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환의 이야기(6) - 스케일업(성장)
세분화된 조직 하에서 가장 힘들었던 부분은, 우선 순위에 대한 의사결정이었다. 나는 A 라는 과제가 가장 중요한 과제라 하루 빨리 이를 해결해야 하는데, 공감대 형성이 되지 않은 개발팀 입장에서는 한참 후순위로 둔다. 분기 플래닝에 반영이 되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이유로. 그렇다고 분기별 플래닝 시에 미리 이야기하면 반영이 쉽게 되는 것도 아니다. 이번 분기에 반드시 A 과제를 수행하여야 하는 이야기를 해도 '반드시 해야 한다'는 과제들이 여러 팀들에서 인입되기 때문에 개발 부서의 플래닝에 쉬이 반영이 되질 않는다. 심지어 개별적으로 미팅을 통해 해당 사안의 중요성에 대해 각종 근거 자료를 시각화하여 어필을 하여도 설득이 되질 않는다. 결국 우리 모두는 한 회사를 다니고 있지만, 목표로 삼고 달리는 지점이 달랐던 것이다.
누군가는 "매출 증대"를 목표로 하고, 누군가는 "시스템 안정"을 목표로 하고, 누군가는 "직원들의 복지"를 우선시하고 있다. 재밌는 사실은 회사 레벨의 최종 목표는 "매출 증대"이기 때문에 거기서 발로한 분기 플래닝은 분명 매출 증대와 관련된 액션들이어야 한다. 하지만 이것이 부서별 Objective 와 Key Result 로 쪼개 내려오면서 상호간 gap 이 생기고, 점차 벌어지더니 아예 다른 목표를 바라보며 일을 하게 된 것이다. 이 와중에 스타트업 특성상 리소스가 넉넉할 리가 없으니, 부족한 개발 리소스를 두고 서로 다른 목표들 사이의 우선순위 갈등이 벌어지게 되는 것이다. 팀 리더들 사이에서 조정을 해주면 좋으련만, 사사건건 모든 아젠다들에 대해 팀 리더들이 조율을 해줄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개발자 채용을 더 해주면 좋으련만, 그것 또한 뜻대로 되는 것이 아니었다. 결국 개별 실무자들의 커뮤니케이션 스킬에 따라 과제 진행 여부가 좌지우지 되곤 했다. 소위 말빨이 부족한 사람들은 뒤처지기 십상인 구조였던 것이다.
심지어 광고 플랫폼 비즈니스의 특성상 팀별 목표가 '다름'에서 더 나아가 '반대'인 경우도 있다. 광고 플랫폼에게 있어 '광고주'도 소중하고, '앱 퍼블리셔'도 소중하다. 퍼블리셔가 있어야 광고 지면을 판매할 수 있고, 광고주가 있어야 광고 지면을 구매할 수 있다. 퍼블리셔는 본인들의 앱 유저들에게 더 많은 혜택을 주기 위해 광고 소비에 대한 보상을 크게 주고 싶어한다. 광고주는 본인들의 광고 성과를 위해 광고 소비에 대한 보상을 지나치게 크게 주는 것을 경계한다. 퍼블리셔는 본인들의 유저경험을 위해 자극적인 소재의 광고는 차단하고 싶어한다. 광고주는 본인들의 광고 성과를 위해 가능한 광고 소재를 자극적으로 만들고 싶어한다. 멀리갈 필요도 없이 퍼블리셔는 광고 지면을 비싸게 판매하고 싶고, 광고주는 광고 지면을 저렴하게 구매하고 싶어한다. 이러한 본질적인 이해관계의 대립을 풀어야 하는 것도 바로 팀간, 실무자간 커뮤니케이션이었다.
이렇게 벌어진 거리를 좁히는 데에는 대단한 커뮤니케이션 비용이 요구되었다. 기본적으로 거리를 좁혀야 하는 팀 사이의 싱크업 미팅을 주기적으로 진행해야 했다. 업무의 밀접도에 따라 매주 또는 격주로 30분씩 싱크를 맞추며 업무 진행 사항을 서로 공유했다. 그리고 놓치기 쉬운 부분은 한 번 공유에 그치지 않고, 두 번, 세 번 재차 강조하며 공유하고 확인한다. 맞춘 싱크 내용들은 반드시 글로서 기록하였고, "TMI (too much information) is the best information" 라는 마음으로 '과하다'고 느낄 정도의 리마인더를 곳곳에 날렸다. 가장 많이 쓰는 문구들은 아마도 아래와 같았을 것이다.
혹시, 진행 상황, 업데이트, 팔로업, 더블 체크, 확인 , 싱크업, align, 검토, 피드백, 공유, 리마인더, 타임라인, 예상 일정, ...
예전에는 "커뮤니케이션"에 대해 크게 의미부여 하지 않았다. 이는 마치 어릴 적 도덕 교과서의 "길바닥에 쓰레기를 버리면 안된다."와 같이 숨쉬듯 당연하면서도 크게 어렵지 않은 행위로 받아들여졌다. 허나 "커뮤니케이션"의 한글 의미가 "소통"(疏通; 뜻이 서로 통하여 오해가 없음) 이듯, 이는 비단 말을 서로 주고 받음에 그치지 않는다. 영어 표현으로 be on the same page 라 하듯, 말을 주고 받음으로써 결과적으로 서로 머릿 속에 그리는 것들이 명확히 일치해야 한다는 의미이다.
(1) 서로 이야기를 주고 받아야 하고 -
(2) 서로의 이야기를 이해해야 하고 -
(3) 서로의 이야기를 서로가 제대로 이해하였는지 확인까지 해야 한다.
(4) 그리고 해당 이해를 바탕으로 후속 액션 아이템들을 수행하는 것까지 해야 비로소 '소통'이 된다.
이 때 각 단계별 필요 역량을 살펴보면 아래와 같다.
(1) 대화 자체에 대한 거리낌이 없게끔 외향적인 성향이면 좋고, 때론 끈기와 인내도 요구된다.
(2) 논리력에 기반한 "화술", "필력"이 필요하다. 때론 시각화, 데이터 가공 능력도 요구된다.
(3) 얼렁뚱땅 마무리 하지 않는 꼼꼼함, 철두철미함, 치밀함 등이 필요하다.
(4) 도출된 액션 아이템까지 이행할 수 있는 책임감과 오너십이 필요하다.
끈기와 인내를 가지고 사람들과 부단히 접촉하며 대화를 시도하고, 적절한 논리, 데이터에 기반하여 이야기를 풀어냄으로써 전달코자 하는 메세지가 온전히 되게끔 노력하며 그것이 잘 전달되었는지 더블 체크까지 한 후에 상호 진행하기로 한 액션 아이템까지 완수한다. 그래야만 비로소 제대로 커뮤니케이션을 하고 있다고 할 수 있는 것이다.
포맷
어떠한 '사실'을 공유하는 것도 커뮤니케이션의 일종이지만, 보통 어떻게 '생각' 하는지 공유하는 것이 더 중요했다. 그렇기 때문에 말 또는 글로서 소통하는 것으로는 '소통'의 목적을 달성하기 어려울 때가 많다. 적절한 포맷을 찾아 별도로 발표 자료를 만들어 피칭(Presentation)을 하거나 데이터 기반의 프로젝션(Projection)을 하기도 하고, 제대로 된 맥락 공유를 위해 히스토리를 요점 정리하여 공유하거나 선행 과제를 수행했던 사람의 목소리를 미리 준비하기도 한다. 어찌됐든 목적은, 소통의 대상이 되는 상대방이 나의 메세지를 온전히 이해할 수 있게끔 하는 것이 목적이기에 - 필요한 모든 일련의 노력들이 소통의 일부인 셈인 것이다.
채널
간단한 커뮤니케이션 - '속도'가 가장 중요한 경우에는 사내 메신저가 주된 채널이지만, 여러 맥락에 기반한 네러티브가 필요한 것이 흔하기 때문에 오프라인 미팅이 가장 흔한 방식이었다. 오프라인 미팅은 구두로 진행되지만, 요즘 미팅 노트 작성이 필수이기 때문에 보다 정돈된 커뮤니케이션이 가능하다. 만약 상대방의 견해를 즉각 듣기가 어려울 것으로 예상되는 경우 메일을 작성하여 전달하는 것이 가장 좋았다. 조금은 딱딱하게 느껴질지도 모르겠지만, 상대방이 생각할 시간을 가져야 하는 agenda의 경우 대체로 가벼운 주제는 아니기 때문에 오히려 더 적합한 채널일 수 있다. 그 외에 업무 외적으로 갖는 점심 식사나, 커피챗, 동아리 활동, 탕비실 대화 등을 통해 가벼운 분위기 속에서 주고 받는 대화들도 업무적 협업의 큰 윤활유 역할을 한다. 은연 중에 쌓여가는 맥락들이 아찔한 미싱 링크 (missing link)를 방지해주기도 하며, 상세한 배경 설명 등의 커뮤니케이션 비용을 절감시켜주기도 한다.
대상
경우에 따라 당사자에게 직접 이야기 하는 것이 아니라 그의 상사나 유관 부서에 우회적으로 이야기하는 것이 효과적일 때가 있었다. 이는 보통 당사자에게 직접 이야기하였을 때에 원하는 결과물이 잘 나오지 않는 경우이거나, 또는 당사자의 의사결정 권한이 제한적일 때에 유용했다. 또 이해관계를 함께 하는 유관 부서를 함께 미팅에 초대하거나, 당사자가 소속되어 있는 팀 전체를 초대하거나 - 더 많은 공감대를 한꺼번에 끌어낼 수 있는 상황이라면 여러명과 함께 싱크를 맞추는 것이 (물론 그만큼 그들의 시간을 뺏는 것이지만) 오히려 더 빠르고 효과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