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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쾌한글쟁이 Nov 15. 2022

괜찮아, 이제 우아한 거짓말은 하지 않아도 돼 ❷

-우린 더 잘 지낼 거야!

"엄마, 나 그냥 학교 자퇴하고 검정고시 보면 안 돼요?

 학교가... 너무 답답해요. 미안해, 엄마."


개학을 일주일 앞둔 어느 날 친구들로부터 '방폭'을 당한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된 그날처럼 

또다시 가슴에 커다란 바위가 쿵 떨어지는 기분이었다. 

재개발로 네가 태어났고 자랐고 초등학교를 다녔던 동네를 떠나 다른 동네로 이사를 해야만 했다. 

다행히 배정받은 학교엔 같은 초등학교를 졸업한 친구가 한 명 있었기에

(그래~ 그래~ 네가 강조하는 여자인! 사람인! 친구인! 여자(사람) 친구 말이야^^)

함께 등하교를 하며 새로운 환경에 적응을 하는 듯했지.

호방하고 성격 좋은 아빠를 닮은 형과 다르게 예민하고 유난했던 나를 많이 닮은 너라서

잘 적응할 수 있을까 내심 속으로 걱정하곤 했지만,

그 걱정과 달리 넌 1학기 학급 임원활동을 하며 친구들 사이에서 

유머러스하고 유쾌한 친구로 이름을 널리(?) 알리고 있다는 선생님 말씀에 한시름 놓았지.

어느새 마음에 맞는 친구가 생겨 도원결의 하듯 우정반지를 맞춰 끼고, 

함께 만나면 즐겁다고 찰칵찰칵 인생 네 컷을 찍어 남기기도 하고, 

용돈을 모아 모아 치킨 한 마리를 사서 나눠 먹기도 하고, 

007 작전하듯 카네이션을 사 와 부모들의 마음을 기쁘게도 했었다. 

그렇게 하루하루 너희들만의 시간과 놀이와 추억이 차곡차곡 쌓이게 될 즈음

여름방학을 하게 되었고, 매일 보지 못한 마음을 단톡방에서 이어 나갔었지. 

"어쩐지... 단톡방이 너무 조용하다 했더니, 

애들이 나 빼고 다른 단톡방을 만든 거였네...!!!!!"


며칠 전까지만 해도 시시콜콜한 이야기로 카톡 카톡 알림이 밤까지 이어졌었는데 잠잠해졌다고 한다. 

아무래도 이상해서 다른 한 친구에게 물어보니 너를 뺀 세 친구가 또 다른 단톡방을 만들었다고...


"친구들이 다른 단톡방 만든다고 하고 나간 거야?"

"아니, 그런 말도 없었어." 

"혹시... 친구들이랑 싸웠어?" 

"아니, 만나지도 않는데 어떻게 싸워."

"그럼, 네가 뭐 말실수한 거 있어?"

"아니, 그런 것도 없었는데. 왜 이러는지 모르겠네."


너만큼이나 당황했던 나는 기어이 너에게 하지 말아야 할 말을 꺼내고 말았다. 


"혹시, 친구들이 너 왕따 시키는 거야?"

"뭔가... 그런 거 같아."

"이제 곧 개학인데... 큰일이네."

"됐어~ 그냥 모른 척하면 돼" 

"쉬는 시간이나 급식시간에 마주치기라도 하면..."

"괜찮아! 그냥 피하면 돼."


차라리 뭔가 이유가 명확했더라면 너에게 닥친 상황을 이해해 볼 수도 있었겠다. 

드러나는 실수나 잘못을 하면 상대에게 사과하고 앞으로 고치면 된다. 

하지만 집단 따돌림은 늘 그렇듯 딱히 이유를 알기 어렵다.

가해자에게 이유를 묻는다 해도 '그냥요'가 대부분인 경우가 더 많다.

나는 그 이유를 드러내어 보려고 너를 참 많이 추궁했었다. 

'잘 생각해 봐, 친구한테 말실수한 거 없는지' '아님 너의 어떤 행동 때문에 친구 표정이 이상하지는 않았는지' '친구들 사이에서 너의 의견만 너무 내세웠던 건 아녔는지'...

하지만, 그 많은 물음에도 너와 나는 도무지 이 문제의 답을 찾을 수 없었다. 

그렇게 개학을 맞았다. 

하교를 하는 너에게 학교에서 잘 지냈냐는 물어보면 항상 '나쁘지 않았어'라고 돌아왔다. 

하지만, 엄마는 알고 있었단다. 너의 그 낮은 말투에서, 유난히 더 낮아 보이는 어깨에서... 

네가 우아한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것을.


내가 너를 낳고 길렀기에 나는 너를 잘 안다. 

'응애~'하는 울음만을 듣고도 배가 고픈지, 몸이 불편한지, 아픈지 알 수 단박에 알 수 있었다.

'둠칫~'너의 몸짓만으로도 세상 즐거운지, 두려운지, 무언가를 숨기는지 알 수 있었다.

'엄마!'하고 나를 부르는 말을 듣고도 지금 신이 났는지, 고민이 있는지, 무언갈 숨기는지 다 알 수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 알면서도 네가 나에게 전하려는 것만 받아들였단다.

때론 모른 척 지나가 주는 게 더 나을 때도 있으니까...


2학기 학부모 상담에서 담임선생님과의 통화에서 

 '그럴 아이가 아닌데, 한동안 아이가 엎드려만 있고 기운도 없고 그러더라고요. 

무슨 일이 있는 것 같은데, 아이가 말을 안 해요. 혹시 어머님 알고 계신 게 있으세요?' 

담임선생님과 오랜 대화 끝에 방학 동안에 있었던 일들을 얘기했고, 

선생님은 대충 그 아이들 사이에서 문제가 있었을 거라 짐작하고 있었으며,

단박에 아이의 이름을 지명하였다. 

선생님의 지명한 아이와 네가 말한 아이의 이름이 같았다. 

너희들은 숨긴다고 하지만, 아이들은 어른들처럼 감정과 행동을 완벽하게 숨기는데 미숙하다. 

때론 너희들이 그렇게 미숙하다는 것에 안심이 된다. 어른인 우리가 도울 틈이 있는 거니까.

다행히 담임선생님은 학기 초와 달라진 너의 모습과 분위기를 빠르게 캐치하고 문제를 파악하고 있었다. 

엄마와의 통화는 그 문제를 수면 위로 드러내는 과정 중 하나였을 뿐이었다. 

다행히 몇 주간 힘든 시간을 보낸 뒤, 너는 예전처럼 밝은 모습으로 돌아와 있다고 했다.

선생님은 이 문제가 잘 해결되어 네가 더 좋은 친구들도 사귀고 더 단단해져 있길 바란다며 응원하셨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선생님은 이 문제를 어떻게 하고 싶은지 물었다.


"아이와 얘기해 보고 결정할게요."

"네~ 어머님 그럼 충분히 대화해보고 다시 전화 주세요. 기다리겠습니다~"


선생님과의 상담은 끝났지만, 엄마의 마음은 더 아팠다. 

네가 '나쁘지 않았다'라고 하며 견뎠을 그 시간들을 지켜주지 못해서...


네가 집에 돌아오는 시간에 맞춰 초밥과 콩 인절미를 사 왔다. 

나만큼 너도 나를 잘 알고 있다. 식탁을 본 너는 말했지. 


"엄마, 나한테 무슨 할 말 있구나? 나랑 심각한 얘기 할 때마다 초밥 사 오잖아!"

"맞아! 대신 오늘은 꼭 네 생각을 솔직하게 얘기해 주면 좋겠어." 


우린,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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