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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재거니 Mar 06. 2024

필리핀 베이비시터

필리핀 세부는 처음이다. 그렇게 여행을 많이 다녔지만 내가 아는 세부는 어린 자녀들 데리고 바닷가 리조트에서 휴양하는(아니면 스쿠버다이빙하는) 곳이라고 생각했기에 올 생각 해본 적 없었다. 그러나 어린 두 아이가 딸린 딸과의 여행지를 찾다 보니 오게 되었다. 바닷가 리조트가 어떤 곳인지는 안다. 뜨거운 태양(별로 좋아하지 않는다)이 내려 쪼이고, 모씨(모래와 모기)들과의 전쟁을 치러야 하고, 리조트의 숙박비와 비례하는 터무니없이 비싼 음식료 값을 지불해야 한다.


세부에서 딸이 fun diving을 해야겠단다. 10년 전에 남동생과 둘이 세부에 와서 함께 오픈워터 다이빙 자격증을 땄는데, 그새 남동생은 다이빙마스타가 되었고, 자기는 두 아이의 엄마가 되었다. 다이빙마스타인 동생과 물속에 들어가야겠단다. 이런 기회 평생 쉽지 않다며... 할머니 할아버지에게 두 아이를 맡기고...(사위는 직장 때문에 함께 하지 못했고, 아들이 조인했다.)


내가 기겁을 하며 반대했다. 여섯 시간 동안 애들 못 본다고...


베이비시터를 고용해 다섯 살 도민이를 시터에게 완전히 맡기고, 할머니가 두 살도 안된 도은이를 봐주면 나는 베이비시터를 감독만 하면 되니까 자기는 다이빙하러 가겠단다. 다이빙 전 날 메신저를 열심히 주고받더니 남자 베이비시터를 구했단다. 8시간 하루에 700페소(17,500원)란다. 이곳 세부에서 베이비시터를 고용하는 한국 엄마들이 아주 많단다. 용감한 한국 엄마가 두 아이를 데리고 혼자 세부에 왔단다. 도착 다음 날부터 베이비시터 두 명을 고용해서 아이들을 각각 맡기고, 엄마는 다이빙하고 마사지도 받고 했단다.


베이비시터를 한국에서 예약하고 올 수 있단다. 인터넷 카페에 능숙한 베이비시터들의 연락처가 전부 있단다. 이 유명한 시터들은 자신이 일이 있으면 다른 사람을 기꺼이 소개해 준다고 한다. 큰 리조트의 베이비시터들은 서로 대부분 알기 때문에 함께 수영장이나 해변에서 공동으로 봐주기도 한단다. 베이비시팅을 전업으로 하는 시터들은 등에 자신의 이름과 카카오톡 아이디를 새겨 넣은 티셔츠를 입고 일한다고 한다. 엄마들이 관심 있게 보다가 잘하는 시터들에게 개인적으로 연락할 수 있다. 그래서 그런지 세부 오는 비행기에 어린아이들이 참 많았다.


에릭이란 25살 필리핀 청년을 리조트 로비에서 만났다. 몸에 여기저기 문신은 있지만 선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수영장에서 바로 도민이랑 놀기 시작했다. 나는 선베드에서 둘이 노는 것을 지켜보고 있었다. 한 이삼십 분 놀더니 다른 수영장으로 옮기겠단다. 이 리조트에는 세 개의 수영장과 비치가 있다. 옮겨도 좋다고 했다. 놓고 간 에릭의 짐은 하얀 티셔츠와 가슴이나 허리춤에 차는 작은 가방이 전부다. 핸드폰조차 없다. 결혼해서 아들도 있다는 에릭은 핸드폰 하나를 아내와 공용으로 사용하는데 오늘은 아내가 핸드폰을 갖고 있단다. (무척 알뜰하게 살고 있거나 무지 힘들게 살고 있거나...)


연락처도 없고, 어제 저녁에 연락이 닿아 오늘 처음 본 필리핀 청년과 내 손주 도민이가 눈앞에서 사라졌다. 청년의 짐이라고는 셔츠와 작은 손가방이 전부다. 갑자기 불안해졌다. 치안이 안 좋기로 유명한 필리핀에서 30분 전에 처음 본 필리핀 청년과 도민이가 눈앞에 없다.


내가 이렇게 선베드에 계속 누워있어도 괜찮은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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