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홀로 걸어온 길"에 대한 답장
"추억할 시절이 있고, 그리워할 공간이 있다는 것은 내일을 꿈꾸는 씨앗이 있는 것이다."
<홀로 걸어온 길>을 읽으면서 나의 지나온 길을 떠올려봅니다. 특히 어린 시절의 추억들이 영화의 장면처럼, 영사기 화면이 돌아가듯 어느 한 시절로 그려집니다. 그 속에는 웃음도 있지만, 애틋함과 눈물도 한몫을 더하며 회상의 시간이 파노라마처럼 스쳐갑니다.
솔직히 누군가에게 그 장면들을 거침없이 보여주기에는 아픔도 큽니다. 우리의 시절이 그러했듯, 가난하고 없던 시절의 추억은 종종 씁쓸한 그림자로 남아 있으니까요. 그렇기에 당신의 풍요와 빛나는 삶이 결코 긍정의 에너지로만 다가오지 않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때로는 그 아래 깔린 우울이 지나친 여유로 느껴지기도 하고, 감사의 결핍으로 비치기도 하니까요. 하지만 돌이켜보면 사람은 누구나 각자의 환경 속에서 각자가 느끼는 어렵고 힘든 감정들이 있으니까, 서로의 입장을 헤아려보며, 역지사지의 마음으로 이해하려고 합니다.
내 고향 고창의 추억은 언제나 내 안의 따뜻함을 채워주었습니다. 그래서인지 삶의 터전이었던 성남에서의 어린 시절을 떠올리면 마음이 묘하게 일렁입니다. 그 시절엔 모두가 어려웠으니까요. 뻥튀기 할아버지가 동네에 오면 아이들은 자루 밖으로 튀어나온 쌀 튀밥이나 강냉이를 주워 먹느라 정신이 없었고, 귀를 막고 언니와 함께 주워 먹다 “너희들이 거지냐!"라며 엄마에게 귀를 잡혀 끌려가던 순간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고물장수 아저씨가 동네로 들어서면 집안 가재도구를 훑어보며 엿 바꾸어 먹을 것을 찾으려고 안달 나던 장면도 생생합니다.
그리고 지금도 가장 선명하게 남은 기억, 악기를 둘러멘 약장수가 마을에 들어섰던 날. 아저씨는 사람들을 불러 모아 기생충 약을 팔겠다고 떠들썩했습니다. 어린 사내아이 하나를 붙잡아 약을 먹이고선 기생충을 꺼내 보이는 시연을 하던 장면, 사람들은 혐오와 호기심이 뒤섞인 얼굴로 몰려들었고, 아이는 울지도 못한 채 두려움에 떨고 있었습니다. 그때 마주친 그 아이의 눈망울, 놀라움과 수치, 공포가 한꺼번에 뒤섞인 그 빛을 나는 아직도 잊지 못합니다. 하필이면 함께 놀던 친구였기에, 그날 이후로는 멀리했던 기억이 선합니다.
세월이 훌쩍 흘렀지만, 그날의 장면은 여전히 마음 한구석을 붙잡고 놓아주지 않습니다. 나조차 잊지 못하는데, 그 아이는 평생 그 기억을 안고 살아가야 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지금 같으면 범죄라 여겨질 일이었지만, 그 시절엔 인격의 존중이라는 말조차 낯설던 때였으니까요. 어쩌면 그날의 그 아이는, 어른이 되어 나처럼 과거를 되짚는 어느 순간에 문득 그 장면을 떠올릴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고는 상처가 될 떠올리기 싫은 과거의 아픔으로 남아있지도 모를 일이라 생각됩니다. 뻥튀기 냄새와 연기가 골목을 가득 채우던 그 해 질 녘, 서로의 마음속에서 아이였던 우리는 여전히 뛰놀고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어린 날의 추억은 짙은 그리움이자 때로는 상처, 눈물, 혹은 웃음으로 남기도 합니다. 하지만 누구에게나 그것은 홀로 안고 가야 하는, 어쩌면 성장의 큰 에너지가 되는 소중한 기억이라고 생각합니다. 바라건대 그 기억들이 우리의 발목을 붙잡는 아픔이 아니라 단단한 내면을 다지는 귀한 재료가 되기를 바랍니다. 저 역시 내일을 향해 나아가는 일상에서 맞닥뜨릴 여러 상황 앞에서도 흔들림이 없고, 더욱 단단할 나를 그려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