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식사할 이유가 없다.
오랜만에 대학동기 셋이서 저녁을 했다.
장소가 우리 집 부근이라 걸어갔다. 동기 한 명은 근처지만, 한 동기는 지하철 타고 좀 와야 한다.
저녁 함 먹자 한 것도 나고, 장소도 내가 정했다.
술도 한잔 하며 기분 좋은 저녁 식사였다. 식사를 마치고 자리에서 일어나는 순간, 멀리서 온 친구가 대뜸 오늘 저녁은 각자내기 하잖다. 순간 난 당황했다. 내가 만나자고 약속을 잡았고, 음식점 예약도 내가 했으니 내가 당연히 식사비용을 지불하겠다고 마음먹고 있는데 더치페이하자니...
각자내기 하자고 한 동기는 다국적회사 한국지사장을 제법 오래 하다가 5년 전쯤에 은퇴했다. 지사장 시절 법인카드로 친구들에게 밥 많이 샀다. 그 당시는 자신이 참석한 모임 계산은 자기 몫이라고 생각하는 듯했다. 이제는 법인카드 없으니 각자내기 하자고 하는 것 같다. 이제 밥 좀 얻어먹어도 될 것 같은데...
더치 페이(Dutch pay)는 더치 트리트(Dutch treat)라는 네덜란드 단어에서 유래한 것으로 더치(Dutch)는 네덜란드인을, 트리트(treat)는 한턱내다, 대접하다는 뜻으로 더치 트리트는 한국어로 표현하면 "대접"이라고 할 수 있다. 더치 페이라는 단어는 17세기인 1602년 네덜란드가 아시아 지역 식민지 경영 및 무역 활동을 위해 네덜란드 동인도회사를 세워 영국과 식민지를 경쟁에 나선 것에서 시작한다. 이후 네덜란드와 영국이 식민지 문제로 충돌하여 영국-네덜란드 전쟁을 3차례 치르면서 두 나라 간 갈등이 생기기 시작했다. 영국인들은 네덜란드 사람을 비하하기 위해 네덜란드의 문화인 더치 트리트의 트리트(treat)를 지불하다는 의미의 페이(pay)라는 단어로 바꾸어 사용하기 시작하면서 지금과 같은 더치 페이라는 단어가 생기게 되었다. 국립국어원에서는 더치 페이라는 단어 대신 '각자내기'라는 단어로 순화해 사용할 것을 권장하고 있다. [위키백과]
1988년 서울 올림픽이 열리던 시절, 미국에서 교육받고 귀국한 대학선배가 내가 일하던 부서의 팀장으로 부임했다. 단합을 위해 팀 회식을 정기적으로 하자고 했다. 그리고 회식비용은 각자내기하잖다. 난 회식에 참석하지 않겠다고 했다. 윗사람 하고 식사하면서 더치페이는 공평한 것이 아니라고.
어르신은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른다. 갑자기 돌연사할 수도 있고, 심각한 병을 진단받고 수술후유증이나 항암치료 부작용에 꼼짝 못 할 수도 있다.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른다는 것은 여생이 얼마나 남았는지 모른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할 수 있는 것, 하고 싶은 것에 여생을 집중해야 한다.
내 귀중한 여생을 각자내기하는 모임이나 식사에 사용하고 싶지 않다.
각자내기하는 식사는 내가 대접하는 것도 아니요. 내가 대접받는 것도 아니다. 공평한 것 같지만 조금만 깊이 생각해 보면, 굳이 함께 식사할 이유가 없다.
혼밥이 점점 익숙하고 편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