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 속에 녹아든 태국의불교
단연 불교의 나라, 태국
중국에서 시작되어 티베트와 인도를 거쳐 여정은 태국에 닿았다. 국민의 94%가 불교 신도인 태국은 자동차마다 자신들이 믿는 스님의 조각상을 모시고 다니는 명실상부한 불교의 나라다. 11세기 중반과 13세기 말, 버마와 스리랑카로부터 남방불교가 유입된 태국은 무엇보다 계율을 따르는 생활을 중시한다.
여행 초, 네팔에서 만났던 여행가 친구는 내게 태국에 가거든 불교 공동체를 방문해보라고 적극적으로 권유하며 시사 아속(Sisa Asoke)에 대한 정보를 주었다. 마침 태국 불교의 특징을 직접 체험할 수 있는 적당한 곳을 찾던 나는 망설임 없이 시사 아속을 새로운 목적지로 정했다. 방콕의 여행자 거리 카오산 로드를 벗어나 방콕 북부 터미널에서 깐따라락으로 향하는 야간 버스를 타자 친구와 나만 외국인이었다. 우리가 향하는 곳이 여행자들이 흔히 가지 않는 진정한 태국 현지 마을임이 확연히 느껴졌다.
밤새 버스로 10시간을 달려 다음날 아침 7시에 마침내 시사 아속이 있는 마을에 도착했다. 관광이나 개발의 때가 전혀 타지 않아 이국적으로까지 보이는 시골 마을을 보면서 앞으로 체험하게 될 현지 생활에 대한 기대감이 몽글몽글 피어올랐다.
지속 가능한 불교 공동체, 아속 Asoke
최근 여행자들 사이에서는 공동체 혹은 커뮤니티에 대한 관심이 급증하고 있다. 대표적으로 인도 동부에 위치한 오로빌(Auroville)과 프랑스의 떼제(Taize) 공동체 등이 있다. 역시 널리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태국에서 이상적인 공동체 생활을 성공적으로 영위해 가고 있는 곳이 있는데, 바로 자급자족이 가능한 불교 공동체 아속(Asoke)이다.
‘아속(Asoke)’이란 ‘슬픔이 없음’이라는 뜻으로, 노동의 가치를 알고 자신이 가진 것에 만족하며 자연을 사랑하는 삶을 추구한다. 이들은 지속 가능한 삶을 실천하고 불교적인 깨달음을 향해 나아간다. 물질적인 소유욕을 없애고 헌신과 봉사라는 윤리적 삶을 지향하지만 자신들만의 사회에 갇혀 지내지는 않는다. 필요할 때면 태국 정부에 비판적인 목소리를 적극적으로 내면서 궁극적으로는 태국 국민들을 위하는 공동체를 목표로 한다.
우리를 픽업하러 온 관계자의 차에서 내리자 온통 초록색인 풀과 나무들로 가득한 탁 트인 공간이 눈에 들어왔다. 그 사이로 드문드문 자연적 건물들과 파란 옷을 입고 돌아다니는 사람들이 보였다. 공동체라는 낯선 문화에 대한 첫인상은 새로운 세상으로 들어가는 통로를 만난 것처럼 조금은 어색했다. ‘쭙’이라는 이름을 가진 22살의 명랑한 아가씨의 안내에 따라 나는 나무 사이에 자리하고 있는 자연과 어우러진 소박한 집에 도착했다. 쭙은 거짓말 금지, 살인 금지, 간통 금지, 중독성 물질 금지 등 불자라면 아주 익숙한 공동체의 기본적인 규율을 설명한 후 이곳이 앞으로 내가 머물 곳이라고 얘기했다.
그녀가 나가고 난 뒤 나는 잠시 어리둥절해졌다. 하지만 생각지도 못하게 나만의 공간이 생겼다는 기쁨에 행복감이 한가득 밀려들었다. 짜 맞춘 나무로 인해 삐걱삐걱 거리는 소리조차 친근하게 들렸고 때를 맞춰 탁 트인 창문에서 들어오는 바람과 새소리는 너무나 사랑스러웠다.
노동과 자급자족을 중시하는 시사 아속
숙소가 정해진 후 기분이 좋아진 나는 햇살을 맞으며 활기찬 기운이 가득한 마을을 둘러보기 시작했다. 사원, 스님들의 숙소, 중심에 위치한 식당이면서 회의장이자 강당, 유치원, 학교, 도서관, 병원, 각종 작업장, 큰 마켓 등이 펼쳐져 있다. 마주치는 사람들마다 부러울 만큼의 미소로 인사를 건넨다. 그런데 여자든 남자든 모두 짧은 머리를 하고 있는 것이 신기했다. 이유를 물어보니, 머리가 길면 예쁘겠지만 머리카락에 신경 쓰느라 남을 도와줄 시간이 부족해지기 때문이란다. 생활 속에서 적극적으로 삶의 덕목을 실천하는 모습이 실로 놀랍게 다가왔다.
1975년에 설립된 시사 아속은 방콕, 치앙마이 등에 위치한 8개의 아속 중 가장 규모가 큰 곳이라고 한다. 노동과 자급자족을 매우 중시하는 아속 중에서도 특히 시사 아속은 작업장을 결합한 불교 마을로 스님들과 각 작업장의 관리자가 핵심 주체로서 일을 보고 있었다. 버섯 농장, 허브 약초 농장, 샴푸, 비누, 바구니 작업장 등에서 구성원들은 각자의 일을 책임감 있게 하고 있었다.
한국의 마트 몇 개를 합쳐 놓은 듯한 규모의 마켓에서는 여러 아속에서 생산된 제품들을 팔고 지역 사회 사람들을 연결시키는 역할을 한다. 좋은 물건을 만들어서 값싸게 사람들과 나누는 것이다. 놀라운 것은 이익이 발생하더라도 돈을 나누어 갖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공동체에서 필요한 만큼 사용하고 남는 돈은 지역 사회에 환원하기도 하고, 본부에 넘겨서 저축하거나 크고 작은 프로젝트를 실행한다고 한다.
하나씩 알게 될수록 현실적으로 불가능할 것 같은 삶의 방식이 지켜지고 있는 이 곳에 대한 호기심이 점점 커져만 갔다. 사람들이 잘 알지 못할 법한 곳에 이렇게 자신들만의 생활공간을 만들고 자급자족하며 살아가는 곳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놀라운데, 심지어 아이들의 교육까지 모두 책임지고 있다니 믿을 수가 없었다.
불교적 수행과 일상이 둘이 아닌 삶
시사 아속의 하루는 새벽 4시 30분에 스님들의 법문으로 시작해서 아침 6시에 수업 시작, 8시 30분 아침 식사, 10시 작업과 수업, 오후 5시 저녁 식사로 구성된다. 아침 식사 시간이 되면 마을의 중심에 있는 강당으로 모인다. 스님들께서 위쪽에 앉아 법문을 하시고 사람들은 공손히 듣는다. 하루 2번 식사 때마다 스님들은 법문을 통해 불교적 가르침과 철학을 일상 속에서 구체적으로 실현할 수 있도록 이끈다고 했다. 우리나라에서 일반 대중과 스님들과의 거리감이 늘 아쉬웠던 나로서는 매우 부러운 모습이었다.
부족한 불교적 지식과 아직 몸에 많이 배어 있는 습관을 혼자만의 미약한 수행으로 향상시키는 것이 힘들고 확신이 서지 않을 때도 있었다. 그때마다 바로 곁에서 불교적 가르침을 늘 접하고 따를 수 있는 좌표 같은 것이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을 늘 해왔던 나에게 시사 아속의 모습은 신선한 충격이면서도 부러움의 대상일 수밖에 없었다. 또한 모든 공간에 스님들이 계시기에 공동체 전체적으로 경건하고 예의 바른 행동과 마음가짐을 할 수밖에 없다고 하니, 이 곳은 진정한 수행의 공간이었다.
노동의 신성함을 절대적으로 강조하는 이곳에서는 하루 2번 식사를 하기 위해 반드시 적어도 4시간은 일을 해야 한다는 조건이 있었다. 단기 방문자인 나도 예외는 아니었다. 일주일 동안 숙식을 무료로 제공받기 위해 나는 천연 약초들로만 만드는 샴푸 작업장의 일을 배당받았다. 숙소로 돌아온 나는 앞으로의 시간들이 어떻게 펼쳐질까 상상하면서 나만의 공간을 만끽하며 첫날밤을 맞이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