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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재거니 May 20. 2024

신분과 계급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이 시대에 신분과 계급이 존재하고 있는 것 아닐까 하는 궁금증이 생겼다. 신분과 계급에 따라 차별받는다고 느끼면 차별이 신분과 계급의 존재를 증명하는 것 아닐까? 차별을 받고 있다고 느끼면 차별받고 있는 것이다. 아무리 차별하지 않았다고 말해도... 아무리 성희롱하지 않았다고 말해도 상대방의 마음이 불편했다면 성희롱 이듯이...


내가 차별받고 있다는 느낌이 드는 곳은 공항이다.


전용 카운터, 전용 라운지, 짐검사와 출국심사 패스트 트랙, 우선 탑승, 심지어 누울 수 있는 좌석과 값비싼 음식, 비행기에서 먼저 내리기(앞자리라 어쩔 수 없기는 하다), 부친 짐도 먼저 나온다. 돈으로 대우를 샀다고 볼 수 있지만, 항공사 입장으로 보면 돈으로 승객을 차별하고 있다고 보인다. 자본주의에서 당연한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면서, 그렇다면 자본주의에서는 돈이 신분과 계급을 결정하고 있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신분과 계급이 진정 무엇인지 궁금해졌다.


신분은 혈통에 의해 세습되는 것이다. 태어나면서부터 정해지는 것이다. 아버지 어머니의 신분이 세습되는 것이다. 왕족, 귀족, 양반 같은 것이 신분이다. 아직도 상놈과 양반이 다른 형태로 존재하는지, 왕족과 귀족이 레알 존재하는지, 신분이 존재하고 신분에 따라 차별이 있을까? 아직도 왕이 있는 나라에서는 분명 차별이 있다. 왕족은 노동하지 않고도 먹고살 수 있는 것을 보면.


영어로 신분은 'Caste'이다. 카스트제도가 신분제도다. 인도에만 카스트제도가 있던 것이 아니다. 근대 이전에 어디나 카스트제도가 있었다. 국사 시간에 배웠던 신라의 골품제 역시 전형적인 신분제도다. 왕이나 귀족이 있다는 것은 평민과 천민이 있다는 것이다.


신분은 개인의 노력으로 변하지 않는다. 자본주의로의 과도기에 돈으로 양반 신분을 살 수 있는 일도 있었지만 별 의미 없는 일이기도 했다. 신분은 자유민주주의 사회가 되면서 대부분의 국가에서 형식적으로는 사라졌다.


이즈음 회자되는 금수저니, 흙수저니 하는 것이 자본주의 세상에서의 새로운 신분이다. 흙수저가 자수성가하여 금수저 자식을 낳으면 신분이 변하지만 현대 자본주의에서 그런 경우가 아주 드물다. 그래서 거의 신분으로 간주되는 것 아닐까?


계급(class)은 신분과 좀 다르다. 세습되지 않는다. 그렇지만 거의 모든 조직에 계급이 있다. 계급에 따라 책임과 의무가 다르고, 책임에 걸맞은 대우(급여와 예우)가 있다. 승진한다는 것은 계급이 올라가는 것이다. 개인의 노력여하에 따라 승진할 수도, 안 할 수도(못할 수도) 있다. 일반적으로 사회는 승진을 축하할 사건으로 간주한다. 소위 기관장으로 승진하거나 선거에 의해 피택 되면 취임식이란 축하행사가 진행되고 많은 화환과 선물이 쇄도한다. 어린아이의 꿈이 대통령이란 것은 가장 높은 계급이 대통령이라고 아이가 생각한 것이다.


대한민국 헌법 제11조를 보면,

① 모든 국민은 법 앞에 평등하다. 누구든지 성별·종교 또는 사회적 신분에 의하여 정치적·경제적·사회적·문화적 생활의 모든 영역에 있어서 차별을 받지 아니한다.

② 사회적 특수계급의 제도는 인정되지 아니하며, 어떠한 형태로도 이를 창설할 수 없다.

③ 훈장 등의 영전은 이를 받은 자에게만 효력이 있고, 어떠한 특권도 이에 따르지 아니한다.


여기서의 사회적 신분에 대해 학자들 간의 이견이 있지만 사회적 신분이란 모든 신분과 계급을 뜻한다. 즉 법 앞에 모두가 평등하다는 것은 사회적 약속인 법 앞에서는 신분이나 계급에 따른 차별이 없다는 것이다.


군대를 비롯한 모든 조직에는 계급이 당연히 존재한다. 계급에 따라 대우 및 처우가 다르다. 이것을 당연하다고 모든 조직원은 생각한다. 대우와 처우가 다른 것을 차별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공산주의는 이런 대우나 처우도 차별이라고 규정하고 철폐하겠다고 했던 것 아닌가 싶다. 그래서 지구상에서 결국 사라졌지만... 공산주의가 멸망한 것은 인간의 인정욕구를 인정하지 않아 사라졌다고 미국 철학자 Fransis Fukuyama가 그랬다. 공산당이 정권을 잡고 있으면 공산주의인가? 중국, 베트남, 라오스, 북한이 다 공산당이 정권을 잡고 있지만 공산주의는 아니다.


대학교의 교수사회에도 계급이 있다. 정년직 교수와 비정년직 교수(비정규직이라고 보면 맞다), 그리고 계약직에 해당하는 다양한 신분의 교수들(객원교수, 초빙교수, 석좌교수, 산학협력교수 등등)이 있다. 정년직 교수의 계급은 전임강사, 조교수, 부교수, 정교수가 거의 세계공통이었는데, 지금은 전임강사와 조교수가 합쳐져 그냥 조교수라고 한다. 자유와 평등을 지향하는 대학사회에서 이렇게 다양한 종류의 계급을 양산하는 것이 좀 의아하다. 결국은 인건비를 줄이기 위한 제도를 만들어 비정규직과 계약직 교수를 우선 채용한다.


이즈음 회사의 직급은 점점 단순화되는 것이 신기하다. 평사원, 대리, 계장, 과장, 차장, 부장과 임원으로 조직이 커질수록 분화하다가, 지금은 임원(임시직원이란 말도 있다), 팀장과 팀원으로 많은 직급이 사라졌다. 신속한 의사결정과정과 인원 재배치를 용이하게 함이 아닐까 한다.


캐나다에 정착한 어느 중년 남성의 글에서 읽었다. 캐나다에는 다섯 가지 계급이 있다고 한다. 제일 높은 계급은 '여성'. 두 번째는 '장애인과 노약자', 세 번째는 '어린이', 네 번째는 '반려동물', 그리고 다섯 번째 가장 낮은 천민 계급인 ‘남성'이라고. ㅎㅎ


인도를 여행하며 들었던 얘기인지, 인도여행을 위해 인도를 이해하기 위한 책에서 읽은 것인지 기억나지 않지만, 수십 년이 지났는데도 기억나는 이야기가 있다. 인도의 대학교 여자기숙사에서 두 여학생이 대화를 한다. 그런데 좀 이상하다. 보통 대화는 같은 언어를 사용하는 것이 당연한데, 한 여자는 영어를, 한 여자는 힌디어로 말한다. 둘 다 인도의 공용어이기는 하다. 카스트가 낮은 여자는 경어가 존재하지 않는 영어를 사용하고, 카스트가 높은 여자는 하대하는 표현이 있는 힌디어를 사용하고 있는 것이다.


공항에 계급이 존재한다. 이 계급은 철저하게 돈으로 살 수 있다.

Economy class, preamium economy class, business class, first class 등등.


Premium economy가 말이 되나 싶다. 항공사들이 프리미엄 이코노미석을 만드는 것이 대세인 것 같다. 의자만 좀 큰 것을 제공해 비즈니스석과 이코노미석의 중간 계급을 만들고 대우를 차별화한다. 비행기 좌석의 계급은 점점 세분화되고 있다. 이유는 사람들의 선호가 정말 다양하기 때문이다.


남미 대륙의 남쪽 지방을 파타고니아라고 한다. 아르헨티나와 칠레의 남위 60도 이상의 지역을 뜻한다. 정년퇴직을 하면 파타고니아를 단독 배낭여행을 하겠다고 몇 년 전부터 마음먹고 있었다. 파타고니아에 가는 것은 편도 40시간 이상 걸리는 긴 여정이다. 이코노미석은 왕복 250-300만 원 정도인데, 비즈니스석은 왕복 800-1000만 원 정도 한다. 그나마도 스카이스캐너에서 열심히 찾아야 한다. 12시간 이상의 비행을 두 번 연속해서 해야 하는데 이코노미석에서 어르신인 내가 버틸 수 있을지 걱정된다.


아예 포기할까?


자본주의에선 대부분의 갈등이 돈과 관련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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