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재거니 Mar 07. 2024

아들과 대화(?)

필리핀 세부의 리조트 비치에서 저녁노을이 장관이다.


태양이 열일하고 퇴근하는 광경은 많은 사람을 설레게 한다. 근사한 많은 사진들과 영상이 이 광경을 붙잡아두기 위한 노력의 산물이다. 곧 35살이 되는 아들과 단 둘이 이 광경을 보고 있다. 둘 모두 손에는 맥주캔을 들고 있다. 붉게 물든 서쪽 하늘을 보며 내가 먼저 대화를 시도했다. 항상 그렇다. 아들과 대화는 힘들다.( https://brunch.co.kr/@jkyoon/612 )


"와우! 하늘이 장관이네. 아들! 그렇지?" 당연한 것을 굳이 동조할 필요 있을까?

침묵이 흐른다.


"와! 이런 저녁노을을 바닷가에서 젊은 연인들이 보고 있으면 무슨 생각이 들까?"

침묵이 흐른다.


"가슴이 설레지 않을까? 이 순간을 함께 한다는 것이 대단한 인연이란 생각이 들지 않을까? 넌 그런 경험 많잖아. 허구한 날 바다에서 사니까. 난 그런 경험 별로 없어서 궁금하네... 경험을 공유하는 것은 좋은 일이야. 얘기 좀 해봐. 여자 친구랑 바닷가에서 저녁노을을 함께 보면 무슨 생각이 드는지..."

침묵이 흐른다. 대꾸할 가치가 없다고 생각하는지도 모른다.


"남자는 그런 생각이 들 것 같아. 이 여자의 일생을 책임지겠다고 하면 이 여자가 평생 나를 인정하고 존중해 주며 행복하게 살 수 있을까? 없을까? 혹시 더 좋은 여자를 만날 기회를 내가 차버리는 것은 아닐까?

여자는 그런 생각이 들 것 같아. 혹시 이 남자가 결혼하자고 하면 할까? 말까? 이 남자가 과연 평생 내게 헌신하면서 내가 낳게 될지도 모를 아이들에게도 충분히 좋은 아빠가 되어 평생 나와 아이들을 지켜줄 수 있을까? 혹시 더 근사한 남자를 만날 기회가 내게 오지 않을까?

아들 어때? 그렇지 않을까? 내 생각에 동의해?"

침묵이 흐른다. 말도 안 되는 소리 하고 있다고 하지 않는 것을 보니 어느 정도는 동의하고 있는 듯도 한데...


"남자는 여자에게 인정과 존중을 요구하고, 여자는 남자에게 헌신을 요구한다던데..."

https://brunch.co.kr/@jkyoon/545

드디어 아들이 한마디 했다.



"맥주 다 마셨으면 들어가자!"


p.s. 저녁노을이 장관인 시간이 세부 모기들의 저녁 만찬 시간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필리핀 베이비시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