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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은 Mar 22. 2020

아속 - 실천을 중시하는 태국의 불교 공동체 2

생활 속에 녹아든 태국의 불교

샴푸 공장에서의 일과 나의 일상

소설 <이방인>  알베르 카뮈는 “노동을 하지 않으면 삶은 부패한다. 하지만 영혼 없는 노동을 하면 삶은 질식되어 죽어 간다라고 말했다. 시사 아속에 도착한 후 나는 카뮈의 이 말을 비로소 이해할 수 있었다. 노동의 신성함을 절대적으로 강조하는 시사 아속에서는 하루 4시간 노동을 해야 식사를 제공받는다. 나는 천연 약초들로만 만들어지는 샴푸를 만드는 작업장으로 배정받았다.


공장에 들어 서니, 환한 웃음의 중년 여성분이 맞아 주셨다. 공장이라고 하지만 사실 아기자기하고 따뜻한 작업장의 느낌이다. 이곳에서 노동이 처음인 내게는 우선 패키지를 포장하는 일이 주어졌다. 일손이 부족할 때는 천연 허브들을 따거나 비누 공장으로 출장을 가서 재료들을 끓이는 솥을 휘휘 젓는 일을 하기도 했다. 천연 약초들 때문인지 검은색에 가까운 신기한 색을 띠는 샴푸는 품질이 매우 뛰어나서 나는 이 곳을 떠날 때 마켓에서 선물용으로 직접 구매하기도 했다. 크게 어려운 것은 없었다. 내게 중요한 것은 노동을 통해 나도 이 곳의 진정한 일원이 된 듯한 소속감이었다. 이는 나와 다른 삶의 방식을 수용하는 연습이기도 했다.


시사 아속의 샴푸 공장


작업장의 생산품들


땀 흘려 일한 후 먹는 밥은 최고

아침 일을 끝내고 준비된 식사를 하러 중앙 강당으로 간다. 밭에서 바로 얻은 재료들로 반찬 여덟 가지 정도를 만들어서 두면, 뷔페식으로 각자 원하는 만큼 가져가서 먹는다. 재료 본연의 맛이 제대로 살아 있는 음식에 함께 머물던 친구와 나는 감탄을 거듭했다. 살면서 이렇게 맛있고 정갈하며 몸에 들어가는 즉시 건강해지는 것 같은 음식을 먹어 본 적이 거의 없었다.
시사 아속이 위치한 이산 지방은 태국의 동북부 지역으로 맛있는 음식으로 유명한 지역인데 역시 허언이 아니었다. 특히 유기농으로 재배된 재료 본연의 맛이란 쉽게 흉내 낼 수 없는 것이었다. 맛있기로 유명한 태국 음식들 중에서도 시사 아속에서 먹은 밥은 내가 맛본 가장 맛있는 태국 음식이었다. 어쩌면 건강하게 땀 흘리며 일한 후 먹는 밥이었기에 더 소중했는지도 모른다.  

가진 것이 많지 않을 때 느끼는 행복

기온이 너무 높아 일을 하기 힘든 한낮이면 나는 내 집 2층에 누워 일기를 끄적거렸다. 인터넷도 되지 않아서 불필요하게 나를 방해하는 것들도 없었다. 바람 소리, 새소리, 친구의 기타 소리, 웃음소리처럼 내가 정말 즐거워하는 것에 오롯이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이 선물처럼 주어진 셈이다.
시사 아속에서의 시간은 천천히 그리고 정확하게 흘렀고, 단순한 행동으로 채워진 그 시간들은 나를 충만하게 만들었다. 가진 것이 많지 않으면서도 즐겁고 행복해질 수 있다는 이 단순한 진리를 우리는 너무 잊고 살아가는 것은 아닌지. 모든 것이 제대로 흘러가고 있을 때 비로소 마음속의 여유를 느낄 수 있다.


제대로 흘러간다는 것은 물질적인 양과 비례하지 않는다. 물질적인 삶을 추구하느라 진정한 행복과 소소한 일상을 제대로 느끼지 못하는 어리석음을 범하고 싶지 않다. 우리는 목표를 잃은 채, 반복되는 일상으로 자신의 마음이 어떻게 흘러가는지 챙기지 못한 채 시간을 흘려보내곤 한다. 아프리카 속담 중에 ‘영혼이 따라올 수 있게 시간을 주고 기다려줘야 한다 ‘는 말이 있다. 지금의 시간이 급하지도, 그렇다고 사회와 너무 괴리되어 천천히 흘러가지도 않는 딱 적당한 속도의 시간인 듯하다.



시사 아속에서 만난 ‘쭙’

오후에 시간이 빌 때면, 나를 챙겨 주는 쭙이 일하는 도서관으로 향한다. 얼굴이 이렇게 밝은 사람을 참 오랜만에 보았다. 성숙함과 순수함이 공존하는 얼굴을 지닌 쭙은 10대 초반에 이 곳에 들어와서 중등 교육까지 받았다고 한다. 사실 이곳에는 쭙과 같은 젊은 사람들이 많이 머물고 있다. 이후 대학 교육을 지속하고 싶은 사람은 대도시로 나가고, 아속 안에 머무는 것을 선호하면 이 곳에서 책임지고 일을 해나가기 시작한다고 한다.


쭙은 한국어를 배워서 한국의 대안학교 학생들이 이곳에 머물 때면 통역과 가이드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실제로 많은 한국 단체에서 관심을 갖고 매년 이 곳을 방문하는데, 여행 학교, 민들레 학교, 곡성 학교 등에서 찾고 있다고 한다. 단일화, 정형화된 삶의 방식을 쫓아가는 경향이 짙은 우리나라의 청소년들에게 이러한 기회가 주어지는 것이 매우 다행스럽고 바람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개인과 사회의 행복을 고민하는 태국 불교

현실 안에서 건강한 삶, 조화로운 삶을 실현해 가기 위해서 불교가 기여할 수 있는 적극적인 역할은 과연 무엇일까? 한 개인의 삶에 있어서는 개인의 현실 생활과 불교 수행을 어떻게 결합시킬 수 있을 것인가?

시사 아속에서의 시간은 우리가 어떻게 지속 가능한 삶을 추구해 갈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하여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 또한 이곳은 사회적인 면에 있어 불교가 사회의 긍정적인 발전에 기여하기 위해 어떻게 주도적인 역할을 적극적으로 해나갈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질문을 던지고 있는 공간이기도 했다.


분명한 것은 오랜 기간 동안 이러한 시스템이 성공적으로 지속되어 왔다는 점이고, 우리에게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물론 우리 모두가 물질적인 면에서 벗어나 불교 수행을 실천하는 공동체 생활을 할 수는 없다. 하지만 내가 주목했던 점은 태국의 불교가 개인과 사회의 행복에 기여하기 위하여 적극적인 고민을 하고 있다는 사실 그 자체였다. 그것만으로도 종교는 앞으로 발전해 나갈 수 있는 큰 가능성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나는 아직도 시사 아속에서의 의미 있는 시간을 종종 떠올리며, 이러한 고민을 잊지 않기 위해 노력한다. 그 노력이란 마음의 여유를 잃지 않으려는 것이고 그렇기 때문에 부처님의 가르침을 찾게 되는 것으로 다시 귀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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