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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혜원 Apr 11. 2021

중간 단계 스타트업의 조직 구조 특성

승환의 이야기(5) - 스케일업(성장)

처음 취업 준비를 할 때에는, 나 자신이 아무런 기술이 없음이 개탄스러웠다. 아마도 그것은 많은 취준생들이 어학이든, 컴퓨터 프로그램이든, 개발 언어든 여러 자격증들을 취득하기 위해 애쓰는 것과 같은 마음이었던 것 같다. 그저 나는 그것을 '이론 공부'의 형태로 취하려하기 보다는, 실제 전장에서 구르면서 취하려했던 것일 뿐. 첫 스타트업에 조인을 한 이후 전력질주를 했던 것도 그러한 조바심이 마음 한 구석에 자리했기 때문이다. 하루라도 빨리 도메인 지식을 쌓고 싶었고, 하루라도 빨리 새로운 광고 매체를 운영해보고 싶었고, 하루라도 빨리 새로운 어트리뷰션 (광고 성과 측정 프로그램)을 다뤄보고 싶었다. 그런데 한 차례 이직을 하고 보니, 기술 역량은 그저 수단에 불과하다는 것을 체감했다. 새로운 조직에서 나는 새로운 직무를 익혀야만 했고, 물론 간단하진 않았지만 그리 오래 걸리지도 않았다. 오히려 가장 중요한 것은 다름 아닌 커뮤니케이션 역량이었다.


하나의 기술에 집착한 직무는 1년 ~ 2년 정도 내다본다면 충분히 유의미하겠으나, 그 이상을 본다면 다른 인력으로 대체되기도 쉽거니와 그 이상의 가치를 창출하기가 어렵다는 판단이 들었다. 오히려 연차가 쌓여갈수록 개별 실무 스킬에 집착하기보다는, 그것들이 올바른 방향으로 쓰이게끔, 하나의 방향으로 온전히 집중하게끔 커뮤니케이션 할 줄 아는 것이 중요해졌다. 더욱이 스타트업 특성상 조직의 규모가 '급격히' 커지기 쉽고, 이에 따라 점차 각 팀별 업무 범위가 애매해진다. 그 사이에서 발생하는 비효율을 해소하고, 비는 부분을 채워넣는 것은 생각보다 어려운 과업이었는데, 꽤나 높은 강도의 커뮤니케이션 역량이 요구되곤 했다.


대부분의 초기 스타트업이 대표에 의한 중앙집권 구조라면, 버즈빌 경우는, 2018년 당시 (그리고 지금까지) 어느 정도 조직 규모가 커졌고, 이미 자치적인 민주주의 구조였다. 식상한 교과서적 표현을 빌리자면 '풀뿌리 민주주의'랄까. 대표와 각 리더들이 담당하고 있는 직무 범위는 제한적이었고, 권한도 함께 제한적이었으며, 실무를 담당하는 직원 개개인들에게 각각 책임과 권한이 크게 부여되는, 매우 자율적인 업무 구조였다. 심한 경우에는 팀간 싱크가 안맞는 경우가 있을 정도로 각 팀별 고유 영역을 서로 함부로 범하지 않았는데, 그러다보니 조직이 유기적으로 굴러가게끔 하기 위한 여러 싱크업 (Sync-up) 미팅 기제들이 곳곳에 놓여있었다. 짧게는 30분, 길게는 60분 정도 소요되는 커뮤니케이션이 발휘하는 힘은 매우 놀라웠다. 유관 부서 사이의 소통은 이러한 싱크업 미팅을 통해 해소되며, 그 이상의 불필요한 커뮤니케이션 없이 자율적으로 업무를 하였다.


Weekly 1 on 1

각 팀내에서는 모든 직원들이 직속 상사와 매주 일대일 (1:1) 미팅을 진행하며 한 주간의 업무 진행사항을 공유받고, 피드백을 주거나 우선 순위에 대한 재조정을 진행하였다. 얼핏 들으면 '오, 일대일 미팅이라니 신선하고 괜찮은데?' 또는 반대로 '일대일 미팅까지는 좀 과하지 않나' 싶을 수 있으나, 일대일 미팅의 가치와, 이 가치를 위한 시간 투자를 고려하면 이러한 시스템 존재 자체가 대단하다.


스타트업의 특성상 하루하루가 정신 없다. 일대일 미팅과 같은 기제가 없이는 직속상사와 진득하게 특정 아젠다에 대한 토론은 커녕 사소한 업무에 대한 공유도 쉽지 않다. 바쁜 와중에 딱 일주일에 한번 30~60 분 정도 컴팩트하게 진행 중인 실무 내용에 대해 공유를 하고, 또 반대로 매니저는 전사 방향성에 입각한 피드백과 우선 순위를 재조정 해주는 것만으로 매니저와 실무자 사이의 싱크가 해결될 뿐 아니라 업무의 진행 속도와 방향이 최적화된다. 다만 팀원이 5명이라면 해당 팀장은 주 마다 5회씩 진행을 해야 되기 때문에 제법 빡세다.


여기서 중요한 건 1주일만 하는게 아니라 1년 52주 내내 꾸준히 한다는 점이 중요하다. 그렇게 bottom 라인부터 탄탄하게 싱크를 맞춰가며 실무단의 의견들이 top 의 의견들과 조율되며 회사가 유기적으로 움직인다는 것이 놀라웠다. 이러한 것들을 감안할 때, 짧은 싱크업 미팅들은 직원 입장에서도 '바쁨에도 불구하고 잘 챙김받고 있다, 피드백 받고 있다, 이상한 길로 빠지지 않고 있다'라는 심리적, 업무적 안정감을 가질 수 있게 해주며, 정신없는 와중에 업무들을 제법 정돈된 형태로 챙길 수 있게 해준다.


Quarterly OKR

위와 같은 일 단위, 주 단위의 협업 프로세스에서 나아가 분기 단위의 협업 프로세스 ; OKR 까지 갖춰가고 있었다. 지금은 많은 회사들이 이미 도입을 한 OKR 프레임워크이지만, 당시만 해도 괜한 불필요한 프로세스가 더해지는 것처럼 느껴져 KR 에 대한 시각이 마냥 곱지만은 않았다. OKR 이란 분기에 한번씩 진행하는 '분기 플랜'을 위한 프레임워크로- 팀마다 Objective (목표) 를 3 가지 정도 정하고, 각 목표의 달성여부를 측정할 수 있는 Key Result (결과물) 를 또 3 가지 정도 목표치로 잡아두는 방식이다. '분기'라는 기간은 제법 긴 기간이지만 이를 Key Result 단위로 쪼개어 목표치를 잡으니 제법 명료하고 가시적인 플래닝이 가능했고, 해당 목표치들로부터 역산하여 과제물들을 생산해보니 월별, 주차별 투두들까지도 하나의 선상에 놓일 수 있었다. 이는 매일 하루하루 열심히 사는 우리로 하여금 목표 의식을 잃지 않게 해주었고, 또 매너리즘에 빠지지 않게 도와주는 기제였다. 물론 OKR 작성 자체에 시간이 제법 소요되었는데, 분업화된 팀들이 서로 협업을 해야 달성할 수 있는 목표치들이 있다보니 초안을 기반으로 서로 싱크를 맞춰가며 해당 분기내 진행 가능 여부를 타진하며 OKR 을 정교화할 필요가 있었다. 플래닝 기간에 싱크를 잘못 맞춰두면 분기를 통째로 허비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최대한 유관부서들과 꼼꼼히 싱크를 맞추는 것이 중요했다.

비즈니스 모델 특성상 팀간 협업이 많지 않았던 모비데이즈와 달리 버즈빌은 유기적인 협업이 필수적인 조직이었다. 배가 산으로 가지 않게 하기 위한 전사 싱크업 미팅도 격주로 진행되었고, 필요에 따라 자발적으로 팀간 미팅들이 정례화 되기도 했다. 그 근간에는 분기별 진행하는 OKR 플래닝과, 이를 기반으로 진행되는 주간 1:1 미팅들이 자리잡고 있었다. 하지만 나름 정교히 짜여져 있던 협업 프로세스 하에서도 여전히 개선되어야 할 점들이 곳곳에 놓여 있었다. 입사한지 3개월 정도 지나면서 나는 그것들을 느끼기 시작했고, 소매를 걷어붙여 뜯어 고쳐야겠다는 마음을 먹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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