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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은 Aug 15. 2020

오지 여행과 디지털 디톡스

인도 히말라야, 스피티에서의 기록

실체 없이 부유하는, 곧 아스라 질 남의 이야기 대신,

때론 분투하겠지만 보다 단단한 실체가 있는 나의 이야기에 마음을 쏟고 싶다.


내가 나를 보고 듣는 시간을 늘려 주고 싶다.

밖의 시선으로 나를 바라보지 않고 내 안의 소리에 집중하고 귀 기울여 주고 싶다.



(작년 여름, 인도 히말라야 - 인도 리시께시 - 태국 치앙마이로 이어지던 여행의 기록을 올립니다)





내게 한여름을 보낼 수 있는 최고의 피서이자 호사는 히말라야에서 여름을 누리는 것. 히말라야 산간 마을에 들어선 지 어느새 열흘이 훌쩍 넘어가고 있었다.


인터넷 시그널이 하나도 잡히지 않는 산간 마을에만 계속해서 지내다 보니, 가족과 지인과 안부를 주고받을 시기가 된 것 같았다.


인터넷을 사용해 보려고 애쓰던 마을의 숙소. 열악하지만 마음만은 따뜻했던.


미미하지만 인터넷을 쓸 수 있다는 다음 마을에 도착한 후, 나는 지인들과 연결되기 위해 그야말로 안간힘을 썼다. 차가 다니는 대로변 한 중간쯤으로 걸어가야 겨우 시그널이 하나 정도 잡힐까 말까 한 곳이었다.


그렇게 한 시간 정도 연락을 해야 할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눴고 메시지를 주고받았다. 내게 연락을 해온 기록이 남아 있던 사람들도 있었다. 그들이 서운하지 않게 마음도 다독여주고, 즐겁게 그 간의 안부도 나눴다.


그런데 참 신기한 일이었다.

나는 그날도, 또 그다음 날도 지금까지 느꼈던 경쾌한 기분과는 아주 다르게 마음이 조금 무거워진 것을 감지했다.

내가 나눈 이야기 중에 내 마음을 무겁게 한 얘기가 있었기 때문은 아니었다. 그저 마음이 조금 복잡하고 산만해진 것 같았다.


무엇 때문이었을까?

나는 다시금 그동안의 시간을 하나하나 되짚어 보기 시작했다.




히말라야의 고개를 넘나드는 버스 안에서 넋을 놓고 눈 앞의 아름다운 풍경을 한없이 바라보던 시간.


별 일 없이 아무것도 하지 않고, 들려오는 새소리에 내 모든 감각을 집중하던 시간.


폰에 저장해둔 음악이 거의 없어 컴퓨터에 저장된 음악을 겨우 겨우 감사하게 들었던 순간.


컴퓨터에서 흘러나오던 음악 한 곡 한 곡은 비록 좋은 음질은 아니었지만 그렇게 귀하고 소중하게 느껴질 수 없었다.


살구나무 아래에서 아침의 짜이를 음미하며, 쏟아지던 햇살을 있는 그대로 받아내던 순간.


마당에 아름답게 피어 있는 꽃을 한없이 바라보며 감탄하던 시간.


컴퓨터에서 흘러나오던 음악을 들으며 행복해 하던 순간, 그리고 그때 바라보던 창 밖 풍경


히말라야의 따사로운 햇살을 받으며, 시와 수필에 흠뻑 빠져 한 자 한 자를 음미하고 곱씹던 그 오후.


친구와의 대화에 온전히 집중해서 마음을 터놓으며 끝도 없이 이야기를 이어가던 그 날.


그렇게 대화를 나누다 보니, 어느새 히말라야의 빛나던 햇살은 뉘엿뉘엿 저물고 있었고 밤이 새까매져 있었다.

그렇게 마음 저 깊숙한 곳까지 들어가서 얘기를 길어 내고 또 길어 내던 그 저녁.




나는 온전히 그 모든 순간 안에 머물고 있었다.

당시 나의 가장 순도 높은 마음을 순간순간에 쏟고 있었다.  


덕분에 나는 지금도 히말라야의 황홀한 풍경을 눈앞에 그릴 수 있을 만큼 내 기억에 선명하게 새길 수 있었고,

오고 가는 마을 사람들과 웃으며 인사를 나눌 수 있었다.


깊게 마음을 나누고 지금까지 위안을 주고받을 수 있는 정말 소중한 친구를 만났고,

관심사를 나누고 마음을 통할 수 있었던 히말라야의 빛나는 친구 한 명과 헤어지며 눈물을 지을 수 있었다.



갑자기 전기가 끊겼던 그 밤, 고요함 속에서 정성 가득 스민 따끈한 저녁밥을 먹던 순간은 또 어떻게 잊을 수 있을까?


마음이 어지러워지지 않고, 온전한 나의 마음을 상대에게 건넬 수 있었던 순간들.

자연, 공간, 시간과의 교감 속에 온전히 나의 마음이 자리하고 있던 순간들.


인터넷을 사용할 수 있던 다음 마을에서 사진과 영상을 업로딩 하기에 부족한 인터넷 속도를 탓하고 있는 나를 보고 있자니, 이런 아이러니가 또 없었다.

지금은 언제 어디서나 인터넷에 연결될 수 있고 마음먹는 순간 친구와도 연락을 주고받을 수 있는데, 왜 나는 지난 여행의 순간들이 그리워지는 걸까?





나는 아마도 그 무위의 충족감을 누렸던 시간을 찾아서, 부러 인터넷을 쓸 수 없는 환경을 찾아 굳이 다시 그곳으로 향할 것이다.


이런 현대인의 슬픈 아이러니라니!

(물론, 마음먹은 대로 움직일 수 있는 그런 시간이 곧 다시 오길 바라며.)



하지만 나의 오감이 완벽히 깨어 나는 느낌을 오랜만에 누려 본 사람은 그 소중한 경험을 잃고 싶지 않을 것이다.

비로소 나는 8, 9년 전의 나의 긴긴 여행이 왜 그렇게 완연한 몰입의 순간으로 내게 새겨져 있는지 알게 되었다.




바삐 흘러가는 서울에서, 아니 세상과 연결되기 시작했던 인도의 그 작은 산간 마을에서부터 이미 나는 완벽한 고립의 충만했던 시간을 그리워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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