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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혜원 Apr 11. 2021

글로벌의 단맛과 쓴맛에 녹아버린 콩깍지

승환의 이야기(3) - 데스밸리(위기)

글로벌의 단맛과 쓴맛에 녹아버린 콩깍지

이러한 가슴 '벅참' 속에서, 또 다른 의미의 '벅찬' 임무가 나에게 주어졌다. 이제 막 1년 반 정도 정신없이 달려온 루키인데 글로벌 팀 하나를 구축하라는 명을 받게 된다. 앱 마케팅 비즈니스를 한국 뿐 아니라 해외에서도 수행할 수 있게끔 각 국가별 마케팅 전략을 수립하고, 전략 이행에 필요한 로컬, 글로벌 매체들과 파트너십까지 갖추어야 했다. 모바일 앱 비즈니스 업계는 글로벌 확장이 상대적으로 용이하다. 우리의 국내 앱 광고주의 앱 서비스가 원빌드 글로벌 서비스인 경우 (동일한 앱이 여러 국가에 동시 서비스 되고 있는 경우), 우리가 세계 각지의 앱 마케팅 전략을 제안하고 운영할 수만 있다면 수주액은 2배 3배, 그 이상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여러 경쟁사들을 놓고 보았을 때, 당시 글로벌 앱 마케팅을 제대로 지원하는 업체는 부재하였다. 미리 그 위치를 선점할 수만 있다면, 해외 앱 설치를 희망하는 모든 국내 광고주들을 독차지할 수 있는 기회였다. 0에서 1이 아니라, 2, 3 을 만들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는 생각에 가슴이 뛰었다.


마치 2015년에 맨땅에 헤딩을 하며 국내 마케팅 전략을 세워갔듯이 2017년 초에는 해외 마케팅 전략을 위해 맨땅에 헤딩을 하기 시작했다. 글로벌 마케팅 전문성을 표방하는 국내 경쟁사들의 자료들은 당시 기준으로는 내용이 부실했고, 웹 서치에 기반한 자료 수집 역시 한계가 있었다. 현지의 친구들의 목소리를 직접 담아낸 마케팅 전략이 필요했다. 2017년 작은 스타트업이었던 우리가 여러 글로벌 행사들 - 바르셀로나의 MWC, 시애틀의 TUNE POSTBACK, 일본의 TGS 에 적극적으로 참석한 것도 바로 그런 이유였다. 행사에 참여하는 수많은 회사들과 당장의 협업을 모색하려는 목적보다도, 각 국가별 현지 업계 친구를 만드는 것, 곳곳에 우리의 아군을 배치하는 것이 더 큰 목적이었다. 그러다보니 행사장의 부스들을 돌 때에는 간단히 회사 소개를 하면서 명함만 교환하였고, 오히려 행사 이후의 네트워킹 파티에서 술과 함께 하는 캐주얼한 만남들을 꾀하였다. 글로벌 유명 업체들에 대해서는 '적당한 직급자와 행사장 밖에서 생맥주 한잔 하기'를 KPI 로 잡기도 했다. 한번은 미국의 ASO (AppStoreOpimization) 회사 대표와 안면을 튼 이후 행사장에서 두어번 연달아 마주치게 되자, 생맥주 한잔을 제안해 보았다. 30분 정도 가진 비어챗 (Beer Chat)으로 미국 시장에서의 ASO 비즈니스에 대해 빠삭히 습득할 수 있었다.


사무실로 복귀해서는 출장에서의 네트워킹의 결과물을 뽑아내곤 했다. 현지의 지인 1명은, 1명에서 그치지 않고 그의 소개로 인해 3명, 5명 늘어갔으며 그들이 제공해주는 양질의 인사이트로 마케팅 전략은 제법 구색을 갖춰나갈 수 있게 되었다. 마케팅 집행 이력이 전무한 국가라 할지라도, 각 권역별로 뻗어있는 지인들에게 연락을 하여 필요한 정보값들을 구할 수 있었다. 해당 국가의 Top 인플루언서 리스트,  주요 커뮤니티 리스트, 그 외 각종 로컬 미디어 채널들의 정보들은 우리 팀의 주요 자산이 되었다. 나아가 페이스북, 구글과 같은 글로벌 미디어의 국가별 특색들, 가령 평균 cpc 단가, 클릭률, 광고 문구, 소재 특성 등에 대해서도 현지 친구들을 통해 데이터를 쌓아가며 로컬과 글로벌 모두를 아우르는 각 권역별 앱 마케팅 전략들을 수립할 수 있었다.

이 때, 우리가 준비해둔 로컬, 글로벌 매체들을 활용하기 위해서는 일단 마케팅 제안이 수주로 이어져야 했다.현지 친구들의 목소리가 반영되었다고 한들, 실제로 이를 활용한 레퍼런스 지표가 없기 때문에 광고주 설득을 위해서는 다른 전략이 필요했다. 필수 매체에서 더 나아가, 이제는 광고주들의 관심을 환기할 수 있는 '들어봄직한' 매체들에 대한 준비도 필요했던 것이다. 베트남의 "Zalo", 미국의 "스포티파이"와 같이 국가별로 유명한 앱서비스의 광고 상품들을 리서치하기 시작했다.


그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스냅챗"이었다. 미국은 2017년 여름 당시 페이스북/인스타그램 외에 '스냅챗'이 인기를 한창 끌면서 이제 막 '셀프 서빙 광고 플랫폼'을 런칭하였다는 기사를 발표한다. 이에 바로 스냅챗에 콜드 메일을 쓰고, 컨콜을 진행하였는데 재밌었던 점은 우리로부터의 연락이 스냅챗 역사상 '첫 아시아 국가로부터의 컨택'이었다는 것이다. 스냅챗 입장에서는 우리와의 협업은 당장의 눈앞의 이득을 위함이라기 보다는 미래의 가능성 (한국에서 유저 수가 치솟을 가능성)을 위함이었고, 셀프 서빙 광고 플랫폼 런칭도 영어권 국가에서만 진행되었던 시기였다. 그렇다보니 아쉽게도 몇 가지 주요 안내사항만을 안내해주고 추가적인 서포트를 얻긴 어려웠다. 그럼에도 뭔가를 개척했다는 뿌듯함에 광고주용 제안서와 내부 운영 가이드를 미리 만들고, 스냅챗용 소재 제작을 위한 서비스(당시 스냅챗에서는, 광고주들이 직접 스냅챗용 광고 소재를 만들 수 있게끔 웹 상에 간단한 툴을 만들어 두었었다.)까지도 직접 이용해보며 가이드를 제작해두었다. 그리고 이는 이후 북미 마케팅 제안서에 항상 빠지지 않는 단골 제안 매체로 거듭난다.


아무 것도 없이 시작했던 2017년 초와 달리, 2017년 말이 되자 우리는 각 권역별로 앱 마케팅 제안서가 마련되어 있었다. 그런데 처음 임무를 명 받았을 때로부터 딱 1년이 지난 2017년 말, 나는 무언가 이상한 것을 느꼈다. 일은 분명히 재밌고, 나는 내 나이에 쌓기 힘든 경험치를 쌓고 있는데, 무언가 잘못되어 가고 있다는 느낌. 스스로 0에서 1 을 만들어가고 있다는 만족감도 생각보다 크지 않았다. 잠시 멈춰서서 나를 돌아보았다. 눈 위에 두껍게 쌓여있던 콩깍지는 온데간데 없었고, 눈 아래 까만 다크써클만이 퀭하게 자리잡고 있었다.



지속 가능한 달리기를 위해 필요했던 인터벌

거침없이 달렸던 지난 1년 동안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말그대로 거침없이 달렸던 것이 문제였다. 기본적으로 젊음의 패기가 근간이 되어 달릴 수 있었지만, 분명 "콩깍지"의 힘이 메인 동력이었다. 불가능해 보였던 "맨땅에 헤딩" 의 결과물을 연속적으로 이뤄내자, 콩깍지는 두터워졌고 더욱 불가능해 보이는 것들을 기꺼이 시도할 용기를 갖게 만들었다. 이것은 주니어 입장에서는 대단하면서도 위험한 경험이었다. 소위 말하는 '성장뽕'에 취해 체력적으로 무리가 되는 선을 훨씬 넘어선 업무량을 받아들이기 시작한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점차 버거워지기 시작했을 때에는, 버거워지고 있다는 사실을 부정하였고, 개별 업무들의 완성도가 떨어지기 시작했을 때에는 나 자신을 자책하며 자괴감에 빠지게 되었다. '주어진 환경이 잘못되었다'라는 판단을 하지 못한 채, 어떠한 업무 만족도도 느끼지 못하며 '성장통'은 점차 그냥 '고통'이 되어갔다.


'성장의 기회'가 곳곳에 놓여있음은 분명했다. 스타트업 특성상 새로운 서비스를 위한 부서를 정식으로 창설하거나 담당자를 채용하기 전에, 일종의 베타 버전을 돌려볼 때에는 항상 기존의 인력들이 '겸업'을 했다. 덕분에 이미 쌓여있는 본업과 별개로 여러 일들을 경험해볼 수 있었다. 게다가 보통 그러한 신규 서비스들은 대체로 업계 내에서 큰 획을 그을 수 있는 서비스들이었기에 '콩깍지'의 두께를 더해주기에 모자람이 없었다. 그래서인지 그것은 추가 업무라기 보다는 성장의 기회로 다가왔다.


이미 업계 내 최고의 컨퍼런스로 자리 잡은 "맥스서밋"은, 2015년 당시 메인 캐시카우 본부였던 광고 사업본부의 월 매출액이 10억이 되지 않던 시기에 먼 미래를 내다보고 주최했던 일종의 큰 투자였다. B2B 브랜딩과 인적 네트워크 구축이 광고 사업의 핵심임을 간파한 대표님과 리더들이 주축이 되어 장소 대관부터 세션 기획, 연사 섭외까지 말그대로 AtoZ 모든 것을 수행하였다. 첫 해 성공적인 개최에 이어 매해 참석 규모를 배로 키워나갔는데, 내가 운영팀장과 글로벌팀 구축을 맡았던 2017년에는 3회차를 맞이하는 맥스서밋의 모든 것을 나와 광고 본부장 둘이서 도맡아 진행하게 되었다. 메인 테마를 정하고, 업계 내에서 큰 이슈가 되고 있는 주제들을 가지고 세션들을 기획하였다. 1,000 명 이상의 업계 사람들을 대상으로, 함께 논의해보고자 하는 이야기거리를 아이디에이션 하는 것은 제법 흥미로웠다. 머릿 속 상상으로 행사장의 청중들을 그려보고, 그들의 예상 질문들을 예측하며 콘티를 짜나가다 보니 주말 시간은 순삭이었다. 행사 전날에는 일과를 마치고 동료들과 다함께 행사장 세팅을 하였는데, 그 때에도 야근을 한다는 생각은 커녕 특별한 워크샵을 하는 기분이었다. 현수막과 엑스배너, 각종 부스와 팜플릿을 세팅하고 연사자와 청중들의 동선을 파악했다. 그 큰 행사장을 가득 메울 인파를 생각하니 가슴이 뛰었다. 행사 당일이 밝고, 나는 가장 첫 번째 세션과, 가장 마지막 세션의 사회를 진행하였다. '이제 3년차에 접어든 내가, 각 분야의 전문가들을 모시고, 1,000 여명의 청중 앞에서, 내가 기획한 컨텐트를 제공하다니..!' 지난 몇 달간의 주말 시간들이 스쳐지나가고, 처음 이 역할을 떠맡게 되었을 때의 당혹스럽고 염려스러웠던 감정들이 떠올랐다. '아, 역시 이 또한 엄청난 성장통이었구나. 지레 겁을 먹고 주저했다면, 이만큼의 성취감과 실무적 경험을 쌓을 수 없었겠지.'


그렇게 나는 '겁이 나더라도' 일단 모든 것을 성장 기회로 받아들이며, 본업 이외의 굵직한 여러 직무들을 계속하여 '겸'하였다. 10명이 넘는 광고 운영팀을 매니징하면서도, 글로벌 팀을 새로이 구축하고 있던 나는 본업 자체가 '겸업'이었으니, 사실 '겸업'을 여러 개 한 셈이다. 업계의 직장인 교육 플랫폼이었던 사내 아카데미 부서의 초기 서비스 구축을 위해 강사로서 강연 자료를 만들어 평일 저녁에 강연도 뛰었고, 외부 파트너사의 출강 요청에도 응하여 근무 시간에 출강을 뛰기도 하였다. 좋은 인재 수급을 위해 대학 캠퍼스 리쿠르팅도 적극적으로 나가고, 취준생들의 회사 방문 투어를 리드하기도 하였으며, 인턴십 제도의 첫 시행과 더불어 그들에 대한 교육 프로그램을 도맡아 진행하기도 하였다. 그 어떠한 스톡옵션이나 인센티브도 없이 미친듯이 전력질주를 했던 그 시절의 동력은 오로지 성장뽕, '콩깍지'였다.


2017년 연말 송년 행사에서 이색 시상식이 진행되었는데, 당시 내가 받았던 상은 '24시간이 모자라 상'이었다. 그 때부터였다. '일하는 재미', '성장하는 즐거움' 이 하나도 느껴지지 않기 시작했다. 그간 일궈온 업무적인 성과나, 회사의 성장에서 기인하는 기쁨과 만족스러움에 대해서도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 이상했다. 분명 두근거리는 가슴과, 넘치는 에너지로 더 많은 업무를 찾아다녔던 나였는데, 갑자기 불행해졌다. 그저 쉬고 싶었고, 속세를 벗어나고 싶었다. 체력적인 부침보다도 정신적으로 많이 피폐해졌던 것이다. 적당히 쉬는 시간을 가지면서 달렸어야 더 오래 달릴 수 있다는 것을 그 때는 몰랐다. 오걷낼뛰 (오늘 걸으면 내일 뛰어야 한다) 강박으로 인해 중장기적인 관점에서 나의 리소스를 플래닝하지 못했다. 멈추면 뒤처질 것 같아 마냥 달렸더니, 아이러니하게도 영원히 멈추게 된 것이다. 돌아보니 어느덧 만 3년 가까운 시간이 흘렀던 때였고,  앞만 보고 달려왔던 나는 이참에 쉬는 시간을 넉넉히 가져보며 내가 스타트업이라는 조직과 맞는 것인지 되짚어보기 시작했다. 그렇게 스물 여덟 나이에 나는 돌연 퇴사를 선언하고 다시 백수로 돌아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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