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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원 Nov 02. 2023

원주에서 잠깐 살아보니 좋더만요.   

<시골언니프로젝트> 원주에서 지역살이를 탐색하며 보낸 5박 6일

쌀쌀한 가을이 되니 무더웠던 여름이 새삼 그립다. 올여름 나에게 가장 쨍했던 기억은 원주에 있다. 여지없이 뜨겁고 습했던 7월, 지역에 머물며 삶을 모색해 보는 <시골언니프로젝트>로 원주에 갔다. #농사짓지않아도괜찮다고 말하는 원주에서 참가자 14명과 보낸 5박 6일의 기록이다.


서울 아닌 다른 곳에서 살기를 염두하고 있지만 그저 막연하다. 어떤 삶이 펼쳐질지 입체적으로 다채롭게 그려지지 않기 때문이다. 시골 하면 농사, 전원일기가 떠오르는데 그건 내가 원하는 삶과는 거리가 있다. 무지에서 오는 상상력의 한계. 지역에 어떤 사람들이 있고 어떻게 어울리며 살아가는지, 어떤 일 할 수 있는지, 내가 비집고 들어갈 틈, 나에게 흥미로운 요소가 있는지 알 길이 없었다.


혼자서는 좀처럼 거리를 좁히지 못하고 있던 그때 인스타그램 광고로 나타난 <시골언니> 모집공고! 본격 접수가 열리기 전부터 홈페이지를 들락거리며 지역별 프로그램을 살펴보고 고민하기를 여러 날, 접수가 시작되자마자, 그것도 사전설명회가 진행되기도 전에 모든 프로그램이 매진된 걸 확인하고 망연자실했다. 신청은 놓쳤지만 온라인설명회 참석했다. 원주 프로그램 <#농사짓지않아도괜찮아>를 쩌렁쩌렁한 목소리로 유쾌하게 설명하는 소민언니(한국농산어촌네트워크 대표)의 발표가 인상적이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원주에 대기를 걸어두었다.


띵동! 7월 첫째 주, 원주 시골언니 프로그램 취소자가 발생해 원한다면 합류할 수 있다는 연락이 왔다. '앗싸' 끝까지 기대를 놓지 않은 덕에 원주에 갈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그리하여, 프로그램을 통해 기대했던 점이 무엇이냐 묻는다면 1번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싶은 마음, 2번 좋은 사람들을 만날 수 있으면 좋겠다는 기대, 3번 <#농사짓지않아도괜찮아>라고 말하는 원주의 자신감, 매력의 실체를 확인하고 싶었다.


첫날 도착한 숙소이자 프로그램이 진행된 <피노키오 자연휴양림>은 바다보다 산을 좋아하는 나에게 천상의 조건이었다. 5박 6일 동안 아침마다 보았던 운무 드리워진 산맥, 눈 닿는 곳마다 만나는 푸르름, 시원하게 굽이치는 계곡 물소리, 촉촉한 흙내음, 까만 밤 촘촘한 별무더기, 장작 두 무더기를 쏟아 넣은 모닥불, 얼음장 같은 짜릿함을 선사하는 계곡, 철딱서니를 내던지게 만드는 수영장 미끄럼틀, 건강밥상까지 오감이 정화되는 시간을 보냈다.



아직 첫날, 오리엔테이션을 하고 '언니들의 농촌이야기' 수업을 들었다. <시골언니프로젝트> 원주 편 운영기관인 한국농산어촌네트워크 대표이자 밀과 연근 농사를 짓는 농민이자 서울에서 대기업에 다니다 귀촌 한 청년˙여성˙1인가구 소민언니의 사례를 들었다. 비책을 들을 수 있을까 싶어 귀가 쫑긋해졌다. 농지를 얻기 위해 관련법, 정책을 통달한 뒤에야 담당자를 설득해 습지를 얻을 수 있었다는 일화, 풍경 좋은 산자락 시골에 집을 얻었다가 밤이면 귀곡산장 같이 무서워서 오래 살 수 없었다는 일화, 그럼에도 불구하고 원주에서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사니 서울에서 달고 살던 잔병이 사라지고 PT를 받아도 생기지 않던 체력과 근육이 생기더라고, 연봉은 줄었지만 돈 말고 채워지는 게 더 크다고 했다. 뿐만 아니라 시골살이의 장단점도 가감 없이 솔직히 이야기해 주었다. 마을에서 일을 추진할 때 이장, 청년회장, 부녀회장 간의 권력관계를 파악하고 역학을 활용하면 문제가 수월하게 풀리기도 한다는 팁도 얻었다.


서울사람이 원주사람이 되는 과정에서 어려움에 부딪치며 절실함으로 깨우친 소민언니의 지혜는 알아야 한다는 것! 소민언니는 이주에 앞서 정책과 제도를 알고 전략적으로 준비할 필요성을 강조했다. 현재 시행 중인 청년농부, 이주 관련 정책과 제도, 여성농민 대상 복지정책은 어떤 것들이 있는지 소개해주었다. 덧붙여 그간 여성농민의 존재가 주체적으로 인정받지 못한 측면이 있어 농민정책, 복지 영역 안에서 개선이 필요한 부분이 많다했다. 수업을 들으며 농촌에서의 삶이 생각보다 호락호락하지 않음을 그렇기에 공부와 전략이 필요함을 소민언니의 문제해결력과 추진력이 대단함을 알게 됐다.    


둘째 날, '농촌 인구감소와 돌봄' 강의를 들었다. 김영희 박사님께서 한국사회 경제발전 과정에서 농업의 역할과 변화, 해외사례, 현재 농촌의 현실을 설명해 주셨다. 학자이면서 멜론 농부이기도 하신 박사님의 강의는 고딕체 이론과 다이나믹 현실을 오가며 생동감 있게 진행됐다. 내가 잘하는 건 공부라서 모르는 게 있으면 자격증부터 딴다는 박사님은 농사, 농기계, 식품가공 등등 두루 자격을 갖추고 계셨다. 10kg, 20kg 비료자루는 거뜬히 옮기고 직접 스마트팜 설비도 하셨단다. 해봐야 보이는 것, 할 수 있는 말이 있다고 하셨다. 그래야 지원사업 심사도 제대로 할 수 있고, 실용적인 컨설팅도 할 수 있다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농사짓다 보면 알고도 당하는 일이 수두룩 하다고 하시며 공사비가 과도하게 청구되었던 사례를 들려주셨다. 박사님은 1년 내내 농사에 집중할 수 없는 연구자의 실정에 맞춰 상반기는 강의/연구, 하반기엔 농사, 겨울에는 해외출장에 집중하신다고 했다. 척척 박사님 강의를 들으며 나태한 나를 반성했다. 나는 농사는 온 시간을 쏟아 1년 내내 짓는 거라 생각했었다. 그런데 박사님 얘기를 듣고 농사도 작물에 따라 투입시간을 조절해 다른 일과 병행할 수 있다는 걸 알게 됐다. 여러모로 인사이트&열정 가득했던 강의가 끝나자 참여자들의 질문이 쇄도했다.


보슬비가 내리던 둘째 날 오후, '산림치유'시간에는 피노피오휴양림 안에 있는 한방숲치유 웰니스센터에 가서 아로마향으로 현재 심리상태를 알아보고, 사전설문으로 알아본 사상체질과 교감, 부교감신경 검사결과를 토대로 한의사 선생님과 상담하는 시간을 가졌다. 나의 검사결과는 피로도 0점, 스트레스지수 거의 없음. 한의사 선생님께 뭔가 잘못된 것 같다고 말씀드리니 다른 지표를 종합해 봤을 때 스트레스를 많이 받지 않는 성향이 맞을 거라셨다. 땀나게 운동하고 근육량을 늘릴 것을 힘주어 말씀하셨다. 상담 후에는 우비를 입고 잔디밭 마당에 나가 맨발 걷기와 건강박수 치기를  했다. 익숙한 듯 낯선 시간이었다. '산림치유'는 사상체질별로 몸에 좋은 차를 마시는 것으로 마무리 됐다.      

ⓒ한국농산어촌네트워크


하이라이트는 밤이라고 했던가, 첫날 저녁에 진행 예정이었으나 오락가락 비의 영향으로 미뤄졌던 불멍! 저녁을 먹고 나니 부슬비가 그치고 하늘이 맑아졌다. 긴 말이 필요치 않았다. '오늘?', '오늘!' 새카만 밤 산길을 걸어 불을 피울 수 있도록 마련된 장소로 이동했다. 빗물에 젖은 의자를 닦고 동그랗게 모여 앉았다. 습기가 높아 부탄가스 한통이 바닥내고서야 나무에 불이 붙었다. 어쩌다 보니 모닥불 담당이 되었는데 눈앞에서 거침없이 솟아오르는 불의 위용에 매혹되어 장작을 아낌없이 넣었다. 타오르는 불을 보고 있자니 마음이 다 후련한 게 무릎이 뜨거운 것과 별개로 마음이 시원했다. 산모기도 말릴 수 없는 파멸의 열정으로 장작꾸러미 두 개를 다 태웠다.


셋째 날, 원주시내에 나가 '지역탐방'을 했다. 원주에 살지만 농사를 짓지 않고 다른 일을 하는 언니들을 만났다. 서울에서는 홍대뮤지션, 현재는 원주에서 문화기획, 문화공간이자 문화예술인력사무소인 <나만아는>을 운영하고 있는 민희언니, 동화책이 많은 책방 <아날로그>에서 한지염색, 한지공예, 그림 등등 전방위적 예술활동하는 조은언니를 만났다. 민희언니를 따라다니며 원주시내를 구경하 틈틈이 서로에게 궁금한 걸 묻고 답했다. 조은언니에게 한지염색을 배우고 민희언니와 유리 풍경을 만들었다. 언니들은 원주에 다시 오게 되면 찾아오라고 차 한잔 사주겠다 했다. 재밌는 일을 함께 만들어가는 사람들, 재밌는 언니들을 알게 됐다. 지역으로 삶터를 옮긴다고 할 때 문화예술, 여가활동은 포기해야 한다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언니들을 만나고서 엉뚱한 생각을 하게 됐다. 도시에서 나는 문화 소비자로 머물지만 지역에서는 나도 창작자가 되어 볼 수 있지 않을까? 낮은 문턱 뒤에 활짝 열린 기회가 있지 않을까?  들어가 볼 수 있는 예술영역이 드넓게 펼쳐져 있을지도 몰라.


"언제든 오세요! 바닥에서 자고 가셔도 돼요." - 책방 <아날로그> 조은 언니의 말
좌 <나만아는>, 우 <아날로그> ⓒ한국농산어촌네트워크


넷째 날, 학교에 갔다. 전교생 13명 황둔중학교. 아이들은 놀아야 한다는 교육관을 가진 교장선생님이 계신다는, 아이들이 원하는 것이 최우선시된다는, 아이들을 위해 온 동네가 지원을 아끼지 않는다는, 수줍음 많던 아이들의 변화가 드라마틱하다는 사전설명을 듣고도 이해하지 못했었다. 내가 경험했던 학교는 그런 곳이 아니었다. 학교에 도착해 3개 그룹으로 나뉘어 아이들의 설명을 들으며 학교를 탐방했다. 나는 1학년 서준, 하람, 교장선생님과 학교를 돌아봤다. 수줍음 많은 하람이와 교장선생님이 나누는 대화를 곁에서 들으며 이래도 괜찮은 걸까? 싶었다. "네가 설명해 봐", "싫어요.", "그럼 네가 좋아하는 선생님한테 이른다.", "그럼 저도 이를 거예요.", "그럼 너 전학시킨다.", "이를 거예요." 동공지진과 아슬아슬함은 나의 몫인 건가?



최신 게임기가 설치된 복도, 학생들이 언제든 꺼내 쓸 수 있게 비치해 둔 노트북, 고스톱을 좋아하는 친구가 만들었다는 평상, 종종 선생님과 고스톱을 친다고 했다. 방치된 창고를 개선하자는 아이들의 의견을 반영해 체육선생님이 손수 공사해서 만든 스크린골프 시설, 방치된 땅에서 꽃밭이 된 뒤뜰, 과학선생님보다 아이들의 의사가 우선시되어 흰색벽과 이동식 의자로 채워진 과학실을 돌아보며 농구경기가 보고 싶다는 학생을 위해 전교생이 부산에 갔던 일, 방과 후에 수학공부를 하고 싶다는 아이들을 위해 공부가 끝나길 기다렸다 교장선생님께서 아이들을 바래다주신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교장선생님과 과학선생님께서 아침마다 스쿨버스가 도착하기 전에 마중을 나오시는데 비가 오는 날엔 우산을 씌워주신다고 서준이가 이야기해 주었다. 지금 교장선생님이 부임하시면서 학년별로 위계도 없애고 아이들과 선생님이 허물없이 지낼 수 있는 환경이 됐다고 했다. 물론 교장선생님을 포함한 선생님과 아이들의 노력이 있었기에 가능했을 거다. 교장선생님은 아이들이 하고자 하는 건 무엇이든 위해가 되는 것이 아니라면 괜찮다고 하신단다. 게임해도 괜찮다, 그것도 한 시절이니 두어라 하신다고.


성공하고 싶어서 집에 가서도 늦게 까지 공부한다는 서준이와 그러지 말라고 말리는 선생님의 티격태격. "그건 선생님 생각이고요. 요즘은 경쟁사회라고요." "빨리 성공해서 뭐 할 건데, 천천히 해도 괜찮아. 공부하지 마, 놀아", 친구가 없어 심심하다는 학생의 말에 짓궂은 웃음을 띠며 "너 전학 가라. 가서 애들 좀 꼬셔서 데려와라" 하시는 교장선생님.


스크린골프장이 된 창고에서 교장선생님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마지막 월급날을 앞둔 교장선생님의 아쉬움과 교직생활의 소회 같은 것. 드디어 원하는 교육을 하게 되셨다고, 그간 힘든 교직생활에 정년퇴직날만 기다렸었는데 지금 같으면 몇 년은 더 할 수 있겠다고. 사회에서는 실패하면 만회하기 힘드니 학교에 있는 동안 아이들이 많이 경험하고 많이 실패하고 많이 놀았으면 좋겠다고. 학생들에 대한 선생님의 애정이 느껴져서 괜스레 내 눈가가 시큰했다. "야, 나 이제 다음 달이 마지막이야. 이제 나 없어" 교장선생님 말씀에 멀뚱멀뚱 눈만 껌뻑이는 서준이와 하람이. 오늘 처음 만난 나만 서운해?  


선생님께서 오늘 오신 분들이 여기는 어떻게 오게 됐는지, 어떤 일을 하는지 말해줄 수 있겠느냐고, 다양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아이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요청하시기에 자기소개 때도 하지 않았던 과거 나를 꺼냈다.


황둔중학교 학생 대부분은 황둔마을이 아닌 스쿨버스를 타고 한참을 가야 하는 외딴 마을에 산다. 영월군에 속하는 마을에서 오는 아이도 있다. 그마저도 여러 동네에 나눠져 있다 보니 동네에서 또래를 만나기도 어렵고 다양한 사람을 만날 기회도 적다. 학교에 오면 친구들이 있지만 통학버스를 이용해야 해서 정규수업 시작 전에 도착해 수업이 끝나자마자 집으로 돌아가야 한단다. 그래서 친구들과 어울릴 수 있는 시간을 만들어주기 위해 선생님들께서 아이들이 원하면 언제든 학교를 열어주고 직접 데려오고 바래다주신다고 했다. 아이들이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교류하 다양한 경험을 해볼 수 있도록 선생님, 학부모, 지역주민이 힘을 모으고 있었다.


아이들이 원하는 걸 소리 내 말하고 이루어지는/이뤄내는 경험을 하면 어떤 변화가 일어날까? 선생님께서 말씀하시길 수줍음 많고 말없던 아이들이 활달하고 적극적으로 변하고 있다고 했다. 원주시내에서 황둔중학교로 통학하는 1학년 서준이가 말하길 처음엔 1학년이 둘 뿐이라 발표도 그렇고 이것저것 다 해야 해서 부담스러웠는데 덕분에 초등학교 때에 비해 자신감도 생기고 사람들 앞에서 조리 있게 말할 수 있게 되었다고, 시내학교에서는 자신에게까지 돌아오지 않던 기회가 황둔중학교에서는 차고 넘치게 주어진다고 했다.

ⓒ한국농산어촌네트워크

노래방시설, 게임기, 농구 게임기, 골프, 탁구, 배드민턴 원하는 건 무엇이든 할 수 있는 강당에 흩어져 자유롭게 아이들과 시간을 보냈다. 처음엔 따로국밥처럼 서로 멀찌감치 있다가가 같이 탁구도 치고, 배드민턴도 치면서 조금씩 거리를 좁혔다. 점심을 먹고 나서 다같이 둥글게 앉아 서로 소개하고 시골언니 참여자들이 각자 어떤 일을 하는지 이야기했다. 아이들 관심분야가 있으면 도움이 될까 싶어 만든 자리였는데, 20, 30대의 직업과 10대의 관심사는 괴리가 분명했다. 생각만큼 질의응답이 활발히 오가지 않았다.


그 뒤에 삼삼오오 아이들과 섞여 "요즘 너희들 관심사가 뭐야?"라고 묻자 아이들이 노래, 아이돌, 뮤지컬 배우, 파일럿, 고교진학 같은 요즘 관심사와 고민을 이야기해 주었다. 삶의 큰 줄기를 선택하는 시기라 아이들의 고민은 깊고 복잡했다. 반면 아이들이 우리에게 궁금한 건 "남자친구 있어요? 결혼했어요?"같은 것들이었다. 10대의 생각과 고민을 가까이에서 들을 수 있는 귀한 시간이었다.


참, 노는 게 중요하다지만 그렇다고 황둔중학교 선생님들께서 학생들의 교육과 진로지도를 결코 등한시하지 않으신다. 여러 차례 고교진학 설명회를 진행하고 다양한 정보를 제공해 아이들이 자신의 진로를 찾아갈 수 있도록 돕고 계셨다. 내가 만난 3학년 아이들은 각자의 길을 찾아 각기 다른 고등학교로 진학을 준비하고 있었다.


처음 황둔중학교 일정을 들었을 때는 큰 기대가 없었다. 그러나 돌이켰을 때 단연코 가장 인상적인 시간이 됐다. 나 하나 살기 바빠 염두조차 하지 않았던 아이들, 미래, 교육, 어른의 역할 같은 주제를 고민하게 했다. 도대체 어떻게 살아야 하는 걸까?


황둔중학교 교장선생님께서는 말씀하셨다. "서두를 것 없다. 순간순간 즐기며 살아라. 속도에 연연하지 말고 열심도 말고 대충, 놀며 즐겁고 재밌게 살아라. 세상의 기준에 맞추려 아등바등할 것 없다. 하루하루가 쌓여 내가 되기에 별안간의 성공도 한 번의 실패로 모든 것이 무너지는 일도 없다. 다양하게 많이 경험하고 실패 속에 부딪치며 나를 발견하고, 그렇게 내가 좋아하고 잘하는 일을 찾아서 하면 된다. 중요한 건 속도가 아니다. 무얼 할 때 에너지가 나고 신나고 좋은지, 그걸 잘 관찰해라."


넷째 날은 여러모로 기억이 또렸한데 황둔중학교에서 돌아와 보낸 오후시간이 스릴 넘쳤기 때문이다. '자연탐구'를 계곡 물놀이와 수영장 미끄럼틀 타기로 해석한 우리는 그간 바라만 보던 계곡에 풍덩 몸을 담갔다. 계곡물을 끌어다 만든 수영장에 아무도 없는 틈에 몰려가 미끄럼틀을 탔다. 우습게 봤던 미끄럼틀의 아한 높이, 속도감, 물에 빠질 때 조마조마함까지. 미취학 아동의 상태로 돌아가 좋아라 웃고 떠들며 무한반복 미끄럼틀을 탔다. '이번이 진짜 마지막'을 몇 번이나 했던지. 수영장에서는 박사, 유학파, 통역사, 엔지니어, 학생, 나이 다 필요 없었다. 누가 더 높이 날아올라 재미나게 입수하는지가 가장 중요했다. 미끄럼틀 끝에 걸리는 사람에게 물까지 멋지게 슬라이딩하는 방법을 전수해주고 격려하며 입술이 파래질 때까지 놀았다. 꺄~~ 하하! 하하! 하하하하하!!! 큰소리로 정말 많이 웃었다.


다섯, 오늘은 '산림레포츠' 산악자전거 배우는 날. 산촌에서도 여가생활, 레저 스포츠는 가능하다! 그것도 도시에는 접하기 어려운 산악자전거를 풍광 멋진 교육장에서 전 국가대표선수에게 배울 수 있다. 산악자전거의 구조, 조작법, 기어변경법을 배우고 코스 실습 했다. 자전거를 탄 채로 중심을 잡는 법을 연습했는데 두발을 땅에서 떼고 자전거와 몸의 중심에 집중하며 손으로 방향을 조금씩 틀거나 페달에 닿은 양발에 번갈아 힘을 주며 버티는 거라는데, 그렇다는데... 좀처럼 버텨지지 않았다. 몸이 뻣뻣하게 굳어 기민함, 민첩함이 0으로 수렴했다. '중심은 흔들리면서 잡는 거예요. 자신의 감각을 믿으셔야 해요. 그게 맞아요.' 자전거 중심은 못 잡았지만 강사님의 말속에서 내가 왜 이리 흔들리며 사는지 실마리를 얻었다. 나를 믿어보자!


"자신의 감각, 느낌을 믿고 본능적인 움직임을 따르면 돼요. 중심잡기에 성공하는 0.5초 짧은 순간의 감각을 점으로 이어가다 보면 결국은 돼요."


그날 오후 '농촌탐구'시간 생존필수요리를 배웠다. 4개 그룹으로 나눠져서 치커리 떡, 감자전, 버섯전골, 나물을 만들었다. 나는 나물팀이 되어 수정언니가 전수해 주시는 건강레시피에 따라 노각무침, 가지볶음, 꼬시래기 볶음, 고사리달걀말이를 만들었다. 숲속정원에서 가든파티처럼 멋지게 차려놓고 한술을 뜨려던 찰나 '이게 뭐죠? 설마 빗방울인가요?' 일순간 대피모드가 되어 일사불란하게 음식, 식기구, 테이블, 의자를 옮겼다. 내 앞접시가 어디론가 가버렸고, 상차림은 엉망이 됐지만 정성 깃든 맛난 음식은 포기할 수 없어 디저트까지 꼭꼭 채워 든든히 먹었다. 우왕좌왕하며 같이 음식을 만들고 함께 먹으니 더 맛나고 마음도 부르고, 오랜만에 식구가 생긴 것 같아 좋았다.

ⓒ한국농산어촌네트워크


마지막날, 아침을 먹고 모여 '자기탐색' 각자의 <나의 귀촌 T-B-F>를 발표하는 시간을 가졌다. 참가자마다 현 상황, 지역살이의 동기와 목적, 목표와 가치, 자원, 취하고자 하는 방법이 달라 흥미로웠다. T(Target) 나의 시골살이 목표는 좋아하는 일 찾기, 소득 만들기, 건강한 신체와 체력, 하하호호 재밌게 살기. 서울살이의 목표와 다르지 않게 보편적이고 모호하다. 그렇지만 B(Benefit)를 거쳐 F(Function) '어떻게 목표를 달성할 것인가?' 하는 문항에서는 구체화된 것이 있다. 하나, 다양한 지역, 사람을 만나볼 것 둘, 근육을 5kg 이상 키울 것 셋, 종종 나사를 풀고 천진난만하게 살 것(긴장을 풀고 가벼운 마음으로 산다). 그리하여 결론은 미끄럼틀이 있는 수영장을 설치하고 같이 미끄럼틀 타며 박장대소할 수 있는 친구들을 곁에 둘 것.  



수미상관, 그래서 기대했던 바를 충족했느냐고 묻는다면 매우 그러함을 위의 긴긴 글을 통해 밝혀두었으니 그리 알아주시라. 즐거운 시간, 좋은 사람, #농사짓지않아도괜찮고 농사 말고도 다양한 일을 하며 살아갈 수 있음을 보았다. 나 말고도 디지털노마드, 여성 1인가구, 가족(양육), 로컬창업, 예술활동 등 다양한 동기로 지역살이를 고민하는 청년들을 만났다. 내적 연대감이 생겼달까? 내가 언젠가 지역으로 가면 여기서 만났던 친구들처럼 멋진 사람들을 만나게 되겠구나, 이런 사람들이 같이 있으면 지역에서도 재밌는 일을 만들어볼 수 있겠구나 하는 먼 훗날의 기대를 갖게 됐다. 무엇보다 원주에 가면 만날 수 있는 멋진 언니들이 생겼다는 게 최고로 좋은 점이다.


원주에서 가장 많이 들은 말은 '좋아하는 일', '재밌는 일'을 찾아라였다. 소민언니도, 교장선생님도, 총괄이사님도 말씀하셨다. 눈빛이 달라지는 일을 찾아 경쟁력 있는 포인트, 틈새를 찾고 거기서 가치를 창출하라고, '재미'를 추구하다 보면 돈이 된다고. 나에게 안광이 달라지는 순간은 언제일까? 미끄럼틀 탈 때? 내가 가진 성품과 강점, 재미(흥미/분야)의 적절한 콜라보가 필요할 것 같다.





원주에서 일주일을 정리하며 그때 새겼으나 까맣게 잊었던 마음가짐을 찾았다. 모른 척 말고 당분간 붙들고 고민해 봐야겠다. 어떻게 근육 5kg을 늘릴 것인가?      


스페셜 땡스 투 #한국농산어촌네트워크 #시골언니프로젝트 #농림축산식품부 #농사짓지않아도괜찮아



ⓒ한국농산어촌네트워크


※소개하지 못한 활동 : 목재 테이블 만들기, 한지 천연염색, 유리 풍경 만들기 ⓒ한국농산어촌네트워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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