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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쾌한글쟁이 Jan 31. 2024

"며느리는 딸이 아니다!" 어머님은 말씀하셨다.

딸이 안 되면 어때? 지금도 충분한데~ ^ ^

인터넷 쇼핑을 하지 않았는데, 오전에 택배가 도착했다.

어머님이 보내신 거다.

이 택배를 보내기 위해 어머님은 전날 새벽부터 아버님을 닦달하셨을 것이다.

(시가는 시내에서 차를 타고 30분을 가야 마을 입구가 나온다) 안 봐도 훤하다~ ^ ^

택배 상자를 뜯자 습기를 머금은 흙냄새가 확 풍겼다.

곧고 흰 냉이 뿌리에 미처 털어내지 못한 흙이 콩가루처럼 묻어 있다.

한 겨울에 냉이라니...

도대체 어머님은 냉이를 어디서 캐오신 걸까?

어머님이 보내는 택배는 계절을 알 수 있다.

두릅나무 어린 순을 가지런히~ 넣어 보내면 봄이라는 것을,

껍질 한 겹 남긴 옥수수를 보내면 여름이 깊어졌다는 것을,

선산에서 주웠을 밤이랑 호두를 보내면 내가 사랑하는 가을이 왔다는 것을,

마당 대추나무에서 딴 잘 말린 대추와 남편 주먹만 한 고구마와 감자를 보내면

이제 곧 겨울이 오겠구나...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다 말할 수 없지만 얼마 안 되는 논 밭에서 사계절 내내 씨를 뿌리고 키워낸 것을 끊임없이 보내오신다.


어머님이 보내는 택배는 자식을 향한 어머니의 사랑이 느껴진다.

오일장에서 사 온 구운 김을 먹고 무심결에 '맛있다'는 며느리 말에 구운 김을 100장을 사서 보내시고,

닭백숙의 능이버섯을 골라 먹는 모습을 보고 능이버섯을,

아! 그 틈에 이방인처럼 겹겹이 신문지로 싼 송이버섯 하나가 있기도 하다.

어느 해부 턴가는 어디서, 누구에게 들으셨는지

복숭아가 갑상선에 좋다며 해마다 보내기 시작하셨다.

아! 그리고 어느 해부턴 늙은 호박에 꿀을 넣어 달인 물을 보내신다.

마치 아기 새가 된 것처럼 어머님이 보내신 택배를 받아먹으며,

자식에 향한 엄마의 마음이 이런 걸까?라는 생각을 했다.

나는 일찍 엄마와 헤어졌기 때문에 '모정'이라는 단어가 주는 느낌을 모호하게만 갖고 있었다.


우리 (시) 어머니

한 낮 태양볕에 피부가 거칠어지고

거친 땅을 일구느라 힘줄이 솟고 발끝이 거칠어지고

고단함으로 손가락 지문이 사라졌지만,

어머님은 본인 당신이 '생각이 꽉 막힌 촌사람~'이 아닌

생각이 앞선 '신세대(^^)'라고 자부(?)하신다.

어머님의 자부심은 "며느리는 절대 딸이 될 수 없어. 며느리는 며느리다."라는 말을

본인 당신이 적극적으로 찬성하는 데 있다는데서 나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어머님을 통해 '엄마'를 본다. ^ ^


내 엄마면 어떻고 남의 엄마면 어떤가... 꼭 딸이 되어만 하는가? 때론 남보다 못한 부모자식 관계도 왕왕 있는데.

택배가 도착한 저녁엔 어머님 전화가 온다.


"아프냐?"

"아뇨."

"안 아프면 됐다. 자꾸 좋은 생각만 해라."

뚜... 뚜... 뚜...


맹물에 넣고 끓여도 차돌박이를 한 근 넣은 듯한 맛이 난다는 시판된장과

천 번 허리 숙이고 손길 더해 꼬투리에 콩알 가득 채워 키운 콩으로 직접 메주를 띄워 만든 어머님 된장 중 고민하다

어머님 된장으로 냉이된장국을 끓여냈다.

어머님이 끓이는 방법대로 콩나물도 한 움큼 넣어서.

한 사발 깨끗하게 비워내니 몸이 따뜻해진다.


곧,

뺨이 베일 듯 추운 겨울은 지나고 따뜻한 봄이 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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