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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광객인가? 관광자인가?

Ⅱ. 관광에 대한 다양한 시선

by 정란수

'관광객인가, 관광자인가?'라는 질문은 단순한 용어 선택의 문제가 아니다. 이는 관광의 본질을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에 대한 근본적인 물음이다. 보통 우리는 일상적으로 '관광객(觀光客)'이라고 칭하지만, 한국관광학계의 일부 학자들은 '관광자(觀光者)'라는 표현을 쓰기도 한다. 이 둘의 차이는 표면적으로는 단어 선택의 문제로 보이지만, 보다 깊이 들어가면 '여행하는 사람을 객체로만 볼 것이냐, 아니면 주체적 존재로 인식할 것이냐'라는 관점의 차이를 드러낸다. 이는 관광의 본질이 단순히 경관이나 문화를 감상하는 활동이 아니라, 그 과정에서 '누가 적극적으로 무엇을 경험하며, 지역사회와 어떻게 상호작용하는가'를 묻는 사회·문화적 이슈이기도 하다.


관광객 vs. 관광자: 용어가 담는 세계관의 차이


일상적으로 쓰이는 '관광객'이라는 단어에는 관광 대상지에서 머무르는 사람을 수동적, 객체적 존재로 바라보는 뉘앙스가 담겨 있다. 이 말에는 관광의 시장경제 측면에서, 숙박·식사·체험 프로그램 등을 소비하는 사람으로서의 역할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객(客)'이라는 글자 자체가 '손님' 또는 '대상'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어, 여행하는 사람을 '서비스를 받는 사람' 또는 '관리의 대상'으로 보는 관점이 내포되어 있다.


반면 '관광자'라는 말은 여행자를 주체적 행위자로 보는 개념이다. '자(者)'는 '~하는 사람'이라는 의미로, 행위의 주체성을 강조한다. 여행자가 능동적으로 목적지를 선택하고, 체험 기획에 참여하며, 때로는 지역사회에 직·간접적인 영향을 끼친다는 관점을 담고 있다. 이는 단순히 서비스를 소비하는 존재가 아니라, 여행지에서 자신만의 경험을 창출하고 지역과 상호작용하는 '행위의 주체'로 본다.


관광학계에서 이러한 논의는 결코 새로운 주제가 아니다. 관광사회학 분야에서 맥캐넬(MacCannell)은 관광객이 '진정성(authenticity)'을 찾아 끊임없이 이동한다는 점을 부각했다. 그러나 실제 관광객은 대개 미리 연출된(또는 '무대화된') 공간과 이벤트를 소비하는 경우가 많아, 결과적으로 수동적인 구경꾼 역할에 머무른다고 주장했다. 이에 비해 최근에는 정보통신기술(ICT)의 발달과 함께 '능동적인' 관광자의 부상 가능성이 높아졌다고 본다. SNS를 통해 지역 정보를 직접 찾아내고, 현지인과 교류하며, 서로의 경험을 공유·재생산하는 가운데 관광자는 더 이상 소극적인 수용자가 아니라 '함께 만들어가는 주체'가 되어간다는 시각이다.


이러한 개념적 구분은 단순한 학문적 논쟁에 그치지 않는다. 우리가 여행자를 어떻게 바라보느냐에 따라 관광정책, 프로그램 기획, 지역사회와의 관계 설정 등이 근본적으로 달라지기 때문이다. '관광객'을 대상으로 한다면 목적지에서의 편의성과 소비 경험 극대화에 초점을 맞출 것이고, '관광자'를 고려한다면 지역사회와의 상호작용과 의미 있는 문화적 교류에 무게를 둘 것이다.


2. 벤야민의 산책자와 구경꾼: 관광 주체성의 양면성


이 물음에 대해 안현정 성균관대학교 박물관 학예실장은 발터 벤야민(Walter Benjamin)의 '산책자(flâneur)'에 대한 개념을 함께 언급하여 영감을 주었다. 19세기 파리의 보도(步道) 문화를 연구하면서, 벤야민은 도시의 거리를 산책하며 풍경과 사람들을 관찰하는 '산책자'의 이미지를 제시했다. 이 '산책자'는 도시의 일원인 동시에 객(客)으로서, 수많은 시선과 감각을 통해 일상과 비일상을 교차적으로 경험한다.


"산책자는 도시라는 텍스트를 읽어내는 독자이자, 동시에 자신의 발자국으로 도시를 새롭게 쓰는 작가이기도 하다." - 발터 벤야민

벤야민의 산책자는 복잡한 존재다. 그는 군중 속에 있으면서도 군중에 완전히 속하지 않고, 도시를 관찰하면서도 그 일부가 되는 경계적 위치에 있다. 이런 점에서 산책자는 현대 관광자의 원형이라고 볼 수 있다. 낯선 환경 속에서 거리를 활보하며, 무심코 지나치는 일상의 디테일에 주목하고, 그 속에서 도시의 진정한 모습을 발견하려 노력한다.


한편, 어떤 이들은 이 산책자를 '구경꾼'에 가깝다고도 본다. 즉, 거리를 걷긴 하지만 직접적인 개입보다는 관찰과 감상에 초점을 두고, 일종의 제3자 시점으로 도시 풍경을 소비하는 인물이다. 구경꾼은 환경과 깊이 교감하기보다는 표면적으로 흥미로운 것들을 소비하는 데 그치며, 이는 오늘날 '인증샷'을 위해 명소를 찾아다니는 관광객의 모습과도 닮아있다.


이 비유는 현대 관광객과 관광자 개념을 설명하는 데도 유용하다. 여행자가 낯선 도시를 '산책자'처럼 걸으며 지역사회의 진짜 풍경과 문화를 느끼고, 다채로운 삶의 모습을 적극적으로 발견하는 존재라면 그는 관광자에 가깝다. 반면 단순히 '구경꾼'으로서 사진 명소를 찍고, 안내된 장소만을 둘러보고, 이미 짜여진 코스를 수동적으로 따르는 존재라면 '관광객'에 가깝다.


예를 들어, 파리를 방문한 여행자를 생각해보자. 에펠탑과 루브르 박물관만 방문하고 기념품 가게에서 쇼핑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몽마르트르의 골목길을 산책하며 현지 카페에서 시간을 보내고, 세느강변에서 파리지앵들과 대화를 나누는 사람도 있다. 전자가 '구경꾼'으로서 관광 일정표에 맞춰 움직이는 관광객이라면, 후자는 '산책자'처럼 도시의 리듬을 느끼며 자신만의 경험을 만들어가는 관광자라고 할 수 있다.


물론 실제 여행 경험은 이 둘 사이를 끊임없이 오가며 다양한 스펙트럼을 형성한다. 중요한 점은 여행하는 사람이 얼마나 '주체적으로' 환경과 소통하며, 그 과정에서 어떠한 가치를 창출하거나 영향을 주고받는가다.


실천적 사례: 주체적인 '관광자'가 만들어낸 변화


슬로 트래블 운동


'슬로 푸드(slow food)' 운동에서 영감을 받은 '슬로 트래블(slow travel)'은 능동적인 관광자 모델을 잘 보여준다. 빠른 이동 경로와 촘촘한 관광 일정을 지양하고, 지역에 오래 머물며 현지 문화를 체화하는 것을 목표로 삼는다.


예를 들어 유럽의 일부 지역에서 운영되는 소규모 팜스테이 프로그램은 방문객이 단순 숙박객이 아니라 농촌 생활을 함께 영위하는 '거주자'에 가까운 경험을 제공한다. 이탈리아 투스카니 지방의 농가에서 전통적인 올리브 오일 생산 과정에 참여하거나, 프랑스 프로방스의 라벤더 농장에서 현지인들과 함께 수확을 돕는 관광자들이 그 예다. 이들은 현지 농부와 함께 농사를 돕거나 지역 축제에 참여하며, 나아가 지역 공동체와 정서적 유대를 형성한다.


또한 슬로 트래블은 저탄소 여행과도 깊은 연관성을 갖는다. 비행기보다 기차나 자전거, 도보 여행을 선호하고, 한 지역에 오래 머물면서 그곳의 자연환경과 생활 리듬을 존중한다. 이는 '소비자'라기보다 지역사회의 한 구성원처럼 행동함으로써, 관광자가 지역 경제에 기여함과 동시에 지역문화를 존중하고 보호하려는 태도로 이어진다.


"일주일 동안 로마, 피렌체, 베니스를 모두 돌아보는 것보다, 한 달간 작은 토스카나 마을에 머물며 현지인처럼 살아보는 것이 진정한 이탈리아를 경험하는 길이다."라는 슬로 트래블러의 말은 이러한 관점을 잘 보여준다.


관광객이 아닌 '시민'으로 여행하기


최근에는 특정 목적지에서 '체류형 여행'을 하며, 자원봉사나 커뮤니티 기반 프로젝트에 참여하는 경향도 늘어나고 있다. 예를 들어 스페인 바르셀로나의 빈 건물을 예술가 레지던시 공간으로 활용하고, 여기에 장·단기 체류하는 예술가 혹은 관심 있는 여행자들이 참여해 작품을 선보이기도 한다.


또한 '작은도서관' 만들기, 마을 벽화 그리기, 어린이 영어교실 운영 등 지역사회 발전에 기여하는 활동에 여행자가 직접 참여하는 사례도 늘고 있다. 네팔 고산지대의 학교 건축을 돕거나, 인도네시아 산호초 복원 프로젝트에 다이버로 참여하는 등 여행의 목적 자체가 '기여'와 '참여'에 있는 것이다.


이들은 단순 관람객이 아니라 프로그램 기획의 일원으로서, 지역 문화생태계에 적극적으로 기여한다. 이렇게 관광자로서의 정체성을 넘어 '임시 시민(temp citizen)'처럼 관계를 맺을 때, 그 사람이 남기는 흔적은 한층 더 깊고 풍성해진다. 베를린의 한 지역 활동가는 이렇게 말한다.


"우리에게 필요한 건 '인스타그래머블'한 장소를 소비하고 떠나는 관광객이 아니라, 며칠이든 몇 주든 이곳에서 함께 호흡하고 가치를 만들어가는 임시 시민이다."


이런 방식의 여행은 특히 밀레니얼 세대와 Z세대 사이에서 인기를 얻고 있는데, 이들은 '의미 있는 경험'과 '사회적 가치'를 중시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단순히 명소를 방문하는 것보다, 현지 커뮤니티와 유의미한 관계를 맺고 무언가에 기여한다는 성취감을 추구한다.


지역공동체와의 상생 프로젝트


환경보호를 위한 생태관광(Ecotourism) 역시 관광자 개념을 구체화한 사례로 볼 수 있다. 일부 국립공원이나 보호구역에서는 '지속가능성'에 동의하는 소규모 생태관광 프로그램을 운영하며, 참가자들이 자연환경 보전에 기여할 수 있는 기회를 적극적으로 제공한다.


코스타리카의 몬테베르데 구름 숲 보호구역에서는 관광객들이 생물다양성 모니터링에 참여하거나, 멸종위기 종 보호를 위한 '시민과학자' 역할을 수행한다.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일부 사파리 투어는 밀렵 감시나 야생동물 개체 수 조사에 여행자를 참여시키기도 한다. 쓰레기 줍기 캠페인, 멸종 위기 동물 서식지 조사, 자연 해설가 동행 하에 생태학적 가치 체험 등이 그 예다.


한국에서도 강원도 평창의 '생태관광 협동조합'이나 제주도의 '생태관광 네트워크' 등이 지역주민과 관광자가 함께 참여하는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곶자왈 숲 해설을 들으며 생태계 보전 활동에 참여하거나, 해안가 플라스틱 쓰레기를 수거하는 등의 활동이 여행 일정에 포함된다.


이러한 프로그램은 여행자가 지역생태계를 '구경'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실질적인 가치 창출을 위해 참여한다는 점에서 '관광자'의 특징을 잘 보여준다. 또한 이런 경험을 통해 관광자는 환경 문제에 대한 인식을 높이고, 귀국 후에도 지속적인 관심과 실천으로 이어갈 가능성이 크다.


학술적 관점: 주체성을 바라보는 여러 이론


관광학에서 '관광객'을 분석하는 대표적인 이론으로는 존 우리(John Urry)의 '관광적 시선(Tourist Gaze)'이 있다. 우리는 일상에서 벗어나 '관광지'라는 특수한 공간을 방문할 때, 일종의 탐색적 혹은 소비적 시선을 갖게 된다. 이는 각종 안내책자, SNS, 미디어가 제공하는 이미지와 서사를 통해 구성되며, 관광객은 이러한 '시선'을 따라가다 보면 어쩔 수 없이 일정 부분 수동적 태도를 띨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 이론에 따르면, 관광객은 이미 미디어에 의해 '사전 제작된' 경험을 소비하는 존재다. 예컨대 에펠탑 앞에서 사진을 찍는 행위는 수많은 영화, 광고, SNS 게시물 등을 통해 익숙해진 '파리 경험'의 재현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우리는 이러한 분석이 관광객의 수동성을 강조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디지털 시대의 도래와 함께 이러한 관광적 시선은 점차 복잡하고 다층적인 양상을 띠게 되었다. 기존의 '일방향적 시선'에서 '상호작용적 시선'으로 변화하고 있는 것이다. 즈한나 그젤과 존 우리가 함께 쓴 후속 연구에서는 '모바일 시선(mobile gaze)'이라는 개념을 제시하며, 디지털 기술로 무장한 현대 여행자가 관광지와 맺는 복합적인 관계를 설명한다.


이러한 시선이 최근에는 관광자 개인의 역동적인 '재현(再現)'과 결합하고 있다. 예를 들어 SNS 플랫폼에서 개인의 여행 스토리를 즉시 공유하고, 그 과정에서 다른 여행자나 현지인의 피드백을 통해 새로운 장소와 활동을 재발견한다. 유명 관광지에서 벗어나 '숨은 명소'를 찾아다니는 현상이나, 로컬 푸드를 찾아 먹고, 현지인의 일상을 경험하려는 시도는 모두 기존 관광 코스에서 벗어나 자신만의 독특한 경험을 추구하는 주체적 관광자의 모습을 보여준다.


이러한 양방향성은 관광자가 과거보다 훨씬 주체적으로 목적지를 구성하고, 여행 경험을 재해석하도록 만든다. 전통적인 패키지여행으로 대표되던 수동적 관광객에서 벗어나, 디지털 시대의 새로운 '관광자성(touristic subjectivity)'을 구축해가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또 다른 관점으로, 딘 맥캐넬의 '무대화된 진정성(staged authenticity)' 이론은 관광객이 찾는 '진짜 현지 경험'이 사실은 관광객을 위해 연출된 것일 뿐이라고 지적한다. 그러나 이에 대한 반론으로, 에드워드 브루너는 '성찰적 관광자(reflexive tourist)' 개념을 제시한다. 현대의 세련된 여행자들은 이미 이러한 '무대화'를 인식하고 있으며, 그것을 비판적으로 성찰하면서 보다 진정한 체험을 찾아나선다는 것이다.


이처럼 관광학의 이론적 패러다임도 점차 '관광객'에서 '관광자'로, 수동적 소비자에서 능동적 생산-소비자(프로슈머)로 변화하고 있다. 이는 학문적 관점에서도 여행하는 사람의 '주체성'이 점차 중요한 화두로 떠오르고 있음을 보여준다.


지역사회 관점: 누가 주인공인가?


관광의 본질을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질문이 바로 '누가 주인공인가?'라는 것이다. 전통적으로 관광산업은 외부에서 오는 '관광객'을 환대하고, 이들을 통해 수익을 창출하며 지역경제를 활성화하려 했다. 그러나 무분별한 개발과 급격한 관광객 유입으로 인해, 오히려 지역사회는 부동산 가격 폭등, 문화적 소음, 쓰레기와 교통 혼잡, 환경 파괴 등 각종 문제를 떠안게 되는 사례가 빈번해졌다.


바르셀로나, 베네치아, 암스테르담과 같은 도시들은 관광객 과잉(오버투어리즘) 문제로 몸살을 앓았고, 결국 관광객 수를 제한하거나 특별세를 부과하는 정책을 도입했다. 제주도 역시 급격한 관광객 증가로 인해 교통체증, 쓰레기 문제, 지하수 고갈 등의 문제에 직면했고, 이에 따라 '환경보전기여금' 도입 논의가 계속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지역주민은 조연 혹은 피해자로 전락하고, 관광객이 주도권을 쥔 채 즐기기만 한다는 불만이 쌓여가는 구조다. 관광지의 일부 주민들은 "우리 동네는 관광객을 위한 놀이터가 아니다"라는 문구가 적힌 현수막을 걸기도 했다. 이는 관광이 단순히 경제적 이득만을 추구할 때 발생하는 사회적 긴장을 보여준다.


'관광자'라는 개념은 이 구조를 전환할 가능성을 제시한다. 관광자가 주체적 존재로서 관광지의 환경·사회·문화적 맥락을 이해하고 존중한다면, 여행 과정 자체가 지역사회와 상호이익을 만들어내는 장(場)이 될 수 있다.

예를 들어, 일본 나오시마 섬은 과거 심각한 환경오염에 시달리던 곳이었으나, 예술을 통한 지역재생 프로젝트로 변모했다. 여기에 방문하는 관광자들은 단순히 예술작품을 감상하는 데 그치지 않고, 지역주민과의 교류를 통해 섬의 역사와 변화 과정을 이해하고, 환경문제에 대한 인식을 높인다. 방문자는 단순한 손님이 아니라, 책임감을 가진 파트너로서 지역주민의 일상과 의식을 존중하고, 적정 비용을 지불하며, 때로는 재능기부나 문화교류를 통해 새로운 가치를 창출한다.


이탈리아의 '알베르고 디푸소(Albergo Diffuso)' 모델도 주목할 만하다. 이는 마을 전체를 하나의 호텔처럼 운영하는 방식으로, 빈집을 숙소로 활용하고 마을 식당과 상점을 여행자가 이용하도록 연결한다. 이를 통해 지역주민은 관광 서비스 제공자로 참여하며, 관광자는 마을의 일상에 자연스럽게 스며드는 경험을 한다.

이때 관광지는 더 이상 '소비'의 대상이 아니라, 관광자와 지역주민이 함께 만들어가는 '공생'의 무대가 된다. 이는 지역이 주인공이 되는 새로운 관광 패러다임을 제시한다.


미래를 위한 제언: 관광자를 육성하기 위한 조건


정보 접근성 확대와 교육


관광자가 주체적으로 여행하려면 지역정보와 스토리를 충분히 접할 기회가 필요하다. 지자체나 민간 기업, 혹은 현지 커뮤니티 차원에서 다양한 언어로 현지 문화를 소개하고, 투명하고 구체적인 가이드를 제공해야 한다.


핀란드의 '헬싱키 로컬 가이드'나 네덜란드의 '암스테르담 그린 가이드'처럼, 지역주민의 시선으로 도시를 안내하는 플랫폼은 관광자들이 더 깊이 있는 경험을 할 수 있도록 돕는다. 이들은 단순한 명소 나열이 아니라, 지역의 문화와 역사, 환경적 맥락을 함께 제공하여 여행자의 인식을 넓힌다.


또한 관광자 스스로도 여행 이전에 '지역사회의 맥락'을 이해할 수 있도록 교육 프로그램이나 워크숍을 마련하는 것이 좋다. 예컨대 문화유산해설사 혹은 지역 리더들과 함께 사전 세미나를 진행하거나, 온라인 플랫폼에서 기본 매뉴얼을 숙지하게 하는 식이다. 여행 전 현지어 몇 마디를 배우거나, 지역 역사와 풍습에 대한 기본 지식을 습득하는 것만으로도 관광자의 태도와 경험의 질이 크게 달라질 수 있다.


이러한 '여행자 교육'은 이미 일부 생태관광지에서 시행되고 있으며, 점차 일반 관광지로도 확산되는 추세다. 뉴질랜드의 '티아키 프로미스(Tiaki Promise)'처럼 자연과 문화를 존중하는 여행 방식을 약속하는 캠페인이나, 아이슬란드의 '책임감 있는 여행(Responsible Tourism)' 가이드라인이 그 예다.


지속가능한 관광정책 마련


'관광객'에서 '관광자'로 변화를 유도하려면, 정책 차원에서도 지속가능성을 제도화할 필요가 있다. 무분별한 관광객 유입으로 발생하는 부작용(오버투어리즘, 환경 파괴 등)을 완화하기 위해, 지역별 총량 규제나 사전 예약제 등 관리 정책을 도입할 수 있다.


부탄의 '고가치, 저영향(High Value, Low Impact)' 관광정책은 주목할 만한 사례다. 부탄은 일일 관광세를 부과하여 방문객 수를 조절하고, 그 수익을 지역 인프라와 문화보존에 투자한다. 이를 통해 관광객 수보다 '관광의 질'에 초점을 맞추는 전략을 취하고 있다.


동시에 지역주민과 관광자가 공존할 수 있는 프로그램 개발, 예컨대 '문화·예술 교류', '생태 보호 활동' 등을 의무적으로 포함하는 여행상품 지원책도 검토할 만하다. 프랑스 파리시의 경우, 에어비앤비와 같은 숙박공유 서비스에 대한 규제를 강화하는 동시에, 지역주민과 방문객이 함께 참여하는 문화행사에는 보조금을 지원하는 등 '균형 잡힌' 관광정책을 추구한다.


지역 커뮤니티와의 긴밀한 협업


관광자의 '주체성'을 극대화하기 위해서는 지역사회가 주도적으로 나서는 것도 중요하다. 마을공동체, 로컬 크리에이터, 청년 창업가 등이 함께 지역 고유의 자원과 문화를 여행 콘텐츠로 기획하고, 관광자가 이 과정에 참여하도록 설계한다면 상호 간 이해와 존중이 깊어진다.


예컨대 일본 가미야마 마을의 '예술가 레지던시' 프로그램은 방문자들이 단순한 관광객이 아니라 마을의 문화 활력을 불어넣는 창작자로 참여하도록 한다. 한국의 '서천 할미' 프로젝트처럼 지역 어르신들의 음식 솜씨와 이야기를 관광 콘텐츠로 개발하는 시도도 있다.


전통공예 체험을 진행하면서 재료의 역사나 의미를 설명해주고, 완성한 작품 일부를 지역행사에 전시함으로써 단순 체험을 넘어서는 '관광자 참여형 전시'가 가능하다. 이처럼 관광자가 지역사회에 기여할 수 있는 구체적 기회를 제공할 때, 양측 모두에게 의미 있는 경험이 창출된다.


특히 디지털 기술을 활용한 커뮤니티 플랫폼은 지역주민과 관광자를 연결하는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준다. '인더스트리얼(airbnb Experiences)'나 '이트위드(EatWith)' 같은 플랫폼은 현지인의 일상과 전문성을 여행자와 직접 연결한다. 이는 중간 매개체 없이 지역사회와 관광자가 직접 만나는 기회를 제공함으로써, 보다 진정성 있는 교류의 장을 마련한다.


맺음말: '관광자'로의 초대


관광이 단순히 '보고, 먹고, 즐기고 가는' 행위에 그치지 않고, 사회·문화·환경에 대한 이해와 배려가 결합된 '관계 맺기'로 확장될 때, 우리는 비로소 관광의 본질적 가치를 깨닫게 된다. '관광객'이라는 말에 익숙하더라도, 그 이면에는 '주체적인 관광자'로서 살아있는 경험을 할 수 있는 가능성이 여전히 존재한다.


벤야민의 '산책자'가 도시의 일상 속으로 스며들어 다양한 인상을 수집하듯, 관광자는 지역의 리듬에 적극적으로 발을 맞추고, 그 속에서 새로운 의미를 발견하며, 나아가 서로에게 이로운 변화를 만들어갈 수 있다. 이는 단순한 용어 변경의 문제가 아니라, 관광의 본질에 대한 근본적인 성찰이자, 앞으로의 관광이 나아가야 할 방향성을 제시하는 중요한 개념적 전환이다.


관광학자 딘 맥캐넬이 말했듯이, "진정한 여행자는 낯선 곳에서 '외부인'으로 남는 것이 아니라, 그곳의 리듬과 정서를 이해하며 일시적으로나마 그 일부가 되려고 노력한다." 이러한 태도는 관광의 질을 높이고, 지역사회와의 건강한 관계를 형성하며, 궁극적으로는 보다 지속가능한 관광 생태계를 만드는 데 기여할 것이다.


지금 이 시대에 관광은 갈등과 혼란을 일으키는 산업이기도 하고, 동시에 사람과 사람, 지역과 세계를 이어주는 거대한 연결고리이기도 하다. '관광객인가, 관광자인가?'라는 물음은 단지 언어적 구분을 넘어, 우리의 여행 태도와 지역사회를 바라보는 시선을 바꿀 수 있는 출발점이다.


앞으로 10년, 우리의 관광은 더욱 새롭고 복합적인 양상으로 전개될 것이다. 그 흐름 속에서 관광자적 태도로 접근하는 여행자와, 이들을 환영하며 적극적으로 협력하는 지역사회가 만나 새로운 미래를 열어갈 수 있기를 기대한다. 우리 모두가 그저 '구경꾼'에 머물지 않고, 적극적인 '산책자'로서 여행의 의미를 재발견하는 여정에 함께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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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회부터는 현재의 관광 이슈에 대한 보다 적극적인 대안을 이야기해보고자 한다. 그 첫 번째로는 바로 다음의 주제이다.


"산업이 우선인가? 사람이 우선인가?"


중앙정부와 지자체에서는 관광인에 대한 정책과 지원이 있다고 하지만 그럼에도 관광은 기본적으로 산업정책이 우선이 되고 있다. 산업과 사람을 명확하게 구분하기는 어려우나 산업 중심의 정책이 자칫 그 속에서 일하는 사람들에 대한 소외현상을 가져오기도 하는 문제에 대해 그 대안을 살펴보고자 한다.


관광의 본질, 쟁점과 대안은 매주 목요일에 연재하도록 합니다. 본 연재글에 대해 의견이 있으시면 언제든지 댓글로 달아주세요~ 환영합니다.
관광의 본질적 접근도 좋지만, 관광개발이나 기획을 하는 입장에서 필요한 것은 관광사업을 어떻게 진단하고 분석하는 방법이 필요할 것입니다. 매주 월요일에는 관광사업 진단체계모델 이야기도 연재를 하고 있습니다. 많은 관심 부탁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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