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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쾌한글쟁이 Jan 27. 2023

아들이, ROTC 병영훈련에 들어갔다.  

- 우리들의 밤을 지켜줘서 고맙다! 대한의 아들들아!! 

밤하늘에는 별이, 땅에는 반딧불이가 그득했던 아름다운 그 마을 별뫼(星山 ). 

엄마는 거기서 지내는 게 좋으면서도 슬펐단다. 정확히 말하면, 외할아버지와 외삼촌과 함께 지냈던 모든 날은 좋았고~ 외할아버지와 외삼촌과 떨어져 홀로 큰 집에 지내야 했던 그 몇 년은 슬펐다. 


지금은 집터가 마늘밭으로 변해버렸지만, 여전히 생각난다. 외할아버지와 외삼촌과 엄마가 살던 그 집. 

높고 두꺼운 나무 대문을 지나면 바로 왼쪽엔 푸세식 화장실이 오른쪽엔 텃밭이 있었어. 

그 가운데 집으로 향하는 좁은 길이 있었고, 그 길을 따라 마당으로 들어서는 곳엔 

솜씨 좋은 외할아버지의 손길을 닿은 동백나무 아치가 있었다. 고운 황토색 마당을 품은 집이었단다.
(비가 내리면 솔~솔~ 올라오던 그 고운 흙향기가 아직도 떠오른다, 그래! 냄새가 아니라 흙향기! ^^)  

집 뒤엔 작은 대나무 밭이 있었는데, 그 대나무 밭이 산과 집을 경계 짓는 담벼락 역할을 하기도 했었다.

크지도 작지도 않은 작은 방 한 칸을 기준으로 왼쪽엔 광(창고)이 오른쪽엔 가마솥이 고정된 부엌과 작은 쪽방이 전부였던 그리 크지 않았던 집이었다. 그 크지도 작지도 않은 방에서 외할아버지와 외삼촌, 엄만 함께 먹고 함께 자고 지냈어. 세상에서 가장 안전했고 평온한 공간이었지... 


하지만 가끔 그 공간이 공포로 다가오는 순간이 있었는데, 바로 등화관제(燈火管制) 훈련날이란다.

'등화관제(燈火管制)_적기의 야간공습에 대비하고 그들의 작전수행에 지장을 주기 위하여 일정지역이 일반등화를 일정시간 동안 강제로 제한하는 일' [출처:두산백과 두 디피아] 

등화관제 훈련 날이면 외할아버지는 엄마랑 외삼촌이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이불을 말아 쓸 때까지 기다렸다가 방 한가운데 백열등 스위치를 눌러 껐단다. 그 시간이 늘 무서웠다. 


유난히 겁이 많은 엄만 툭! 하면 울었단다. 봉선화 씨주머니처럼 말이야. 세상에서 가장 안전한 우리의 공간에 적의 폭탄이 떨어지면 어쩌나 하는... 산에서 북한군이 쳐들어 오면 어쩌나 하는... 전쟁이라도 다시 난다면... 등화관제날이면 이불속에서 두려움에 끅! 끅!(외할아버지가 우는 소리 들리면 산에서 공산당이 소리 듣고 내려온다고 겁을 줘서... 참아가면서 울었단다, 참느라 목울대가 아팠단다) 대며 울었다.

소리를 참아가며 끅끅대며 우는 엄마를 보며, 외할아버지와 외삼촌은 끅~끅~대며 웃었다지~ ^^ 

전쟁을 겪진 않았지만, 어릴 때 반공 교육을 받아서인지 엄만 전쟁이 무서웠다. 두려움은 중학교 1학년까지 계속되었지(해마다 6.25를 앞둔 하루 전날엔 피난 짐을 싸고 잠이 들곤 했으니까). 

어찌나 겁이 많은지. 그런데, 사람 천성은 바뀐다고 여전히 겁이 많다 ^^ 

<훈련 들어가는 날 아침에 보낸 카톡> 

(내 아들이어서가 아니라) 겁이 많고 소심한 나와 달리 너는 용감하고 유들유들하고 호방하고 분별력이 강한 아이다. 나는 너를 키우는 내내 감탄하고 또 감탄했다! "내가 이렇게 멋진 아이의 부모라니! 엄마라니!!" 그런 네가 군인이 되겠다고 했을 때, 나는 좋았다.


일기예보와 뉴스 속보를 빼놓지 않고 챙겨보고, 군복 입은 청년을 보면 뭐라도 사 먹이고 싶은

오지랖(?)을 참으면서도... 그렇게 속도 없이 좋았다. 



 자랑스럽다! 너희들은 우리의 자랑이다. 부디 몸 건강히 부상 없이 잘 지내다 오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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