Ⅱ. 관광에 대한 다양한 시선
매년 관광 정책을 평가할 때 가장 많이 등장하는 숫자는 '관광객 수'와 '관광지출액'이다. "올해는 전년보다 관광객 수가 몇 퍼센트 증가했고, 관광 수입이 얼마나 늘었다"는 통계가 관광정책의 성공을 말해주는 가장 흔한 방식이다. 그러나 관광은 단지 숫자로만 평가할 수 있는 분야일까? 숫자에 숨겨진 관광의 진짜 가치는 무엇일까? 이번 글에서는 정량적 성과와 정성적 성과의 장단점과 사례를 통해, 관광정책 평가의 균형 잡힌 방향성을 함께 모색해본다.
한국관광공사는 매년 '외래관광객 유치 목표'를 설정하고, 이 목표 달성을 위해 총력을 기울인다. 2019년 코로나19 이전 1,750만 명이었던 방한 외래객은 팬데믹 이후 회복세를 보이며 2023년에는 약 1,100만 명에 도달했다. 금년 목표는 2,000만 명 달성이다. 또 장기적으로는 외래관광객 3,000만 명 목표를 지향하고 있다. 정부와 지자체는 이런 숫자의 회복과 증가를 환영하며, 더 많은 관광객 유치를 위한 정책을 쏟아내고 있다.
서울시, 제주도, 부산시를 비롯한 주요 관광지역에서는 매년 '관광객 유치 목표'와 '관광수입 증대'를 핵심 성과지표로 내세우고 있다. 이러한 정량적 목표는 명확하고 측정 가능하다는 장점이 있다. 서울시 역시 3천만 명 외래관광객 목표, 1인당 지출액 300만원, 체류일 7일, 재방문율 70% 달성이라는 정량적 목표를 설정한 바 있다. 물론 재방문이나 체류 등은 정성적인 성과를 일부 고려한 것이지만 결국 숫자로서 이를 달성한다는 제시 목표를 밝힌 것이다.
관광객 수와 관광지출액은 매우 직관적이고 이해하기 쉬운 지표다. 이는 정책의 성과를 한눈에 파악하게 하며, 정책 결정자들에게 명확한 목표를 제시한다.
사례1 제주도의 관광객 수 회복 전략: 제주도는 코로나19 이후 관광객 수 회복을 최우선 과제로 삼고, 2019년 수준인 연간 1,500만 명 관광객 유치를 목표로 설정했다. 이 명확한 목표치는 도청, 관광협회, 지역 사업자들에게 일관된 방향성을 제시했고, 항공좌석 확대, 크루즈 유치, 국제 행사 개최 등 구체적인 전략으로 이어졌다.
사례2 태국의 명확한 목표 설정: 태국 관광청(TAT)은 관광객 수와 수입 목표를 명확히 설정하고 이를 달성하기 위해 전략을 세운다. 이러한 목표는 정부, 민간 기업, 관광업계 간의 명확한 소통과 협력을 촉진하여 효율적인 정책 추진이 가능하도록 돕는다. 태국은 2023년 2,800만 명의 외국인 관광객을 유치해 약 6,700억 바트(약 25조원)의 수입을 기록했고, 이는 코로나19 이전의 약 70% 수준까지 회복한 성과였다.
관광의 경제적 기여도를 측정하는 가장 효과적인 방식이 바로 정량적 지표이다.
사례1 스페인의 GDP 기여도 측정: 스페인은 매년 관광산업이 GDP에 미치는 기여율을 발표해 관광정책의 경제적 효과를 뚜렷하게 보여준다. 스페인 관광청의 발표에 따르면, 관광산업은 국가 GDP의 약 12%를 차지하며 수백만 개의 일자리를 창출하고 있다. 이러한 명확한 수치는 관광 산업의 중요성을 정부와 국민들에게 설득력 있게 전달한다.
사례2 강원도 평창 동계올림픽의 경제적 효과: 2018년 평창 동계올림픽은 약 230만 명의 방문객을 유치했고, 한국개발연구원(KDI)의 분석에 따르면 약 20조 원의 경제적 효과를 창출했다. 이러한 정량적 성과는 대규모 스포츠 이벤트가 지역 경제에 미치는 영향을 설득력 있게 보여주었으며, 이후 다른 메가 이벤트 유치를 위한 근거로 활용되었다.
관광객 수 증가에만 집중하는 정책은 오버투어리즘(overtourism)을 초래하고, 지역 주민의 삶의 질과 환경을 악화시킬 수 있다.
사례1 제주도의 오버투어리즘 문제: 제주도는 2010년대 중반부터 급격한 관광객 증가로 교통 혼잡, 쓰레기 문제, 수질 오염, 부동산 가격 상승 등 다양한 사회문제가 발생했다. 연간 1,500만 명 이상의 관광객이 방문하는 제주도(인구 67만 명)는 주민들의 일상이 관광객으로 인해 침해받는 현상이 나타났다. 주민들의 불만이 증가하며 "관광객 수 증가가 항상 좋은 것인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이 제기되었다.
사례2 베네치아의 관광객 수 제한 정책: 이탈리아 베네치아는 과도한 관광객 유입으로 인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2023년부터 당일 방문객에게 입장료를 부과하고 방문객 수를 제한하는 정책을 시행했다. 인구 5만 명의 베네치아 본섬에 하루 8만 명 이상의 관광객이 몰리면서 주민들의 삶이 크게 침해받았기 때문이다. 베네치아 시는 "더 많은 관광객보다 더 나은 관광 경험과 지속가능성이 중요하다"는 정책 방향을 선언했다.
관광수입이 증가해도 그 혜택이 지역사회에 골고루 돌아가지 않는 문제가 발생한다.
사례1 단체관광 저질패키지와 지역 경제: 중국 단체관광객의 경우, 쇼핑 커미션과 식사, 숙박이 대부분 대형 여행사와 특정 쇼핑센터, 면세점에 집중되어 지역 소상공인들에게는 실질적 혜택이 미미하다는 비판이 있다. 외국인 관광객의 쇼핑 지출이 전체 관광 지출의 절반 가까이를 차지하였지만 2019년 외래관광객조사에 따르면 면세점에서의 쇼핑 비중이 70%에 육박하면서 그 혜택은 특정 지역의 대형 면세점과 쇼핑몰에 집중되었다.
사례2 마을 관광 수익의 공정한 분배: 전라남도 순천시 낙안읍성 민속마을은 입장료 수익의 일부를 마을 주민들에게 배분하는 시스템을 도입했다. 그러나 이는 마을 내 권력구조와 기존 소유권에 따라 불균등하게 분배되어, 모든 주민이 공평한 혜택을 받지 못한다는 문제가 제기되었다. 숫자로 보이는 관광 수익의 증가가 실제 지역사회의 공정한 발전으로 이어지지 않는 사례이다.
관광의 가치는 숫자로만 표현할 수 없다. 관광으로 인해 지역 주민들의 삶이 얼마나 좋아졌는지, 사회적 갈등이 감소하고 지역의 자긍심이 높아졌는지는 정성적 평가를 통해서만 알 수 있다.
슬로베니아 류블랴나의 주민 만족도 조사: 슬로베니아의 류블랴나는 관광의 질적 평가에 주력하며, 주민 설문조사를 통해 관광이 주민 삶의 질에 미치는 영향을 지속적으로 점검하고 있다. 류블랴나 시의 조사에 따르면 관광으로 인해 지역 자긍심과 삶의 질이 향상되었다고 주민의 70% 이상이 응답했다. 이러한 정성적 평가는 관광정책의 방향을 주민 중심으로 전환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관광의 진정한 성공은 관광객의 숫자보다 경험의 질과 재방문 의사에 있다.
이탈리아 토스카나의 관광 경험 가치: 이탈리아 토스카나 지역은 관광객 만족도 조사를 통해 관광 경험의 질을 평가하며, 지역 전통과 문화를 유지하는 방향의 관광정책을 펼친다. 토스카나 관광청 보고서에 따르면 방문객의 약 85%가 지역의 고유한 문화적 경험을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다시 방문하고 싶다고 응답했다. 이는 단순한 방문객 수보다 지역의 정체성과 진정성을 유지하는 것이, 장기적으로 관광 경쟁력을 높이는 요소임을 보여준다.
관광은 경제적 가치만이 아닌 문화적 가치의 보존과 계승에도 중요한 역할을 한다.
사례1 안동 하회마을의 문화유산 보존: 안동 하회마을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후 관광객이 증가했지만, 단순한 방문객 수보다 '살아있는 전통마을'로서의 가치 보존에 중점을 두었다. 하회마을 보존회는 관광수입의 일부를 전통가옥 유지와 문화행사 지원에 활용하고, 주민들의 생활과 관광의 균형을 맞추기 위한 노력을 기울였다. 이는 관광의 정성적 가치를 중시한 접근이다.
사례2 일본 가나자와의 전통공예 보존: 일본 가나자와시는 관광을 통해 금박공예, 구타니 도자기 등 전통공예 기술을 보존하고 계승하는 정책을 펼쳤다. 단순히 관광객 수를 늘리는 것보다, 장인들이 지속적으로 활동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고 전통공예의 가치를 높이는 데 초점을 맞추었다. 이로 인해 가나자와는 '창조도시'로서의 정체성을 확립하고, 고부가가치 관광 목적지로 자리매김했다.
일본의 대표적인 료칸 및 호텔 체인 호시노리조트는 정량적인 숫자로 성과를 평가하지 않는다고 한다. '호시노 리조트 스토리'의 저자에 따르면 호시노리조트의 경우 수치에 대한 목표치에 대해 비판을 한다.
"대부분의 기업들은 성장을 이루기 위해 수치 목표를 설정하고 이를 실현시키기 위해서 직원들을 독려한다. 그런데 호시노는 이러한 보편적인 경영의 방식과는 다른 길을 선택했다. 구체적인 수치 목표를 실현하는 것은 단기적인 수익 확보에는 효과적이지만, 직원들이 행복하게 그리고 멀리 내다보며 플랜을 짜고 전략적으로 일을 하기에는 어려운 점이 있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_ 윤경훈, 전복선
사례1 뉴질랜드의 관광지속가능성 정책: 뉴질랜드 정부는 관광정책의 평가에서 방문객 수뿐 아니라 환경 영향, 지역주민 만족도, 문화적 보존을 포함한 종합 지표를 개발해 활용하고 있다. 'Tourism 2025 & Beyond' 계획은 경제적 효과(정량적 지표)와 환경·사회적 지속가능성(정성적 지표)을 동시에 고려한다. 뉴질랜드는 2019년 관광세(International Visitor Conservation and Tourism Levy)를 도입해 관광객 1인당 35뉴질랜드달러(약 3만원)를 부과하고, 이 수입을 관광 인프라 개선과 자연환경 보호에 투자하고 있다.
(뉴질랜드의 본 정책 원문 링크: https://tia.org.nz/assets/Uploads/d5156c4126/Tourism2025-and-Beyond.pdf)
사례2 아이슬란드의 균형 잡힌 관광 관리: 아이슬란드는 최근 오버투어리즘 문제에 대응하기 위해 관광객 수를 일정 부분 제한하면서, 동시에 방문객 만족도와 주민 삶의 질을 높이는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아이슬란드 관광청은 "정량적 성장에만 집중하는 관광정책은 장기적이지 않다. 정성적 평가를 통한 지속가능한 관광만이 미래를 보장한다"고 공식적으로 발표했다. 아이슬란드는 블루라군과 같은 인기 관광지에 예약제와 입장료 인상을 도입해 방문객 수를 제한하면서도, 경험의 질을 높이는 방향으로 정책을 전환했다.
관광정책을 평가하기 위해서는 정량적 지표와 정성적 지표를 통합한 새로운 성과 지표가 필요하다.
제안1 관광 지속가능성 지수: 관광객 수와 지출액뿐 아니라, 환경 영향(탄소발자국, 쓰레기 발생량), 주민 만족도, 일자리 질, 문화유산 보존 정도, 방문객 경험의 질 등을 종합적으로 평가하는 '관광 지속가능성 지수'를 개발할 필요가 있다. 이는 UN 지속가능발전목표(SDGs)와 연계하여, 관광의 진정한 가치와 영향을 다각도로 측정할 수 있는 도구가 될 것이다.
제안2 관광 행복 지수: 관광이 지역 주민과 방문객 모두에게 얼마나 행복과 만족을 가져다주는지 측정하는 '관광 행복 지수'의 도입을 고려해볼 수 있다. 이는 관광의 궁극적 목적이 단순한 경제적 이익이 아닌, 인간의 행복과 삶의 질 향상에 있다는 점을 반영한다.
최신 기술을 활용해 정성적 가치를 효과적으로 측정하고 평가하는 방법을 모색해야 한다.
제안1 빅데이터와 AI를 활용한 관광 경험 분석: 소셜미디어 데이터, 리뷰, 블로그 등에서 관광객들의 의견과 감정을 분석하는 AI 기술을 활용해 관광 경험의 질을 지속적으로 모니터링하는 시스템을 구축할 수 있다. 이는 정성적 가치를 정량적으로 분석할 수 있는 방법이 될 것이다.
제안2 모바일 앱을 통한 실시간 피드백 수집: 관광객과 주민들이 실시간으로 의견을 제시하고 관광 경험을 평가할 수 있는 모바일 앱을 개발하여, 정성적 평가를 체계적으로 수집하고 분석하는 방안을 고려할 수 있다.
관광 정책의 성공을 정량적 지표만으로 평가하는 것은 명확하고 편리하지만, 관광이 지역사회에 가져다주는 진짜 가치를 간과할 위험이 있다. 지속가능한 관광을 위해서는 정량적 지표와 정성적 평가가 함께 고려되어야 한다.
코로나19 이후의 관광은 단순한 '양적 회복'을 넘어 '질적 전환'의 기회로 삼아야 한다. 얼마나 많은 관광객이 왔는가보다, 관광이 지역사회와 환경에 얼마나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는가, 관광객들이 얼마나 의미 있는 경험을 했는가에 더 중점을 두는 정책이 필요하다.
미래의 관광정책은 단순히 많은 관광객을 끌어들이는 것이 아니라, 지역과 환경, 관광객 모두에게 장기적으로 긍정적인 영향을 주는 방향으로 발전해야 한다. 이제 관광의 성과 평가 방식을 다시 생각하고, 정량적 평가와 정성적 평가가 균형 잡힌 조화를 이루도록 노력할 때다.
관광의 본질, 쟁점과 대안은 매주 목요일에 연재하도록 합니다. 본 연재글에 대해 의견이 있으시면 언제든지 댓글로 달아주세요~ 환영합니다.
관광의 본질적 접근도 좋지만, 관광개발이나 기획을 하는 입장에서 필요한 것은 관광사업을 어떻게 진단하고 분석하는 방법이 필요할 것입니다. 매주 월요일에는 관광사업 진단체계모델 이야기도 연재를 하고 있습니다. 많은 관심 부탁드리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