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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재거니 Mar 26. 2024

부모님과 헤어지는 중입니다.

'부모님과 헤어지는 중입니다.'


브런치스토리를 산책하다가 아주 우연히 눈에 들어온 문장이다. 단행본으로 출판된 책의 제목이기도 하다. 멀쩡한 부모님과 자신의 의지로 헤어지는 중이라면 무척 도발적인 얘기다. 부모가 자식에게 무슨 큰 잘못을 저질렀기에 부모를 자신의 의식에서 지우겠다는 것일까 궁금했다. 아니면 지금 막 작고하신 부모님을 현실세계에서 떠나보내는 중이라면 가슴이 먹먹해지는 흔한 이야기일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알코올 중독 아버지와 가스라이팅하는 어머니, 나쁜 부모로부터 나를 찾기 위한 해방일지'라는 부제를 보니 부모를 떠나보내는 진부한 이야기는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자 읽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 왜냐하면 나는 나쁜 부모가 좋은 부모보다 더 많다고 생각한다. 내가 생각하는 나쁜 부모와 이 책을 쓴 저자의 나쁜 부모가 같은 것인지가 궁금해졌기 때문이다.


알코올 중독(알코올 의존증)이 무엇인지는 모든 사람이 알고 있다. 그렇지만 알코올 중독인 부모 밑에서 살아내야 하는 자식의 힘듦에 대해서는 살아보지 않고는 잘 모른다. 알코올 중독인 부모 밑에서 성장한 자식은 둘 중의 하나라고 생각한다. 자신도 알코올 중독이 되거나 술에 대해 결벽증을 갖거나... 폭력적으로 변하는 알코올 중독은 사회적 문제를 일으키지만, 폭력적이지는 않은 추태, 중언부언을 비롯한 소위 주사라 일컫는 증상에 대해서는 이 사회가 매우 관대했다고 생각한다. 술이 문제지 사람이 문제는 아니라고, 또는 술 좋아하는 사람치고 악한 사람 없다느니 하면서...


돌아가신 내 아버지 역시 알코올 중독이었다. 반주를 당연하게 생각하셨으니. 그렇지만 아버지는 은퇴하기 전에는 낮술은 안 하셨다. 거의 매일 저녁 회식과 반주를 하셨지만 낮술은 안 하기에 자신은 알코올 중독은 아니라고 주장하셨다. 그렇지만 은퇴 후에는 낮술도 하셨다. 폭력적인 알코올 중독이 아니었기에 그렇게 불편하지는 않았다. 나 역시 저녁에 만찬(고기나 생선회)을 하는 경우에는 반주를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35살이 되는 내 아들도 마찬가지다. 술은 그렇게 나쁜 것은 아니라고 생각하며 성장했고 양육했다.


가부장적 사회에서는 알코올 중독이 주로 남자에게 해당하지만, 지금은 남녀평등사회로 이행하고 있는 중이라 이즈음은 여자에게도 알코올 의존증이 발생한다. 알코올 중독은 자신의 의지로 벗어날 수 없는 병이라 치료를 받아야 한다. 그렇지만 술을 좋아하는 많은 사람들이 나이 들어 체력이 크게 떨어지거나, 다른 죽을병이 생기면 자연스레 끊기도 한다. 내 아버지처럼...


가스라이팅 범죄가 이즈음 제법 발생하여 많은 사람들이 가스라이팅이란 용어에 익숙해져가고 있다. 가스라이팅은 타인의 심리나 상황을 교묘하게 조작해 그 사람이 스스로를 의심하게 만듦으로써 타인에 대한 지배력을 강화하는 행위라고 정의된다. 가정, 학교, 연인, 직장, 군대 등에서 발생한다.

 

가정의 경우 부모가 자녀를 지나치게 통제하는 경향을 보이고 오히려 자신을 피해자로 만드는 형태 등으로 나타나는데, “다 너를 위해서 하는 말이야.”,  “너는 착한 딸(아들)이잖아.”, “아이고, 다 너를 낳은 내 죄지.”등의 표현이 '가스라이팅'에 해당된다고 할 수 있다. [네이버 지식백과]


"다 너 잘되라고 하는 말이야."란 소리를 부모로부터 듣지 않고 성장한 사람 있을까? 부모가 없지 않고서야 누구나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은 말 아닐까? 그렇다면 모든 부모가 가스라이팅을 하고 있다는 얘기 아닌가?


책의 저자가 아버지와 다투는 것을 보고 있던 어머니가 아버지 편을 들며, " 넌 너무 예민해서 탈이야. 그렇게 예민해서야 어떻게 살겠니?" 하는 장면이 있다. 예민하다는 말을 나도 많이 들었다. 하도 많이 듣다 보니 내 예민함이 나쁜 것일지도 모른단 생각을 한 적 있다. 심지어 그런 말도 많이 들었다.


'모난 돌이 정 맞는다고...'


예민한 것이 나쁜 것이 아니거늘 부모를 비롯한 많은 사람들이 쉽게 이런 말을 한다. 예민한 것은 좋은 특성이라고 생각한다. 남들은 그냥 지나치는 것을 인지하고, 좋은 것에는 크게 감탄하고, 싫은 것은 피할 수 있으니 얼마나 좋은 것인가? 같은 시간을 살아도 남들보다 인생을 더 깊고, 더 넓게 사는 것 아닌가? '매우 예민한 사람들을 위한 책'도 있으니...


'부모님과 헤어지는 중입니다'란 책이 만약 베스트셀러가 된다면 그만큼 이 사회에 나쁜 부모가 많다는 얘기다. 자식이 독립하는 것을 막고 부모에게 의지하도록(역일 수도 있다. 늙은 부모가 자식에게 의존하는) 가스라이팅을 하는 나쁜 부모가 넘친다는 얘기다. 수십 년간 부모로부터 가스라이팅을 당한다면 저자처럼 헤어지기 쉽지 않다. 내 부모를 지금 어르신이 된 내가 평가하듯이 내 딸과 아들은 나를 어떻게 평가할지가 궁금하다. 많은 권고, 충고를 '다 너 잘되라고 하는 말이야.'라고 하면서 그들의 인생에 잘못된 영향을 주지는 않았는지 심히 궁금하다.


결국 좋은 관계를 회복하지 못하고 아버지는 돌아가셨고( https://brunch.co.kr/@jkyoon/126 ), 지금은 연로한 새어머니와도 결코 좋은 관계를 가질 수는 없을 것 같다. 친어머니와도 좋은 관계 맺기가 그리 힘든데...


부모에 의해 내 인생이 좌우되지 않도록 자존감을 회복하고, 자신의 삶에 대한 뚜렷한 주인의식을 가지는 것이 중요하다고 딸과 아들에게 말해주고 싶다.


아들은 내게 이렇게 말할 것 같다.


"얼마 남지 않은 아버지 당신 인생이나 챙겨! 내 인생 관심 갖지 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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