Ⅲ. 관광의 미래는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가
지난 주말, 친구가 제주도 여행 계획을 세운다며 스마트폰을 들이밀었다. 화면에는 AI 여행 플래너 앱이 떠 있었다. "가고 싶은 곳만 장바구니에 담으면 AI가 알아서 최적의 일정을 짜준다"며 신기해했다. 정말로 10분 만에 2박 3일 완벽한 코스가 나왔다. 동선도 효율적이고, 맛집 정보도 풍부했다. 그런데 왜일까? 뭔가 허전했다.
"기술이 완벽할수록, 우리가 놓치는 것들이 더 선명해진다."
이것이 바로 2025년 관광이 마주한 현실이다. AI는 이미 우리의 여행 동반자가 되었다. ChatGPT 유료 버전으로 경복궁을 걸으며 음성으로 대화하면, AI가 카메라를 통해 보고 있는 건물의 역사를 실시간으로 들려준다. 국내에서 다양한 앱은 5G 기술로 고궁에 조선시대 궁중 생활을 AR로 재현해 보여준다. 인천 개항장에서는 AR로 되살아난 과거 인물들이 마치 해설사처럼 그 시대 이야기를 들려준다.
놀랍지 않은가? 몇 년 전만 해도 상상조차 힘들었던 일들이 현실이 되었다. 하지만 동시에 우리는 질문하지 않을 수 없다. 관광의 본질은 과연 무엇인가?
세계 관광산업의 AI 시장 규모가 2024년 29.5억 달러에서 2030년 134억 달러로 성장할 전망이다. 연평균 성장률은 28.7%에 달한다. 이 숫자 뒤에는 무엇이 있을까?
새벽 4시, 갑작스럽게 비행기가 연착됐다는 알림이 온다. 예전이라면 공항 카운터에서 몇 시간을 기다려야 했을 상황이다. 하지만 이제는 다르다. 항공사 AI 챗봇이 즉시 대안을 제시한다. 다음 편 예약, 호텔 연장, 심지어 연착으로 인한 일정 변경까지 자동으로 처리한다. 24시간 내내, 휴가도 없이, 감정의 기복도 없이.
"AI는 완벽한 여행 비서다. 하지만 완벽함에는 항상 대가가 따른다."
2025년의 여행자들은 AI를 통해 사용자의 취향을 분석하고 적합한 목적지를 추천하며 관련 활동을 예측함으로써, 자발적이면서도 최적화된 여행 경험을 제공받는다. 밤바 트래블(Bamba Travel) 같은 AI 기반 여행 플래너는 이미 차세대 여행 계획의 선구자로 자리매김했다.
하지만 여기서 멈춰서 생각해보자. 과연 '최적화'가 관광의 궁극적 목표일까?
부산 국제시장에서 있었던 일이다. GPS는 유명한 씨앗호떡집을 정확히 안내했다. 네이버 마이플레이스 리뷰나 구글 리뷰, 트립어드바이저 평가도 좋았고, AI 추천 맛집 1순위였다. 그런데 길을 잃고 헤매다가 우연히 발견한 골목 안 작은 호떡집의 맛이 더 깊었다. 70대 할머니가 직접 반죽을 치며 들려주는 40년 장사 이야기는 어떤 AI도 대신할 수 없는 '진짜' 여행의 순간이었다.
"가장 정확한 길이 항상 가장 아름다운 길은 아니다."
전라남도 순천 낙안읍성을 가보자. AI 음성 가이드는 정확한 역사적 사실들을 들려준다. 건립 연도, 건축 양식, 문화재 지정 현황까지 완벽하다. 하지만 마을 토박이 할아버지가 들려주는 이야기는 다르다. "옛날 우리 할머니가 여기서 빨래하던 이야기"부터 시작해서 "일제강점기에 숨어살던 사람들의 이야기"까지. 객관적 정보는 아닐지 모르지만, 그 속에는 사람의 온기가 담겨 있다.
제주도 해녀체험은 어떨까? AI가 아무리 해녀의 역사와 문화를 설명해줘도, 실제로 깊은 바다 속에서 숨을 참으며 전복을 따는 할머니의 거친 손을 잡고 체험하는 것과는 차원이 다르다. 바닷물의 차가움, 파도 소리, 해녀 할머니의 웃음소리까지. 이 모든 것이 AI로는 재현 불가능한 '아날로그 관광'의 힘이다.
최신 AI 관광 서비스들은 정말 놀랍다. 2025년 현재, AI는 '무한 메모리(infinite memory)' 기능을 탑재하며 사용자와의 상호작용을 장기적으로 기억하고 축적된 정보를 기반으로 더 나은 맞춤형 서비스를 제공한다. 당신이 커피를 좋아한다는 것을 기억하고, 다음 여행지에서 특별한 커피 체험을 추천한다. 당신이 사진 찍기를 즐긴다는 것을 알고, 골든아워 시간에 맞춰 최적의 포토스팟을 안내한다.
하지만 AI는 당신의 '예측 불가능함'을 이해할 수 있을까? 계획에 없던 길거리 공연에 빠져 두 시간을 보내는 즐거움을, 비 때문에 망쳐진 일정이 오히려 더 특별한 추억이 되는 마법을 말이다.
경복궁을 걸어보자. 한쪽에서는 관광객이 AR 앱으로 조선시대 궁중 생활을 체험하고 있다. 스마트폰 화면 속에서 한복 입은 궁녀들이 살아 움직인다. 신기하고 재미있다.
그런데 다른 한쪽에서는 전통 복식을 연구하는 해설사가 직접 한복을 입고 왕의 하루 일과를 설명하고 있다. 같은 내용이지만 느낌이 전혀 다르다. AR 속 가상 인물은 완벽하지만 차갑다. 반면 해설사의 설명에는 숨결이 있고, 열정이 있고, 때로는 실수도 있다. 그리고 바로 그 '불완전함' 때문에 더욱 인간적이고 기억에 남는다.
이것이 관광의 핵심이다. 정보의 전달이 아니라 '경험의 공유'다.
"완벽한 계획의 반대편에는 완벽한 우연이 있다."
그렇다면 AI와 아날로그 관광은 대립할 수밖에 없는 운명일까? 아니다. 가장 아름다운 관광의 미래는 둘이 조화롭게 어우러지는 데 있다.
강릉 커피거리를 생각해보자. 디지털 주문 시스템으로 편리하게 주문하지만, 바리스타가 직접 손님과 이야기하며 그날의 기분에 맞는 원두를 추천한다. 기술이 효율성을 담당하고, 사람이 감성을 더한다.
인천 개항장에서는 AI 설문을 통해 개별 취향에 따른 맞춤형 여행코스를 추천받을 수 있고, AR과 VR로 시간여행 콘텐츠를 즐길 수 있다. 동시에 과거 실존 인물들이 AR로 재현되어 마치 해설사처럼 해당 장소에 얽힌 이야기를 설명한다.
이것이 바로 '하이브리드 관광'의 모습이다. AI가 정보와 편의를 제공하고, 인간이 감동과 교감을 선사한다.
전통적인 관광이 모두 사라질까? 그렇지 않다. 오히려 기술이 발전할수록 사람들은 더욱 '진짜'를 찾게 된다. 이미 그 신호들이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다.
템플스테이 같은 디지털 디톡스 여행이 인기를 끄는 이유는 무엇일까? 편의점에서 바로 살 수 있는 간편식이 넘쳐나는 시대에 왜 사람들은 시골 할머니의 손맛을 찾아 몇 시간씩 차를 타고 갈까?
"기술이 모든 것을 해결해줄수록,
사람들은 해결되지 않는 무언가를 더욱 간절히 원한다."
지리산 둘레길을 걷는 사람들을 보라. 스마트폰 GPS로 길을 찾을 수 있지만, 굳이 이정표를 보며 천천히 걷는다. 빠른 교통수단이 있지만, 며칠에 걸쳐 걸어서 산을 돈다. 효율성이 아니라 '과정 자체'에서 의미를 찾는 것이다.
그렇다면 AI 시대에 관광의 역할은 무엇일까?
첫째, AI는 '수단'이지 '목적'이 아니라는 점을 명확히 해야 한다. 관광의 궁극적 목적은 새로운 경험, 문화 교류, 자아 성찰이다. AI는 이를 더 풍부하게 만드는 도구일 뿐이다.
둘째, '개인화'와 '획일화'의 균형을 찾아야 한다. AI가 제공하는 맞춤형 서비스는 분명 매력적이다. 하지만 모든 것이 개인 취향에 맞춰지면, 우연한 발견의 기쁨이 사라진다. 때로는 예상치 못한 경험이 가장 소중한 여행의 선물이 되기도 한다.
"진정한 여행은 목적지에 도착하는 것이 아니라, 길에서 길을 잃는 것이다."
2035년의 관광은 어떤 모습일까?
AI 에이전트가 당신의 전담 여행 비서가 되어, 실시간으로 날씨와 교통상황을 분석해 일정을 조정한다. AR 글래스를 쓰고 걸으면 모든 건물과 거리에 역사적 정보가 오버랩된다. 언어 장벽은 완전히 사라져, 세계 어디를 가도 현지인과 자유롭게 소통한다.
하지만 동시에 사람들은 더욱 '아날로그적 경험'을 추구할 것이다. 스마트폰을 끄고 떠나는 여행, 계획 없이 발길 닿는 대로 걷는 산책, 현지인의 집에서 함께 식사하는 홈스테이. 기술과 인간미가 공존하는 여행이 일상화될 것이다.
AI는 관광을 더 편리하고 효율적으로 만들었다. 하지만 관광의 본질인 '사람과 사람의 만남', '문화와 문화의 교류', '예상치 못한 경험의 기쁨'을 대체할 수는 없다.
미래의 관광산업은 AI의 정확성과 인간의 감성이 조화를 이루는 방향으로 발전해야 한다. 기술이 제공하는 편의성을 누리면서도, 사람만이 줄 수 있는 따뜻함과 즉흥성을 잃지 않는 것. 이것이 바로 우리가 추구해야 할 관광의 미래다.
"가장 스마트한 여행은 가장 휴먼한 여행이다."
관광은 단순한 이동이 아니다. 삶의 확장이다. AI가 그 확장을 더욱 풍부하게 만들되, 확장의 주인은 여전히 사람이어야 한다. 앞으로 10년, 우리는 기술과 인간이 함께 춤추는 아름다운 관광의 무대를 만들어가야 한다.
그리고 그 무대에서 진정한 주인공은 바로 '관광객'도 'AI'도 아닌, '여행하는 인간'이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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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회부터는 관광의 미래를 제시해 보고자 한다. 장기적인 관광이 나아가야 할 지점에 대한 고민점을 제시하고자 한다. 그 첫 번째는 인구감소와 관광이다.
"관광이 인구감소 시대에 지녀야 할 대안"
관광은 과연 인구감소 시대에 어떠한 역할을 해야 하는가. 지방소멸을 관광이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가. 이에 대한 고민점을 함께 풀어보도록 한다.
그리고!!!
드디어 새로운 진짜 대한민국의 시대가 열렸다. 기회가 되면 이재명 대통령 시대, 관광의 본질에 대해서도 이야기해보고자 한다.
관광의 본질, 쟁점과 대안은 매주 목요일에 연재하도록 합니다. 본 연재글에 대해 의견이 있으시면 언제든지 댓글로 달아주세요~ 환영합니다.
관광의 본질적 접근도 좋지만, 관광개발이나 기획을 하는 입장에서 필요한 것은 관광사업을 어떻게 진단하고 분석하는 방법이 필요할 것입니다. 매주 월요일에는 관광사업 진단체계모델 이야기도 연재를 하고 있습니다. 많은 관심 부탁드리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