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들의 밤을 지켜줘서 고맙다! 대한의 아들들아!!
밤하늘에는 별이, 땅에는 반딧불이가 그득했던 아름다운 그 마을 별뫼(星山 ).
엄마는 거기서 지내는 게 좋으면서도 슬펐단다. 정확히 말하면, 외할아버지와 외삼촌과 함께 지냈던 모든 날은 좋았고~ 외할아버지와 외삼촌과 떨어져 홀로 큰 집에 지내야 했던 그 몇 년은 슬펐다.
지금은 집터가 마늘밭으로 변해버렸지만, 여전히 생각난다. 외할아버지와 외삼촌과 엄마가 살던 그 집.
높고 두꺼운 나무 대문을 지나면 바로 왼쪽엔 푸세식 화장실이 오른쪽엔 텃밭이 있었어.
그 가운데 집으로 향하는 좁은 길이 있었고, 그 길을 따라 마당으로 들어서는 곳엔
솜씨 좋은 외할아버지의 손길을 닿은 동백나무 아치가 있었다. 고운 황토색 마당을 품은 집이었단다.
(비가 내리면 솔~솔~ 올라오던 그 고운 흙향기가 아직도 떠오른다, 그래! 냄새가 아니라 흙향기! ^^)
집 뒤엔 작은 대나무 밭이 있었는데, 그 대나무 밭이 산과 집을 경계 짓는 담벼락 역할을 하기도 했었다.
크지도 작지도 않은 작은 방 한 칸을 기준으로 왼쪽엔 광(창고)이 오른쪽엔 가마솥이 고정된 부엌과 작은 쪽방이 전부였던 그리 크지 않았던 집이었다. 그 크지도 작지도 않은 방에서 외할아버지와 외삼촌, 엄만 함께 먹고 함께 자고 지냈어. 세상에서 가장 안전했고 평온한 공간이었지...
하지만 가끔 그 공간이 공포로 다가오는 순간이 있었는데, 바로 등화관제(燈火管制) 훈련날이란다.
'등화관제(燈火管制)_적기의 야간공습에 대비하고 그들의 작전수행에 지장을 주기 위하여 일정지역이 일반등화를 일정시간 동안 강제로 제한하는 일' [출처:두산백과 두 디피아]
등화관제 훈련 날이면 외할아버지는 엄마랑 외삼촌이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이불을 말아 쓸 때까지 기다렸다가 방 한가운데 백열등 스위치를 눌러 껐단다. 그 시간이 늘 무서웠다.
유난히 겁이 많은 엄만 툭! 하면 울었단다. 봉선화 씨주머니처럼 말이야. 세상에서 가장 안전한 우리의 공간에 적의 폭탄이 떨어지면 어쩌나 하는... 뒷 산에서 북한군이 쳐들어 오면 어쩌나 하는... 전쟁이라도 다시 난다면... 등화관제날이면 늘 이불속에서 두려움에 끅! 끅!(외할아버지가 우는 소리 들리면 산에서 공산당이 소리 듣고 내려온다고 겁을 줘서... 참아가면서 울었단다, 참느라 목울대가 아팠단다) 대며 울었다.
소리를 참아가며 끅끅대며 우는 엄마를 보며, 외할아버지와 외삼촌은 끅~끅~대며 웃었다지~ ^^
전쟁을 겪진 않았지만, 어릴 때 반공 교육을 받아서인지 엄만 전쟁이 무서웠다. 그 두려움은 중학교 1학년까지 계속되었지(해마다 6.25를 앞둔 하루 전날엔 피난 짐을 싸고 잠이 들곤 했으니까).
어찌나 겁이 많은지. 그런데, 사람 천성은 잘 안 바뀐다고 여전히 겁이 많다 ^^
(내 아들이어서가 아니라) 겁이 많고 소심한 나와 달리 너는 용감하고 유들유들하고 호방하고 분별력이 강한 아이다. 나는 너를 키우는 내내 감탄하고 또 감탄했다! "내가 이렇게 멋진 아이의 부모라니! 엄마라니!!" 그런 네가 군인이 되겠다고 했을 때, 나는 좋았다.
일기예보와 뉴스 속보를 빼놓지 않고 챙겨보고, 군복 입은 청년을 보면 뭐라도 사 먹이고 싶은
오지랖(?)을 참으면서도... 그렇게 속도 없이 좋았다.
자랑스럽다! 너희들은 우리의 자랑이다. 부디 몸 건강히 부상 없이 잘 지내다 오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