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사랑의 뜻>에 대한 답장
"사랑이란 인류가 멸망하지 않는 한 소멸되지 않을, 영원한 혼돈 속의 질서이자 우리 존재를 증명하는 마지막 불꽃이다."
당신의 <새로운 사랑의 뜻>을 읽어 내려가며, 나는 ‘사랑이란 무엇일까’ 곰곰이 생각해 봅니다. 사랑의 본질은 세대 간에도, ‘고전의 사랑’과 ‘현재의 사랑’ 사이에도, 그리고 앞으로 다가올 ‘미래의 사랑’ 속에서도 크게 다르지 않다고 느낍니다. 다만, 우리가 그것을 마주하는 형태와 방식은 시대마다 달라지는 것 같습니다.
사랑의 궁극은 남녀의 구분을 넘어, 어느 한쪽이 애정의 감정을 얼마나 표현하느냐의 문제이지, 남자는 능동적이고 여자는 수동적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2026년을 살아가는 저에게도 사랑의 완벽한 정의는 여전히 모호합니다. 너무 다양한 환경과 다양한 사람들이 만들어내는 복합적인 감정이라, 하나로 규정하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당신은 바하만의 작품을 통해 사랑을 ‘커다란 포기의 모험’이라 말했지요. 현실과의 접촉을 끊고, 사회적 질서 속의 안온함을 버리며, 심지어 자기 자신의 개성과 완성마저 유보한 채 오직 ‘너’라는 심연으로 침잠하는 행위. 당신이 묘사한 제니퍼와 얀의 사랑은 단순한 연애 비극이 아니라, 세속의 ‘나날의 질서’와 영혼의 ‘절대적 초월’이 충돌하며 빚어진 영성의 파편들이었습니다.
그중에서도 제 마음에 오래 남은 것은 남성과 여성의 사랑에 대한 본질적 태도 차이를 다룬 대목이었습니다. 사랑을 완성하기 위해 자기를 내던져 무(無)가 되려는 여자와, 사랑을 인생의 여러 가치 중 하나로 여기며 여자를 자신의 실존 속 부속으로 두려는 남자. 그 비대칭적인 열망의 간극이 결국 제니퍼를 죽음으로, 얀을 비겁한 삶으로 내몰았다는 분석은 냉혹하지만 정교하다고 생각합니다.
현대 사회는 이제 더 이상 사랑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거나 목숨을 버리는 행위를 ‘낭만’이라 부르지 않습니다. 오히려 자존감을 지키고, 서로의 독립된 세계를 존중하는 관계를 ‘건강한 사랑’이라고 말하지요. 하지만 당신이 말한, 모든 질서를 흔드는 ‘영구적 예외 상태’로서의 사랑, 즉 혼돈(Choas)으로서의 사랑이 내 삶에서 완전히 사라졌을 때, 과연 '나의 영혼이 이전보다 풍요로워졌을까'라는 의문이 남습니다.
어쩌면 나는 현대의 사랑이 요구하는 방향에 타협하고 있는 사람일지도 모릅니다. 창조 이전의 혼돈 같은 사랑의 신비에 다치지 않기 위해 거리를 두며, 세상의 인습에 기대어 오래 살아남는 길을 택하려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제 안의 기질은 때때로 제니퍼처럼 30층 높이에서 피안을 향해 몸을 던지는 그 극단적인 순수함을 여전히 동경합니다. “사랑하는 사람의 최고의 행복은 개성의 발휘가 아니라 상실 속에 있다"라는 그 서늘한 문장을 오늘 밤 다시 읽어봅니다.
나를 잃어버림으로써 비로소 너를 얻고, 그 찰나의 합일 속에서 죽음마저 기꺼이 수용하는 그 뜨거움. 비록 세상의 질서가 다시 나를 붙들어 비겁하게 살게 하더라도, 내 마음 한구석에는 언제나 ‘새로운 언어’로 사랑을 이야기하려는 열망이 살아 있기를 바랍니다. 당신의 치열한 문장들은 내 안의 잠들었던 사유를 깨워주었고, 그 불꽃같은 문장들이 내 일상 속에서 파괴의 종말이 아닌 새 창조의 에너지로 머물기를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