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색의 포도와 레몬빛 가스등"에 대한 답장
“삶은 여전히 불안하지만, 불안이 있다는 것은 우리가 아직 살아 있다는 증거입니다.”
비가 내리는 젖은 새벽, 차 소리들 또한 촤-악, 빗물에 부딪치며 지나가는 소리가 내 마음에도 물기를 짙게 머금게 하는 시간입니다. 이런 날이면 문득 당신의 글이 읽고 싶어집니다. 회색의 포도와 레몬빛 가스등에 대한 답장을 보내고 싶어, 이렇게 무작정 편지를 씁니다.
내 사춘기 시절의 우울을 더 짙고 밀도 있는 성숙한 우울로 감싸주던 당신의 글이 참 좋았습니다. 당신의 세밀하고 감성적인 일상을 들여다볼 수 있는 그 글들은, 내게 몽실몽실한 담요처럼 포근한 감촉으로 다가왔습니다. 안개가 짙게 내린 어스름 저녁, 오렌지빛 가로등을 하나씩 켜가던 점등인을 나는 오래전부터 동경해왔습니다.
반복되는 육체노동을 좋아하지 않는 나이지만, 도시의 어둠 속에서 제복을 입고 가스등을 하나씩 밝혀 나가는 상상만으로도 삶이 유난히 낭만적으로 느껴집니다. 아날로그 감성이 짙게 밴 전등에 하나씩 불을 밝혀가는 그 일은 참 멋진 일처럼 여겨집니다. 때로는 어린 왕자가 방문했던 여섯 번째 별에서 점등인이 되는 모습을 상상하기도 합니다.
어둠을 밝히는 소명을 지닌 존재, 어쩌면 그게 나의 천직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만약 내가 지금이 아닌, 오래전 독일의 어느 작은 마을에서 태어났다면, 거리의 가스불을 하나씩 밝히는 점등인으로 살고 있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살아가면서 자신이 잘할 수 있는 일을 좋아하고, 그것을 업으로 삼아 살아간다는 것은 참으로 감사하고 충만한 일입니다.
나 또한 오랜 시간 ‘무엇을 해야 잘하고 즐거워할 수 있을까’ 고민하며 많은 시간을 보냈습니다. 그리고 쉰이 넘어서야 비로소 그 일을 찾아냈습니다. 물론 그 과정에는 힘겨움도, 고통도, 눈물도 있었지만, 지금의 나는 그 모든 시간에 감사함을 느낍니다. 그래서 나처럼 방황하고 고민하는 사람들에게 말해주고 싶습니다.
당장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찾지 못해도 괜찮다고요. 힘겨움과 고통, 눈물의 시간 또한 언젠가 자신이 맞이할 행복을 향한 여정의 일부라고요. 많이 방황하고, 고민하고, 경험해 보라고요. 그 모든 것들이 결국 당신이 원하는 방향과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단단한 밑거름이 되어줄 거라고 당신의 글을 읽으며 나의 진심을 사람들에게 전해주고 싶은 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