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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반석 May 25. 2022

Chapter 1 디자이너

BaHn journey :Designer:

Chapter 1 Designer  


최근 글을 쓴 게 Chapter 4이다 보니 나머지 챕터에 대한 부분들에 대한 설명들이 필요할 거 같아,

순서대로 각 챕터별로 어떤 것들을 진행했고, 어떤 경험들을 했는지 글을 써보려고 한다.  

"너의 결과물이 고객을 만날 수 있게 된다면 학생의 자세가 아니라 디자이너로써 임해야 해"

대학 1년 때 선배로부터 들을 말이다. 꽤나 충격이었던 게 이제 대학생이구나라고 생각이 정립되기 전에

넌 프로가 될 수 있다는 말로 들렸다. 내가 만든 결과물이 정말 모든 사람이 사용하는 상품이나 광고에 적용이 될 수 있다고?

이 말 한마디가 대학 생활 전체를 미친 듯이 달릴 수 있게 만든 원동력이 되었다.  

막상 프로로써 자세를 갖고는 싶은데 도대체 몰 어떻게 해야 싶어서 닥치는 대로 책을 읽었고 할 수 있는 모든 걸 하기 시작했다.

첫 번째로 진행한 게 공모전이었다. 이유는 간단했다. 계급장 때고 결과가 나와서.

당연히 알겠지만 공모전에 출품할 경우 내가 몇학년인지 대한 부분은 기입하는 란이 없었다.

운 좋게도 첫 공모전에서 수상을 하게 되었다. 꽤나 크다는 LGAD (지금은 합병하여 HSAD 인 듯?)에서 바로 수상을 하게 되었는데

사람이 한번 조그마한 성공이나 성과를 보면 집착하게 된다는 걸 경험했다. 1학년 중에는 나밖에 없었고 선배팀 중에서도 수상한 팀이 없었다. 어? 이거 몬가 된다! 그때부터 졸업까지 출품은 약 50여 개 수상은 30여 개를 했다.  

공모전 출품은 일상이 되었는데 학교에서 전설처럼 들리는 선배 몇몇이 있었다. 졸업하기 전에 창업을 했는데 엄청 잘 나간다더라

그들의 공통점을 보니 삼성 디자인 멤버십이라는 단체에 학생 때 들어갔는데 전국에서 몇 명 안 뽑고 그 선배들 이후로 5,6년 동안 아무도 안됐다. (그러니 너도 안되니 포기해라라고 돌려서 이야기함)

근데 왜 안 해보고 포기함? 2학년 때 삼성 디자인 멤버십 12기로 합격했다. 그때 당시 시각디자인 파트 7명 제품 디자인 파트 18명 정도가 선발됐는데 경쟁률은 1:70 정도 됐다. 그때 당시 너무 신나서 혼자 점프하다가 자빠져서 다리를 다쳤다... ;;;

왜 이렇게 신났었는지 복기해보면 첫 번째 잘하는 사람들을 만날 수 있다! 두 번째 안된다고 한 사람들에게 증명해냈다! 였던 거 같다.  

역시나 멤버십에는 너무나 뛰어나고 욕심 많은 디자이너들이 즐비했고, 그중에 제일 마음이 맞고 실력이 뛰어난 사람을 만나 졸업 후 챕터 2가 되는 디자인 에이전시를 창업을 같이 하게 된다. (현재 SAIB 대표이사를 맡고 있는 박지원에 대한 설명은 따로 글을 써보려고 한다)  

멤버십 합격 후 2학년 말에 당연히 군대를 가려고 마음먹고 있다가 병역특례 제도를 알게 됐다. (신이시여...)

정보처리기사 자격증과 컴퓨터 교육 관련된 자격증을 따서 수도권 지역 130군데를 지원했다. 100군데 탈락 10군데 면접을 봤다.

다행히 UX에이전시(주. 바이널)에서 모바일 GUI 개발부서에 막내자리로 합격이 되어 3년에 가까운 병특 시절을 보내게 되었다.

지금에서야 웹에이전시의 시장 위상이 예전만 못하지만 그때 당시(2001-2005)에는 프롬, 디스트릭트, 이모션, 바이널 등이 웹서비스의 혁신을 만들었었다. 많은 디자이너와 개발자들이 경쟁적으로 혁신을 만들기 위해서 밤을 지새웠고, 나는 그 자리에서 함께 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매일매일이 너무도 설레었고 자랑스러웠다.   

학교로 복귀하자마자 바로 유학 준비를 했다. 표면적으로는 더 큰 세상과 경험을 얻고 싶다고 이야기하면서 준비를 했지만 솔직히는 학벌을 세탁하고 싶은 마음이 컸다. (우리나라가 얼마나 학벌에서 얻을 수 있는 네트워크와 그 네트워크를 통해서 얻을 수 있는 인사이트, 그리고 레쥬메에서 먹고 들어가는 건 모두가 인정 할꺼다) 영국, 독일, 미국 대학교로부터 합격 통지를 받고 학사 편입을 할지 석사로 유학을 갈지 고민 중에 그때 당시 지원 1순위였던 학교의 학장인 폴랜드의 자서전을 읽게 되었는데 폴랜드가 나와 비슷한 시기 독일의 바우하우스로 유학을 너무나 가고 싶었지만 집안 사정으로 못 가고 뉴욕에서 학사를 마친 이야기를 접하게 되었다. 그리고 폴랜드는 그 학교의 학장이 되었고,

그 학교는 (지금은 모르겠지만) 전 세계 1위 랭크의 학교가 되어 있었다. 여기서 느낀 점은 위대한 사람은 남들이 만들어 놓은 커뮤니티에 속해서 보호받는 게 아니라 스스로가 1등이 되어 자기가 속했던 커뮤니티를 1등으로 만들어 내는구나. 이걸 깨닫고 유학은 바로 접었다.

"내가 잘하면 내가 걸어온 궤적과 커뮤니티가 1등이 된다" (나만의 개똥 철학이다)  

폴랜드는 누구냐면

https://namu.wiki/w/%ED%8F%B4%20%EB%9E%9C%EB%93%9C 대단하신 분이다. 링크 누르고 안 읽을 거 같으니


IBM 디자인 소오름...

모르겠음?


그럼 이거

잡스가 애플 다음에 창업한 회사 넥스트



음 그럼 이것들은?

정말 몰라요....?

아놔 이런 거 보여주면 감흥이 없을 수도 있으니 우리의 큰 형님 위대한 게츠비 말고 위대한 잡스 형이 모라고 했느냐면

잡스형 입에서 완벽한 이라는 워딩이 나오다니...

돌아와서.. 남을 따라가지 않아도 된다. 그건 편해 보이는 거다.

결국 위대한 사람들은 그 길을 개척한 사람들이다.  

From 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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