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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배티영미 Jun 03. 2021

기쁜 그대, 빛날 당신



그는 나에게 기쁨이었다. 그것도 큰 기쁨이었다.

서른이 넘자 결혼이 일생의 과제가 되어 가는 날들이 계속 이어지고 있었다. 나이 스물에 알았던 '서른 즈음에'를 서른이 되어서도 부르려니 심히 처량해졌다. '머물러 있는  시간'이라고는 물론, 생각하지 않았다. 그러나 내가  추측했던 속도보다

훨씬 빨리  지나가는 시간들은 어느새 나를 '노처녀'라는  레벨로 몰아내고 있었다.

나는 다소 못된 여자였다. 이십대 때, 인생이 아직 만만해 보일 때  난 30대에 진입한 사람들을 볼 때마다 농반진반으로 "그 나이  될 때까지 뭐했어요?  나이만 먹었네."하고 놀리곤 했다. 그런데  이제 내가 정말  그 삼십대가 되고 만 것이었다. 인생이 작게 보이던 그 때 내뱉은 말들이 이젠 내 얘기가 되어버린 것이다.

그렇다. 나는 서른이 넘도록  모아놓은 돈도, 이렇다 할 직업도, 뽀송뽀송한 피부도 없는 가방끈만 긴 노처녀가 된 것이다. 외면할 수도 없는, 개선가능성도 없는 눈 먼 인간 하나 걸려들기 전에는 영겁의 세월이  지나도 헤어나오지 못할 '초라한  싱글'이 된 것이다. 물론, 겉으로는  당당한 싱글인 듯, 우리 사회에 만연한 연령주의, 결혼 강박증에 대해 냉소하며 마치 결혼은 적성에 맞지 않아  하지 않은 듯 교만을 떨었다. 그러나  혼자 있는  시간이  늘어나고  혼자 밥 먹고, 혼자 영화 보고, 혼자 텔레비전  보다가 웃고 난 후에는 정말 비참함과 슬픔이 뚝뚝  떨어졌다. 그렇게 애써 태연함을 가장한 채  평범한 주부의 꿈을 고이 접고 있을 때, 그가 내 앞에 나타났다. 심한 사투리를 쓰면서.

"영미씨  되십니꺼? 전 강태희라고  하는데요, 혹시 000 알아요."

각자 아버지를 통해  전화번호를 교환한 뒤 주고 받은 첫 통화에서 그는 전화기로 들으면 더 심한 사투리를  맘껏 쓰며 혹시 자기가 아는 사람을 나도 아는지 물어보았다. '촌스럽기는. 그게 첫 통화에 할 소리냐?'란 생각을 하며 겉으로는 상냥하게 그런 사람 모른다고  응답하였다. 이 후 별 시답지 않은 얘기를 한 후 만날 약속을  정하고 전화를  끊었다.

우리의 만남은 소소한 즐거움과 작은 말다툼과 아주 잠깐의 짜릿함을 거친 후 결혼으로 이어졌다. 결혼식에서는 나보다 부모님과 형제자매들이 더 기쁨에 겨워 울고불고 난리를 쳤다. 남편의 이름 '태희'처럼 결혼 생활은 대체로 기쁜 날들이었다. 얼마 되지 않아  '신명'이라는 아들도 태어나 정말 드물게 신명이  나는 시간들이 이어지고 있었다. "우울한 날들이여, 안녕"을 흥얼거리며 필생의 로망이었던 주부 코스프레를 하며 살던 어느 날, 나에게 큰 기쁨을  준 남편은  별 신호도 주지 않은 채 쓰러지고 말았다. 격무에 시달리며 스트레스를 꾸역꾸역  먹어대더니 기어이 대동맥이 꽉 막혀버린 것이다.

기쁜 날만 이어질 거라고는 기대하지 않았다.

우리 사는 인생은 한 치 앞도 알 수 없는 함정의 연속이란 것을 모를 리 없었다. 그러나 갑자기  닥친 시련은 생각보다 쓰라렸고 깊은 후회를 부속품으로 달고 왔다. '피곤하다고  할 때, 잘 들을 걸, 아프다고 할 때  병원에 데려갈 걸. ....' 후회해도 소용없다는 걸 알았지만, 할 수 있는 게 후회밖에 없었다. 입원한 남편 곁에서  그렇게 후회의 탑을 쌓아가고 있을 때 문득 그의 이름이 쓰여진 환자명찰을 보게 되었다. '그래, 태희, 큰 기쁨. 당신은 내게 기쁜 그대이므로 이 고통 역시 기쁨으로 변하게 해 줄거야. 내게 처음 왔을 때 큰 기쁨으로 왔으니 평생 나와 함께 기쁨을 쌓아가는 거야.' 그렇게 주문을 외우며 이름 두 글자 부여잡고 애써 웃으려 하였다. 예상대로  그는 수월히 회복하였다. 그러나 더 이상 예전의 거칠 것 없었던 청춘은 아니었다. 모든 음식물의 염도를 계산해야 하는 '평생환자'가 되어 큰 기쁨은 커녕 큰 짐으로 존재하는  삼식이로 탈바꿈한 것이다.

그렇게 삼식이가 된 어느날, 아이들이 엄마 아빠 한자 이름을 물어 보았다. 나는 "어, 아빠는 '클 태에 기쁠 희'야. 나는 '길 영에 아름다울 미'이고." 옆에 있던 남편이 깜짝 놀라 이렇게 말했다. "뭔 소리야, 클 태에 빛날 희지."

아, 그랬던 거였어? 순간, 그가 나에게 주었던 큰 기쁨이 휙 사라지는 기분이었다. 그리고  이해가 되었다. 기쁨은 순식간에  지나가고  일상의 지루함과 고통이 길게 이어지는 까닭이.

기쁜 그대가 빛나는 백수가 된 것이 마치 그 이름 때문인 듯하여 난 오래도록 개운치 않았다. 그리고 이름 뜻도 확실히 파악하지 못하고 결혼한  내 덜렁거리는 성격에 또 한번 속상해했다. 하지만 돌아보니  내 음습한 노처녀 생활에  그는 분명 '크게 빛나는'  존재였던 것은 사실이었다. 기쁨이 옅어졌다고, 건강을 잃었다고 그를 귀찮아 하는 것은 '의리'가 없는 행동이지 않겠는가.  비록 착각이었지만 그는 나에게  기대하지 않았던  큰 기쁨을 선물해 주었다. 이제 나를 기쁘게 한 그의 청춘은 지나 갔으나 나는 믿는다. 그와 함께 하는 인생은 반짝반짝 빛날거라고. 언젠가 크게 빛날 그를 기대하며 오늘도 난 물어본다.

'어이, 환자, 오늘은 살 만하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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