 나에게 맞는지 알게 되면서부터는 걸음의 방향이 좁혀지고, 보다 신중해진다. 무엇을 알아야 하는지도 모르는 상태에서는 제대로 된 걸음 하나도 내딛지 못한다. 최악의 경우 현실과 동떨어진 망상에 빠져 잘못된 방향으로 또는 본인에게 맞지 않는 방향으로 걷게 될 수도 있다. '책으로 배운 연애' 라는 표현처럼, '책으로 배운 영어실무', '책으로 배운 사업개발', '책으로 배운 마케팅' 도 경계해야 된다는 마음 가짐이었다.


그렇게 나는 취업 "준비"의 일환으로 모바일 앱 마케팅 스타트업, 모비데이즈에 조인하게 된다. 물론 아무 회사나 되는대로 골랐던 것은 아니다만, 분명 마음 가짐 자체는 짧은 기간 동안 많은 것들을 보고 배우며 향후 커리어를 세우기 위한 기초 경험치를 쌓고자 하는 마음이었다. 그게 1년이 되고, 3년이 되고 6년이 된 것일뿐. 

첫 스타트업 대표님의 가치관, "Life is short,"

와중에 '스타트업'을 '선택'한 이유는, 진입의 장벽이 훨씬 낮으면서 짧은 시간 내에 여러 경험들을 쌓을 수 있기 때문이었다. 특정 진로에 대해 확신이 없는 상태에서는, 확신을 갖기 위한 정보값 획득에 많은 시간적 금전적 비용을 들이고 싶지 않았다. 스타트업은 공채 주기를 맞출 필요도 없고 별다른 시험 준비를 할 필요도 없었다. 인턴임에도 불구하고 바로 실전에 투입되어 큰 노동량을 경험할 수 있었다. 또 '주어진' 것들에 국한되지 않고, 능동적으로 '새로운' 것을 개척해보며 다각도의 경험을 쌓을 수 있는 자유가 있었다. 흔히들 말하는 '수평적 의사결정', '자율에 기반한 업무 수행' 등 '스타트업 문화' 자체에 끌렸다기 보다는 그러한 문화 속에서 빠르게 경험치를 쌓을 수 있다는 것이, 스타트업을 선택한 유일한 이유였던 것이다.



콩깍지가 씌워 버렸어

입사가 확정된 이후 어마어마한 학습 과제가 주어졌다. 초기 스타트업답게 신입에게 달콤한 허니문 기간 따위는 없었다. 입사 첫날부터 바로 실전이었고, 부족한 부분은 주어지는 스터디 자료와 본인만의 성실성으로 메워야 했다. 당시 입사 이후 약 10일간의 학습기간이 주어지는데, 10일이 지나면 실제 시험지로 시험을 치렀던 것이 인상적이었다. 요리를 하려면 세상에 존재하는 주요 식재료 쯤은 숙지해야되듯, 업계의 주요 플레이어들의 이름과 대표 이름, 그들의 광고 상품과 특성 등을 달달 외워서 하얀 백지 시험지에 서술하는 방식이었다. 그간 공부했던 그 어느 것보다도 100% 암기 기반의 시험인지라 조금 당혹스러웠지만, 완벽하게 외워내기 위해 며칠 밤을 즐겁게 샜다. 돌아보니 그것은 가장 확실하고 솔직한 교육 방식이었다. 덕분에 업계 진입 2주차에 업계 내 주요 플레이어들을 줄줄이 꿰고 있는 사람이 되었고, 실무 진행도 보다 큰 그림 하에서 수행할 수가 있어 독립적인 의사결정을 내릴 수 있는 어엿한 (정규직과 실무적으로 다를 바 없는) 인턴이 되어 있었다. 이후 모비데이즈 생활의 곳곳에서 이러한 투박한 방식의 면면들을 볼 수 있었는데, 가령 업계 네트워킹 행사에 참여하더라도 그냥 참여하여 즐기는 것이 아니라, '명함 200장 교환하기' 등 다소 1차원적인 KPI 가 주어지곤 했다. 거친 야생에서 작은 몸집의 스타트업 종사자로서 살아남으려면 이처럼 간절함에 기반한 각고의 노력이 수반되어야 함을 몸소 배워나갔다.


3개월이 지나면서부터는 커다랗게만 보였던 이 스타트업 회사가, 업계 내의 어느 정도 위치에 어떻게 포지셔닝 되어 있는지 감이 잡히기 시작했다. 다달이 성장하고 있지만 여전히 갈 길이 멀고 아득하다는 것은 당시의 나로 하여금 가슴을 뛰게 했다. 이 회사의 그 누구도 아직 경험해보지 못한 새로운 매체 운영 경험 (2015년 하반기에 인스타그램이 광고플랫폼으로서 첫 모습을 선보이기도 했다), 어트리뷰션 툴 경험, 서비스 기획 경험 등 그 모든 것을 내가 먼저 이끌어볼 수 있다는 생각에 설렜다. '회사'에서 더 나아가 '업계' 레벨에서의 생각으로 확장이 되는데, 업계도 마찬가지로 타 업계 대비 신생 업계인 만큼, 내가 빠르게 성장하면 기존 인력들의 수준을 금새 따라 잡을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하였고, 젋은 나이에 업계의 몇 안되는 전문가가 될 수도 있겠다는 부푼 꿈을 갖기 시작하였다. 어린 나이의 객기가 8할이었겠으나 다시 돌아가도 비슷한 생각을 했을 것이다. 모바일 애드테크 업계는 빠르게 변화하고 있었고, 그 변화 곳곳에 놓인 비즈니스 기회들을 내 두눈으로 직접 보며 점차 나는 콩깍지에 씌이고 있었기 때문이다.


콩깍지가 씌었다는 것은 적어도 첫 스타트업 모비데이즈에서의 3개월이 매우 행복했다는 것. 짧고 굵게 경험치만 쌓으려 했던 나의 첫 스타트업 입사는 이 콩깍지의 힘으로 추가 휴학 및 학업과의 병행으로 이어졌다.

돌아보면 2015년, 2016년의 나는 초기 스타트업의 평균 연봉에 준하는 열정 페이를 받고 있었다. 업무 강도도 보통 강한 편이 아니었다. 매일이 야근이었고, 업무의 양은 '영겁' 이라는 표현으로 대변되곤 했다. 심지어 1년 휴학이 끝난 직후였던 2016년 2학기는 학교 통학과 회사 출근을 병행하는 극한의 라이프 사이클을 영위하게 된다. 출퇴근 하는 요일을 정하여 회사에 출근하고, 나머지 요일에는 학교에서 수업을 짬짬이 들어가며 업무를 원격으로 진행하였다. 이 때부터 주경야독(晝耕夜讀)이 아닌, 주경독 야경독(晝耕讀夜耕讀)의 삶이 시작된 것이다.

강의 시간에 수업에 집중이 될리 만무했다

단순히 업무의 '양'이 많았던 것이 아니다. 

한창 회사가 여러 사업 모델과 서비스로 성장가도를 달리던 때이다보니 부서 곳곳에 인력이 부족했다. 소수의 인력으로 똘똘뭉쳐 일당백 이상을 해내야만 그 모든 것들이 굴러갈 수 있는 구조였기에 모두가 맡은 바 직무 외의 것들까지도 커버해야만 했다. 모바일 앱 마케팅에 필요한 AtoZ 모든 서비스를 우리 회사에서 풀 스택으로 제공할 수 있게끔 단계별 서비스들이 막 꾸려지고 있었고, B2B 비즈니스의 생명과도 같은 업계 내 브랜딩을 위한 각종 컨텐트 비즈니스도 독자적으로 자리를 잡아가고 있었다. 기존의 0.2,0.3이 1이 되어가는 모습도 충분히 매력적이었지만, 0이 1로 거듭나는 모습을 직접 보고 듣고 느끼는 경험은 이루 말로 표현하기 힘든 벅참이었다. 회사가 운영하던 작은 네이버 블로그 - '모바일 광고 연구소'는, 업계를 대표하는 미디어 - '모비인사이드'로 거듭났으며, 회사가 위험을 무릅쓰고 꾸준히 주최했던 대형 컨퍼런스 -'맥스 서밋'은 업계 내의 대표적인 연례 행사로 거듭났다. 구글 스프레드시트와 타사의 애드서버를 활용하여 투박하게 운영되던 애드 트레이딩은 번듯하고 깔끔한 자사의 애드네트워크 플랫폼 - '모비 커넥트'로 거듭났고, 화이트라벨링 사업 제휴를 통해 어느새 어트리뷰션 솔루션 - '모비트랙'과 퍼블리셔 수익화 솔루션 - '모비원' 까지 갖추면서 번듯한 풀스택 애드테크 컴퍼니로 성장해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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