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환의 이야기(4) - 데스밸리(위기)
갑작스럽게 맞이한 백수 라이프 속에서, 나의 첫 스타트업 선택을 돌아보았다. 나는 왜 이렇게 빠르게 번아웃이 찾아 왔던 것일까. 모든 스타트업 종사자들이 다들 나처럼 빠르게 불타고 식어버리는 것일까. 돌아보니 나만의 인터벌을 갖추기 위해서는 다음의 것들을 갖추고 있었어야 했다.
나의 역량의 한계 지점에 대한 대략적인 인식
주어지는 업무들의 우선 순위에 비판적으로 피드백 할 수 있을 정도의 자존감 및 자신감
'착한 아이 콤플렉스'에서 벗어나 용기내어 '거절할 줄 아는' 역량
애석하게도 막 업계에 말을 처음 내딛는 주니어 입장에서는 위 세 가지 모두가 부족할 수 밖에 없다. 그저 나의 역량에 한계를 두는 것 자체를 수치스럽게 여겼고, 대표와 리더들에 대한 맹목적인 신뢰를 갖고 있었고, 착한 아이 콤플렉스에서 벗어날 줄 몰랐을 뿐이다. 그래서 인터벌을 갖추지 못하고 멈춰버린 것이다.
그렇다면 적정한 인터벌만 갖추었다면 나는 나의 첫 스타트업을 더 오래 다닐 수 있었던 것일까. 전력질주를 할 수 있는 환경이 큰 매력이었는데, 오히려 그것으로 인해 번아웃이 되어 질주를 멈춰버리자 나는 그간 내가 스타트업의 매력이라고 느꼈던 모든 것들을 꼼꼼히 따져보기 시작했다. 대기업이 나에게 맞는것일지, 스타트업이 맞는 것일지 이지선다로 따지기 전에 지난 3년 동안 나의 이상형으로 여겼던 요소들이 무엇이었고, 여전히 유효한 것인지 주관식으로 서술할 필요가 있었다. 그러자 콩깍지로 인해 제대로 인지하지 못했던 불호 요소들이 생각보다 많았고, 오히려 매력 요소로 오인하고 있었던 걸들도 생각보다 제법 있었다. 이 때의 회고는 나의 다음 행보를 정하는 데에 있어서 큰 이정표 역할을 해주었다.
자율적, 자기 주도적으로 일할 수 있다는 것은 분명 가장 큰 매력이었다. 업무를 하고 싶은대로 할 수 있었고, 상사 눈치를 보며 일할 필요가 없었다. 각 팀마다 분기별, 월별 목표가 어느 정도 정해지면 이를 달성하기 위한 전략과 실무적인 방법 등은 실무자들이 각자 직접 알아서 플래닝하고 수행하면 되었다. 분명 회사 입장에서는 직원에 대한 신뢰가 어느 정도 바탕에 있지 않고서는 불가능한 업무 조건이기에, 혹여나 잘못된 채용으로 인한 출혈을 (그들의 불성실한 근태와 저조한 업무 퍼포먼스 등) 어느 정도 감수하면서 자율적 문화를 유지하는 것이었다. 이는 나로 하여금 특정 제약 조건에 구애받지 않고 마음껏 나의 역량을 펼칠 수 있게끔 해주는 최고의 문화었고, 전력질주를 할 수 있었던 제1조건이기도 하였다. 그런데 이는 어찌보면 "어쩔 수 없이 직원들이 자기 주도적으로 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기도 하였다. 스타트업에는 구체적인 실무를 가이드 해줄 수 있는 시니어가 부족하고 (상대적으로 비싼 연봉 대비 그들이 느낄 수 있는 유인이 당시엔 부족했다.) 각 부서들이 '최소한의' 인력으로만 구성이 되어 있었으며, 속도 또한 '천천히'가 아니라 '빠르게' 였기 때문에, 여러모로 누군가에게 여유있게 가이드를 제시해주면서 본인의 업무까지 수행하는 것이 불가능한 구조였다. 직원들이 '자기주도적'으로 일하면서 느끼는 편함이 있었다면, 회사입장에서는 '알아서 잘해주길' 하는 편함이 있었던 것이다. 자기주도적으로 넓은 커버리지의 실무를 섭렵하는 것까지는 매력적이었으나, 이에 대해 피드백 또는 가이드가 부족한 것은 업무를 수행함에 있어서 점차 부담감과 불안함을 갖게 만들었다. 아무래도 경험치가 부족하다보니, 겪지 않아도 될 시행착오를 아무런 가이드 없이 온몸으로 직접 부딪혀가며 겪게 되면서 출혈도 컸다. 얻게되는 경험치가 커서 좋았지만, 계속해서 누적되는 출혈 경험은 나로 하여금 점차 누군가에게 일을 배워보고 싶다는 마음을 갖게 만들었다. 그것이 스타트업에서 가능할진 모르겠지만, 최소한의 피드백과 가이드라도 받고 싶은 마음이 커져만 갔다. 나에게 있어서 점차 스타트업에서 말하는 '자율'은 'no feedback', 'no 사수' 로 해석되기 시작했다.
유연함 (Flexibility) 또한 자율에 버금가는 스타트업만의 큰 매력이었다. 형식적인 결재 프로세스나 불필요한 문서 작업이 없었고, 모든 것을 '계약' 이나 '규칙'의 형태로 딱딱하게 규정짓지 않고 필요에 따라 목적에 맞게 '알아서 잘' 행동하면 되었다. 가령 전일 야근을 좀 했으면, 그 다음날 좀 늦게 출근해도 된다. 출장을 가서도 주어진 법인 카드를 잘 쓰면서 다녀오면 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좀' 과 '잘' 을 문장의 형태로 규정하지 않는 것이다. 이는 일상 속에서 불필요한 고민의 여지와 심리적 불편함을 제공하였다. 명료하게 정해진 기준이 없다보니, 밤 9시까지 야근을 하고 다음 날 오후 12시에 출근을 하는 경우가 있는가 하면, 새벽 1시까지 야근을 하고 다음날 오전 11시에 출근을 하는 경우가 생기면서 이 기준의 모호함은 사람들 사이의 불필요한 심리적 갈등을 야기하곤 했다. 제공되는 '넓은 유연함의 영역' 내에서 결국 가장 이타적인 사람은 미니멈 레벨에서 최소한의 복지를 누리게 되고, 가장 이기적인 사람만이 맥시멈 레벨에서 최대한의 복지를 누리게 되는 현상이 발생한다. 사회 경험이 아무래도 부족한 주니어들은, 어떠한 것이 올바른 것인지 가치 판단을 하기가 어렵기 때문에 주어지는 유연함을 누리기 보다는 눈치를 보다가 결국 최소한의 지점에 머물게 되곤 한다. 유연함으로 인해 누릴 수 있는게 분명 많은 만큼, 거꾸로 누리지 못함으로 인한 심리적 불편함이 커진다 아이러니한 것은 이러한 '유연함'으로 인해 회사와 직원 양쪽 모두가 섭섭해하는 상황이 벌어지곤 한다는 것이다. "계약"에 명시된 것들에 국한되지 않고, 유연하게 서로가 서로를 믿으며 더 베풀고 헌신한다. 가령 주말에 연달아 빡세게 출근을 하면, 재량휴가를 지급해주기도 한다. 그러한 사내 규칙이 없더라도 말이다. 하지만 이러한 것들이 누적되다보면, 회사도 직원도 모두 서로가 더 많은 기여를 했다고 주장하며 섭섭함이 누적된다. '계약된 내용을 넘어서서, 회사가 더 베풀었는가, 직원이 더 기여했는가?' 누구에게 물어보든 그 당사자가 제일 섭섭해한다. 도대체 누구를 위한 유연함일까. 나에게 있어서 '유연함'은 점차 '애매함', '명료하지 않음' 으로 해석되기 시작했다.
그 외에도 겪어온 비즈니스 모델에 대한 고찰, IT 프로덕트에 대한 결핍, 인적 구성과 조직 구조에 대해서도 회고를 거쳤다. 그렇게 나는 내가 원하는 다음 스텝에 대한 기준점을 새롭게 세워보았다. 이제서야 나름 이상형에 대한 조건을 마련할 수 있는 근거 경험들이 생긴 것이다. 물론 지금은 또 기준이 달라졌으나, 당시 내가 짜놓았던 표에 의하면 아래와 같다.
1. 회사의 비즈니스 모델
매출을 발생시키는 제품이 회사의 소유인가?
매출을 발생시키는 제품의 매출이 양적/질적으로 성장하고 있는가?
매출을 발생시키는 제품이 참신한가?
2. 나의 직무
개인 직무가 아니라 팀으로 협업을 하는 직무인가?
업무 범위가 제품 전반에 영향을 끼치는 직무인가?
직무가 한국에 국한되지 않은, 글로벌 직무인가?
직무로부터 내가 재미를 느끼는가?
직무의 진입장벽이 적당히 높은가?
3. 나의 성장
연봉이 납득 가능한 수준인가?내공을 많이 쌓을 수 있는가?
회사의 업계 내의 위치가 적정 수준 이상인가?
커리어 전반적으로 놓고 보았을 때 진보하는 선택인가?
4. 워라벨
향후 1-3 개월의 워라밸은 어떠할 것 같은가?
향후 1년의 워라밸은 어떠할 것 같은가?
향후 3년의 워라밸은 어떠할 것 같은가?
그렇게 MECE 하지도 않거니와, 정량적이지도 않은 기준점들을 두고, 이런저런 선택지들을 고민했던 것이 이제와 생각하니 퍽 우습다. 각 배점표들을 거쳐 최고점을 얻은 선택지는 놀랍게도 (?) 또 스타트업이었다. 아마도 대기업 선택지는 "제품의 참신함", "나의 직무에서의 재미", "내공을 얻는 성장" 등에서 탈락한 것 같고, 전문직으로의 커리어는 "워라밸"에서 탈락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렇게 약 6주간의 휴식을 마치고 나는 또 다른 애드테크 스타트업 버즈빌에 입사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