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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광성과: 인바운드와 아웃바운드 사이

Ⅱ. 관광에 대한 다양한 시선

by 정란수

죄책감 없는 아웃바운드를 위하여


"해외여행을 가면 괜히 눈치가 보여요. 국가 경제에 도움이 안 되는 것 같아서요."


관광정책이나 컨설팅을 하는 분야 사람들과의 모임에서 종종 들리는 이야기이다. 대한민국 관광정책의 숨겨진 DNA, 바로 '인바운드 지상주의'가 만들어낸 자조 섞인 고백이다. 과연 아웃바운드는 죄인가? 국민의 해외여행은 정말 국가 경제의 적인가? 이제는 이 질문에 명확히 답해야 할 때이다.


인바운드 신화의 탄생과 성과


1980~90년대, 대한민국 관광정책은 '외화 벌기'라는 국가적 과제에 초점을 맞춰왔다. 88올림픽과 2002월드컵을 거치며 대형 이벤트 중심의 인바운드 관광은 국가 브랜딩의 핵심 전략이 되었다. 인바운드 중심 정책의 성과는 분명했다. 한국관광공사에 따르면, 2010년 880만 명이던 외국인 관광객은 2019년에는 1,750만 명으로 두 배 가까이 증가했다. 같은 기간 관광 수입은 103억 달러에서 215억 달러로 늘었다. 특히 2010년대 중반 한류의 영향으로 중화권과 동남아시아 관광객이 급증하면서 면세점, 숙박업, 요식업 등 관광 관련 산업은 큰 성장을 이뤘다.


인바운드 관광은 일자리 창출에도 기여했다. 문화체육관광부의 '관광산업 일자리 통계'에 따르면, 2019년 기준 관광산업 종사자는 약 230만 명으로, 전체 취업자의 8.6%를 차지했다. 이는 제조업에 이어 두 번째로 큰 규모다. 또한 인바운드 관광은 국가 이미지 제고에도 큰 역할을 했다. 한국국제교류재단의 조사에 따르면, 한국을 방문한 외국인의 83%가 "방문 후 한국에 대한 이미지가 긍정적으로 변했다"고 답했다. 이는 경제적 효과를 넘어 국가 브랜드 가치를 높이는 성과였다.


인바운드 중심 정책의 이면과 과제


그러나 이러한 인바운드 집중 정책의 이면에는 아이러니가 있었다. 관광수지는 여전히 적자였다. 한국관광공사와 한국은행 통계에 따르면, 2019년 기준으로 외국인 방문객은 1,750만 명을 기록했지만, 해외로 나간 내국인은 2,871만 명에 달했다. 관광수지 적자는 약 65억 달러에 이르렀다. 또한 인바운드 관광의 양적 성장에 비해 질적 성장은 미흡했다는 평가도 있다. 한국문화관광연구원의 분석에 따르면, 외국인 관광객의 한국 내 평균 체류 기간은 2019년 기준 약 6.8일로, 일본(9.2일)이나 싱가포르(8.7일)에 비해 짧았다.


지역 편중 문제도 심각했다. 외국인 관광객의 약 80%는 서울, 제주, 부산 등 특정 지역에 집중되었고, 지방 중소도시나 농어촌 지역은 인바운드 관광의 혜택에서 소외되었다. 이러한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정부는 2018년 '관광혁신 전략'을 발표하고, 지역관광 활성화와 관광품질 개선에 주력하기 시작했다. 더불어 '관광거점도시' 선정, '계획공모형 지역관광개발 사업' 등을 통해 지역 균형 발전을 도모했다.


아웃바운드 증가의 배경과 의미


코로나19 팬데믹이 끝나자 공항은 다시 북적이기 시작했다. 인천공항공사 자료에 따르면, 2023년 인천공항 이용객은 팬데믹 이전의 약 80% 수준까지 회복되었다. 2023년 3분기 기준, 한국인 출국자 수는 전년 동기 대비 272% 증가했다. 이른바 "보복 여행" 현상이다.


이러한 아웃바운드 증가 추세는 여러 요인에 기인한다. 첫째, 저비용 항공사(LCC)의 성장이다. 2005년 제주항공의 출범 이후, 국내 LCC 산업은 크게 성장했다. 국토교통부 자료에 따르면, 코로나19 이전 국제선 시장에서 LCC의 점유율은 약 30%까지 증가했다. 티웨이항공, 진에어, 에어서울 등 다양한 LCC가 등장하면서 항공요금은 크게 낮아졌고, 이는 해외여행의 대중화에 기여했다.


둘째, 디지털 기술의 발전으로 여행 정보 획득과 예약이 용이해졌다. 문화체육관광부의 '국민 여행 실태조사'에 따르면, 해외여행자의 약 70%가 인터넷이나 모바일을 통해 여행 정보를 얻고 예약을 진행한다. 이로 인해 여행사 패키지에 의존하지 않는 개별자유여행(F.I.T) 비중이 2010년 35%에서 2019년 58%로 크게 증가했다.


셋째, 인구구조와 라이프스타일의 변화다. 통계청에 따르면, 1인 가구는 2022년 기준 전체 가구의 33.4%를 차지한다. 전통적인 가족 여행보다 개인의 취향과 관심에 맞춘 여행이 늘어나면서, '혼행(혼자 여행)'이 새로운 트렌드로 부상했다. 또한 워라밸(일과 삶의 균형)을 중시하는 문화가 확산되면서, 해외여행을 통한 자기계발과 재충전에 대한 요구가 높아졌다.


아웃바운드 관광의 가치 재해석


그동안 아웃바운드 관광은 '외화 유출'의 주범으로 지목되어 왔다. 그러나 이는 아웃바운드의 다양한 사회문화적 가치를 간과한 시각이다. 아웃바운드 관광은 국민의 문화적 역량을 강화한다. 한국관광공사의 '해외여행 경험과 국제화 인식 조사'에 따르면, 해외여행 경험이 많은 사람일수록 다문화 수용성이 높고, 국제사회에 대한 이해도가 깊었다. 해외에서의 직접 체험은 글로벌 시민으로서의 자질을 함양하는 교육의 장이 된다.


또한 아웃바운드 경험은 국내 서비스 품질 향상에도 기여한다. 해외 선진 서비스를 체험한 국민들의 기대 수준이 높아지면서, 국내 관광업계도 서비스 품질 개선에 나서게 된다. 특히 숙박, 음식, 교통 등 관광 기반 서비스의 질적 향상은 결국 인바운드 관광객의 만족도를 높이는 데도 이바지한다.


더불어 아웃바운드 관광은 국제 교류와 민간 외교의 역할도 한다. 한국인 관광객은 각국에서 한국의 문화와 이미지를 전파하는 민간 외교관이다. 태국관광청의 자료에 따르면, 태국을 방문한 한국인 관광객의 증가는 현지인들의 한국 문화 관심 증대로 이어졌고, 이는 다시 태국인의 한국 방문 증가로 연결되었다.



인트라바운드, 지역균형발전의 열쇠


팬데믹 기간 동안 새롭게 주목받은 것이 바로 '인트라바운드'다. 국내 거주자들이 국내를 여행하는 형태를 의미하는 인트라바운드는, 지역 경제 활성화와 국내 관광 산업의 질적 성장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 문화체육관광부의 '국민여행조사'에 따르면, 코로나19로 해외여행이 제한된 2020~2021년 동안 국내여행 참가율은 오히려 증가했다. 특히 주목할 점은 여행 패턴의 변화다. 단순한 명소 방문에서 벗어나 지역의 문화와 일상을 체험하는 '살아보는 여행'이 늘어났다.


이러한 변화는 새로운 지역 관광 모델을 창출했다. 강원도 영월군은 '박물관 고을'이라는 콘셉트로 지역 특색을 살린 문화 관광을 성공시켰다. 2019년 대비 2021년 영월군의 관광객은 15% 증가했으며, 특히 20~30대 젊은층의 방문이 두드러졌다. 전라남도 순천시는 '생태도시'로서의 정체성을 강화하며 국내 생태관광의 메카로 자리잡았다. 순천만 국가정원은 2021년 한 해 동안 약 310만 명의 관광객을 유치했고, 이는 지역경제에 약 1,800억 원의 경제적 파급효과를 가져왔다. 제주도는 '한달살이' 등 장기체류형 관광을 적극 육성하고 있다. 제주연구원에 따르면, 한달살이 관광객은 일반 관광객에 비해 1인당 평균 지출액이 3배 이상 높았으며, 지역 상권 이용률도 높아 지역경제 활성화에 더 큰 기여를 했다.


20230813_094311.jpg 필자 역시 2023년 제주 애월에서 한 달 살기를 했었다.


인트라바운드의 활성화는 지역 주민의 삶의 질도 향상시킨다. 관광 수익이 지역에 환원되면서 주민의 소득이 증가하고, 지역의 기반시설이 개선된다. 또한 지역 고유의 문화와 자연환경을 보전하려는 노력이 강화되어, 지속가능한 지역 발전의 토대가 된다.


해외 사례로 본 삼각 균형


선진국들은 이미 인바운드, 아웃바운드, 인트라바운드의 균형 발전을 추구하고 있다. 일본의 사례가 대표적이다. 일본 정부는 2003년부터 '비짓 재팬 캠페인'을 통해 인바운드 관광을 적극 육성했다. 일본정부관광국(JNTO) 자료에 따르면, 2003년 500만 명이던 외국인 관광객은 2019년 3,188만 명까지 증가했다. 이는 양적 성장뿐 아니라 질적 성장도 동반했다. 2019년 기준 외국인 관광객의 평균 체류일수는 9.2일, 1인당 지출액은 약 1,500달러로 아시아 지역에서 최고 수준이었다.


동시에 일본은 자국민의 해외여행도 장려해왔다. 1987년 '해외여행 1,000만 명 계획(Ten Million Program)'을 시작으로, 일본인의 해외여행은 꾸준히 증가해 2019년에는 약 2,000만 명에 이르렀다. 일본 정부는 글로벌 인재 양성과 국제 이해 증진이라는 측면에서 아웃바운드의 가치를 인정하고, 이를 적극 지원했다.


또한 일본은 '지방창생'이라는 국가 전략 하에 지역관광 활성화에도 주력했다. 2008년부터 시작된 '관광권 정비사업'을 통해 지역 고유의 관광 자원을 개발하고, 도쿄와 오사카 등 대도시에 집중된 관광객을 지방으로 분산시키는 노력을 기울였다. 그 결과 나가노, 가나자와, 다카마쓰 등 지방 중소도시들도 국내외 관광객들에게 인기 있는 목적지로 부상했다.


프랑스도 관광의 삼각 균형을 잘 유지하는 국가다. 세계 최대 관광 대국인 프랑스는 2019년 약 9,000만 명의 외국인 관광객을 유치했다. 동시에 프랑스인의 해외여행도 활발해, 2019년 약 3,000만 명이 해외여행을 즐겼다. 특히 주목할 점은 프랑스의 국내관광 활성화 정책이다. 프랑스 정부는 '바캉스 체크(Chèque-Vacances)' 제도를 통해 저소득층의 국내여행을 지원하고, '프랑스의 가장 아름다운 마을(Les Plus Beaux Villages de France)' 같은 프로그램으로 지방 소도시와 농촌 지역의 관광을 촉진한다. 이를 통해 관광 수익이 전국적으로 골고루 분배되도록 유도하고 있다.


태국도 관광 균형 발전의 모범 사례다. 태국은 세계적인 관광대국으로, 2019년 약 4,000만 명의 외국인 관광객을 유치했다. 한편, 태국인의 해외여행도 약 1,000만 명에 달했다. 태국 정부는 2018년부터 '두 번째 관광도시(Second-tier Tourism)' 정책을 추진하며, 방콕, 푸켓, 치앙마이 등 유명 관광지에 집중된 관광객을 낙후된 지방으로 분산시키는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이를 위해 지방 소도시의 접근성을 높이고, 지역 특색을 살린 관광 상품을 개발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


상생의 삼각형을 위한 정책 제언


우리도 이제 '인바운드-아웃바운드-인트라바운드'라는 삼각형의 균형을 찾아야 한다. 이를 위한 정책 방향을 제안한다.


첫째, 인바운드 정책의 질적 전환이 필요하다. 단순한 방문객 수 증가보다 체류 기간 연장과 소비 촉진, 재방문율 제고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이를 위해 도시별, 지역별 특색 있는 콘텐츠 개발과 관광 인프라의 질적 향상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둘째, 아웃바운드 관광의 가치를 재평가해야 한다. 아웃바운드를 단순한 '외화 유출'로 보는 시각에서 벗어나, 국민의 문화적 권리이자 글로벌 역량 강화의 기회로 인식해야 한다. 해외여행 경험이 국내 관광 서비스 품질 향상과 인바운드 관광 활성화로 연결되는 선순환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셋째, 인트라바운드의 전략적 육성이 필요하다. 지역의 고유한 문화와 자연환경을 활용한 콘텐츠 개발, 지역 주민이 주도하는 관광 사업 지원, 지방 중소도시와 농어촌 지역의 접근성 개선 등을 통해 국내 관광의 질적 성장을 도모해야 한다.


넷째, 세 영역의 연계와 융합을 강화해야 한다. 해외에서 인기 있는 관광 트렌드를 국내에 적용하거나, 국내에서 성공한 관광 모델을 해외에 소개하는 등 각 영역의 경계를 넘나드는 협력이 필요하다. 또한 디지털 기술을 활용해 세 영역의 데이터를 통합 관리하고, 이를 통해 개인 맞춤형 관광 서비스를 제공하는 방안도 모색해야 한다.


죄책감없는 여행, 자부심 있는 관광


관광은 더 이상 사치가 아니다. 세계인권선언에서도 "모든 사람은 자신의 국가를 포함하여 어떤 국가든 떠날 권리와 자국으로 돌아올 권리를 가진다"고 명시하고 있다. 여행은 현대인의 기본권이자 삶의 질을 높이는 필수 요소가 되었다. 해외여행에서 얻은 경험은 인바운드 관광객을 대하는 태도를 변화시키고, 우리 지역을 새롭게 바라보는 눈을 열어준다. 설악산을 찾은 한 여행자는 이렇게 말했다. "유럽 알프스를 다녀온 후, 설악산의 아름다움을 새삼 느끼게 되었어요. 외국 여행지에서 배운 환경 보호 의식을 우리 산에도 적용해야겠다고 생각했죠."


관광정책의 성공은 숫자가 아닌 균형에 있다. 인바운드만 강조하는 일방통행식 사고에서 벗어나, 관광의 삼각 순환을 만들어야 한다. 국민 누구나 죄책감 없이 세계를 향해 나아가고, 자부심을 갖고 우리 땅을 재발견하는 날. 그때가 진정한 관광 강국이 되는 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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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회에서는 조금은 철학적일 수도 있는 내용을 다루고자 한다.


"관광자인가? 관광객인가?"


관광객이라고 흔히 이야기하는 이들은 과연 객체로만 봐야 할 것인가? 능동적인 주체자인가. 관광자라고 불러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들의 근거는 무엇일지, 그리고 우리는 어떻게 접근해야 하는지를 관광자, 관광객 개념과 방문자 개념을 함께 하여 이야기해보고자 한다.


관광의 본질, 쟁점과 대안은 매주 목요일에 연재하도록 합니다. 본 연재글에 대해 의견이 있으시면 언제든지 댓글로 달아주세요~ 환영합니다.
관광의 본질적 접근도 좋지만, 관광개발이나 기획을 하는 입장에서 필요한 것은 관광사업을 어떻게 진단하고 분석하는 방법이 필요할 것입니다. 매주 월요일에는 관광사업 진단체계모델 이야기도 연재를 하고 있습니다. 많은 관심 부탁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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