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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혜원 Apr 11. 2021

스타트업에 대한 확신이 생긴 순간

승환의 이야기(7) - 엑싯(그 이후)

내게서 발견한 커뮤니케이션의 힘


플래닝한 바를 '잘' 커뮤니케이션 하여 제 때에 '잘' 이행하였다 는 의미를 넘어서, 향후 커뮤니케이션을 생략해도 될 정도의 '신뢰'를 갖추는 것이 중요했다. 일정 수준 이상의 신뢰가 쌓이게 되면, 여러 커뮤니케이션 단계 - 불안함을 해소하기 위한 더블체크 리소스, 머릿 속의 근거 로직들을 시각화 자료로 만드는 리소스 등 - 를 생략할 수 있었기에, '신뢰 쌓기'를 위해 별도의 공을 들일만한 가치가 있었다.

기본적으로 싱크업 프로세스를 100% 활용하여, 짧고 굵게 내가 원하는 바를 최대한 탄탄한 근거로 설명하는 데에 힘썼다. 간단한 요청과제라 할지라도, 그것의 도입 배경과 예상 효과까지 최대한 케이스를 나누어 꼼꼼히 설파하였다. 가령 새로운 광고 소재 사이즈를 API 로 연동하여 수급하는 간단한 과제를 제안함에 있어서도, 해당 광고 사이즈의 현재 한국 내에서의 마켓셰어 비율, 이미 활용하고 있는 타사 레퍼런스, 수급 이후의 예상되는 매출 증대액까지 산출하여 공유하였다. 개발 과제 요청이 마치 짤막한 논문을 쓰듯 작성했던 것이다.


이에 더해 추가적인 커뮤니케이션으로서 내가 반드시 수행했던 것은, 해당 과제의 결과물(매출, 유저 리텐션 등 의도했던 지표 임팩트)을 최대한 여러 사람들에게 공유하는 것이었다. 만약 해당 과제를 통해 매출을 늘리는 것이 목표였다면, 해당 작업으로 인한 실제 매출 증대내역을 사내 메신저를 통해 유관 채널에 공유하거나, 유관 부서와의 미팅 때에 반드시 공유하였다. 이것은 첫째로 이를 작업한 개발자들로 하여금 과제 진행에 있어서 오너십을 갖게 해주고, 모티베이션을 불어 넣어주는 효과가 있었다. 그저 요청받는 과제들을 수동적으로 '쳐내는' 매너리즘으로부터 벗어나게 해주고, 보다 능동적으로 과제들의 방향성에 대해 함께 고민을 하기까지 해주었다. 둘째로 나의 '요청'이 '유의미했음'을 입증함으로써 협업에 있어 나에 대한 신뢰도를 높여주는 효과가 있었다. 비즈니스 사이드의 수많은 사람들이 본인의 '요청' 과제가 중요하다는 것을 각종 데이터 기반의 프로젝션과 가설로 어필하지만, 그것이 들어맞었는가에 대해 검증하는 절차들은 생략하곤 한다. 본인의 '요청'에 대해 확신이 있다면, 그 결과물에 대한 '검증'도 확신을 갖고 진행하여 장기적으로 본인의 '요청'에 대한 신뢰도를 높일 필요가 있다.


나는 여러 팀들 사이의 '가교 역할'을 자처하고 방방곡곡을 누비며 최소한 나의 업무에 대해서만큼은 유관 팀들이 모두 싱크가 맞춰져 있도록 최선을 다하였다. 초기에는 온종일 '미팅', 메일링, 메세징만 하다가 끝나는 하루를 돌아보며 '오늘 하루 뭘 한거지?' 라는 현타를 느낄 때도 있었다만, 그러한 가교 역할 덕에 원하는 결과물을 더 이른 시간 내에 도출할 수 있게 된다는 것을 깨달은 후에는 도리어 미팅의 유의미함에 보람을 느끼곤 했다. 나아가 점차 스스로가 커뮤니케이션 역량에 대해 발군의 재능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면서부터는, 마치 날개 돋힌듯 소통의 나래를 펼치며 맡은 바 역할을 200% 수행해내게 된다. 분업화된 조직에서 필수적으로 요구되던 역량이 때마침 나에게 잠재되어 있었다는 것은 이제와 돌아보니 천운이었다.



"나를 위한 (회사를 위한) 전담 개발 팀을 만들어주세요"


커뮤니케이션의 쾌거들 중에 가장 큰 쾌거를 꼽으라면, 나의 과업의 효과적인 달성을 위한 전담 개발 팀을 창설해낸 커뮤니케이션이다.  IT 회사에서, 더군다나 스타트업에서는 더더욱, 개발자 리소스는 가장 귀한 회사 자원 중 하나이다. 그렇기 때문에 개발 리소스를 특정 제품에 쏟게 해준다는 것은, 해당 제품에 대한 강한 확신이 있을 때에만 가능하다. 그 전까지는 타 팀에 소속된 개발자의 리소스를 조금씩 공유하여 '빌려주는' 형태로 신규 제품 또는 신규 서비스의 성장 가능성을 두드려보는 것이 실상이다. 헌데 바쁜 스타트업의 특성상 실무단의 별다른 이슈 제기가 없으면 이러한 '빌려쓰는' 구조가 장기화 되어, 리소스를 빌려주는 개발자 입장에서도 지치게 되고, 리소스를 빌려쓰는 사업개발자 입장에서도 지치게 되는 현상이 벌어지곤 한다.


버즈빌에 입사하였을 때, 내가 속한 팀이 바로 그 '리소스를 빌려쓰는 사업개발 팀'이었고 이미 어느 정도 스트레스 한계치에 도달한 상태였다. 마주하고 있는 여러 비효율과 에로사항들을 주기적으로 어필을 하던 차에, 입사 한지 만 6개월 정도 되자 작심을 하고 메일로 정돈하여 개발 리더들에게 전하였다. 그것은 제법 장문이었는데, 여느 제안과 같이 제안의 배경과 함께 기대되는 전사적인 임팩트를 담아내는 데에 그치지 않고, 내가 담당하고 있는 제품/서비스 가 갖는 사내 우선순위를 감안하여 제안의 스콥(범위)을 조절한 것이 포인트였다. 무작정 '가장 중요한 프로젝트'라 어필하기 보다는, '대략 이 정도의 중요성'이니 적은 수의 개발자라도 좋다 하였고, 당장의 필요라기 보다는 3개월 정도의 유예기간을 제안하였다. 역시나 커뮤니케이션에 열려있던 조직답게 상당히 탄탄한 피드백이 돌아왔고, 깊은 공감과 함께 다음 분기에 팀을 생성해줄 것을 약속받을 수 있었다.


입사 9개월 만에 드디어 나를 위한 전담 개발 팀이 생겼다. 물론 부족한 리소스 하에서 우리 파트의 편의를 위해 결성된 신생 개발 팀이었던 만큼 여러 부분에서 안착 시켜야할 과제들이 많았다. 프로덕트 매니저도 신규 채용이 아닌, 내부 개발자의 포지션 전환이었기에 비즈니스 사이드에 대한 도메인 지식이 부족할 수밖에 없었고, 개발 인력도 PM을 제외하면 2명으로 구성된 소규모 조직이었다. 당장 눈앞에 두고 있는 개발 과제들을 공유하고 싶었지만, 그 전에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비즈니스 관점에서 우리 개발 조직이 나아가야할 방향성과, 그리고자 하는 청사진들을 먼저 공유하였다. 우수한 개발 인력들을 갖추게 되었으니, 이제 나아가야할 방향에 대한 싱크만 제대로 맞추면 훨훨 날아오를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그로부터 약 2년 여의 시간 동안 지난 9개월과는 비할 수 없을 정도의 빠른 속도로, 훨씬 큰 규모의 프로젝트들을 성공시키게 된다. 물론 팀을 안착시키고 얼마 지나지 않아, 해당 분기 안에 팀 내에서 여러 과업들이 빠르게 달성되었음을 리더들에게 공유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나의 제안을 받아들여준 덕분에 전사적으로 반드시 해결해야만 했던 서버 상의 레거시도 해결하고, 추가 광고 수급도 원활히 진행되고 있음에 감사를 표하면서 동시에, 본 제안이 회사 입장에서도 성공적인 제안이었음을 알리는 것이 골자였다.


스타트업에 대한 확신이 생긴 순간

내가 버즈빌에서 얻은 경험치들 중 유독 커뮤니케이션 경험이 가장 값진 것은, 비단 그것이 나의 업무적인 퍼포먼스를 끌어올려줬기 때문만은 아니다. 그것은 나로 하여금 그 어떠한 실무 기술을 갖추어도 가질 수 없는 강한 자신감을 갖게 해주었고, 나아가 스타트업에 강한 확신을 갖게 만들어 주었다.


주위 친구들이 흔히 묻던 질문인 "스타트업은 불안정하지 않니?" 에 대해 나 또한 크게 반론을 펼치지 못하였던 것은, 실제로 스타트업이 불안정했기 때문이 아니라 스타트업에 다니고 있는 나 자신에 대한 자신감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나 자신이 회사에 꼭 필요한 존재가 될 수 있다'라는 것을 깨닫는 순간, '나 하나로 인해 회사가 창출할 수 있는 부가 가치의 양과 질이 크게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을 깨닫는 순간, 나는 스타트업 커리어에 대해 강한 확신을 갖게 되었다.


첫 직장으로 스타트업을 '선택'했던 이유는 단순히 '취업 준비'의 일환으로서, 더 많은 경험을 빠르고 깊게 쌓기 위함이었다. 두 번째 직장으로도 스타트업을 '선택'했던 이유는 나름 알게 모르게 쌓였던 경험을 기반으로 세워본 이상형에 스타트업이 가장 가까웠기 때문이었다. 두 번째 스타트업에서의 스케일업 경험들은 스타트업에 대한 나의 호감을 더 강화시켜준 한편, 마음 한 구석에 있었던 스타트업에 대한 불안 요소를 완전히 메꿔주었다,


"스타트업은 직업 안정성이 떨어지지 않니?" 라는 물음에 이제는 이렇게 답한다. 

직업 안정성이라는 것은 그 직업이 결정할 수도 있지만, 일하는 자기 자신이 결정할 수도 있다고 생각해요. 오히려 결정권이 나 자신에게 있는 편이 더 안정적일 수 있죠. 스타트업에서는 나 자신에 대한 브랜딩이 가능하고, 그렇기 때문에 스스로의 역량으로 직업 안정성을 안전하게 영위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큰 회사라면 직장의 네임밸류를 뛰어넘기가 어렵기 때문에 오히려 완전히 안전하다는 느낌을 받기 어려울 것 같아요. 


적어도 스타트업은 개개인의 역량을 조명해주니까, 아니 조명받게 되니까 - 안정성을 스스로 쟁취할 수 있는 조직이라는 점에서 나에게 꼭 맞는 업계라는 확신이 생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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