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리를 추구하는 인생도 멋지지 않아?
로마행 델타항공이 모터음을 내며 인천공항을 천천히 떠나고 있었다. 영호는 아내 정미의 손을 잡았다. 정미의 손은 차가웠다. 그는 두 손으로 차가운 그녀의 양손을 모아잡고 회색의 무릎담요로 단단히 여며 주었다. 그제서야 굳은 얼굴에 미소를 짓고 정미는 영호의 어깨에 머리를 기댔다.
“이제 한국적인 성공의 삶과는 진짜 멀어지는 건가?”
영호의 중얼거림에 정미는 고개를 들고 그의 얼굴을 바라봤다.
“‘성공’이 도대체 뭔데? 세상에 쉬운 일은 없어.”
그래, 누가 시킨 것도 아니고 우리가 선택한 거지. 영호는 담요에 싸인 정미의 손을 꼭 쥐고 고개를 끄덕였다.
로마 환승을 거쳐 포르투 국제공항에 도착했다. 작고 아담한 공항에서 지하철을 타고 ‘트린다지’역에서 내렸다. 알고 있었지만 경사가 가파른 골목길은 생각보다 힘들었다. 영호는 계속해서 뒤처지는 정미를 기다리다가 결국 그녀의 뒤에 가 섰다. 나름 번화한 역 주변을 지나고 작은 골목과 고가도로가 이어진 경사로를 힘겹게 지났다. 구글 지도 위로 점점 가까워지던 거리는 일층에 오토바이 수리점을 둔 낡은 주택 앞에 멈췄다. 군데군데 붙어있는 깨진 노란 타일은 금방이라도 부서져 내릴 듯 아슬해 보였다. 입을 굳게 다문 정미를 보며 영호는 묵직한 문을 탕탕 소리나게 두드렸다.
“그래도, 문은 최근에 수리했나봐. 아주 튼튼한데?”
이베리아 반도의 서쪽 끝 포르투에서, 역시 반도의 끝 부산 출신인 부부의 유학생활이 시작됐다. 포루투갈어 전공인 두 사람은 국비 지원으로 유학을 오긴 했지만 학비와 약간의 실비 이외에 생활비를 마련해야 했다. 집에서 보내줄 수 있는 금액은 거의 없었다. 결혼한 성인이 집안의 지원을 받는 다는 것도 자존심상하는 일이라고 그들은 생각했다. 그러나 자존심 이전에 둘의 집안은 그들의 유학을 보조해 줄 형편이 결코 아니라는 걸 잘 알고 있었다. 유학을 허락한 부모들은 그들의 학자금 대출은 어느 정도 해결해 주었다. 이것만으로도 두 사람은 큰 고마움을 느꼈다.
영호는 한국의 모교와 연계된 현지연구소 일을 잡았고 천이백 유로, 그러니까 한국돈으로 백만원 안팎을 생활비로 쓸 수 있었다. 집세를 내고 나면 육백유로 정도가 남았다.
“포르투는 물가가 싸니까, 충분할거야.”
그러나 생활이라는 건, 거기에 실질적인 비용이 입혀지면 늘 예상을 빗나가기 마련이었다. 공과금 외에 책값같은 꼭 필요한 비용을 빼고 나면 생활은 늘 쪼들렸다. 아직 삼십대 초반인 두 사람은 약간의 궁핍과 모자람은 삶을 더 긴장시킨다고 믿었다.
“빵은 이제 좀 힘들다.”
저녁식사로 사온 통밀과 케일이 든 칼데베르데 수프를 바라보던 영호는 한입 베어문 빵을 접시에 내려놓고 한숨을 쉬었다. 정미는 공연히 미안한 기분이 들었다.
“그럼 한식으로 준비해?”
“음식하랬어? 너도 공부해야지. 뒷바라지 하러 온 거 아니잖아.
그녀의 미안한 표정에 부아가 치민 영호는 퉁명스럽게 덧붙였고, 이내 후회했다. 입술을 꾹 다문 정미의 손을 잡았다. 일단 이 좁고 어두운 집에서 나가 바람을 쐬야 할 것 같았다. 창문을 열면 앞 건물의 성인용품점 네온등이 꽉 차는 곳, 오토바이 수리점의 매연이 창틀을 시커멓게 만든 이층 원룸은 그들을 얽어매는 사슬같았다.
부부는 좁은 원룸을 나와 자주 산책을 다녔다. 작고 아담한 도시 포르투는 걸어서 도시 어디든 다닐 수 있었다. 대학과 연구소도 걸어서 십오분 거리에 있었다. 지독한 경사길에 익숙해지기까지는 6개월이 걸렸다. 집을 나와 경사길을 내려가면 큰 대로가 나오고, 트린다지 역과 알리아두 지구를 지나 시청사가 있는 광장에 바로 갈 수 있었다. 시청사앞 맥도날드엔 세계 각지에서 모인 사람들이 북적였다.
봄에 도착한 포르투는 금새 뜨거워졌다. 산책길에 선크림과 선글라스는 필수가 되었다. 상벤투역을 지나 관광객들이 줄지어 있는 렐루서점 앞에 왔을 때 영호는 코스타 카페에 들어가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한잔만 사서 정미의 손에 쥐어 주었다.
“자기 먹어, 난 찬거 안마시잖아.”
“그래도 덥잖아.”
어깨를 한번 으쓱하고 정미는 아이스커피를 받아들었다. 줄을 선 사람들과 기념촬영에 바쁜 해리포터 복장의 점원은 무척이나 피곤해 보였다. 가이드를 따라 줄지어가는 한국인들의 얼굴은 매우 즐거워 보였다. 포르투를 곧 떠날 그들이 부러워졌다. 한시적으로 직항이 열리며 부쩍 한국인들이 많아졌다. 목이 말랐는지 아이스 커피를 거의 다 마신 정미는 텅빈 컵을 쥐고 북적이는 렐루 서점을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조엔 롤링도 생활고가 글을 쓰게 했다지?”
“그래, 하지만 영감을 준 포르투는 그녀가 제일 행복한 신혼을 보낸 곳이야.”
정미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의 손을 잡으며 영호는 다정한 목소리로 속삭였다.
“우리처럼 말이야. 행복한 순간을 많이 만들어야 나중에 어디라도 써 먹을 수 있어.”
구름이 걷힌 하늘에서 뜨거운 햇살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정면으로 볕을 마주한 정미는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써먹기 위해서 행복해야 하는 거야?”
영호의 표정이 굳어졌다. 그녀의 손을 놓고 경사진 언덕길을 멍하니 바라보던 영호는 애써 웃으며 그녀의 어깨를 감쌌다.
그날은 정미가 특식인 김치찌개를 예고한 날이었다.
아무리 빵과 치즈, 햄이 맛있는 곳이지만 역시 한국인에게 한식은, 김치는 늘 그립고 애달팠다. 김치찌개같은 요리는 구하기 힘든 재료로 마음을 먹고 해야 하는 특식이었다. 식탁을 보며 환호성을 지르는 영호를 보며 정미는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일 구했어. 주재원 댁에서 중학생인 아이에게 수학, 국어 가르치기로 했거든. 잘 됐지? 일주일에 두 번 가고, 한 달에 400유로 받기로 했지.”
영호는 고개를 끄덕이며 걱정스런 얼굴로 물었다.
“힘들지 않겠어? 에세이랑 페이퍼 한참 많을 때잖아. 나도 일을 좀 더 할 것 같아. 교수님 번역을 거들기로 했거든. 그게 꽤 짭짤할거야. 페소아 이후에 포르투갈 작가들이 한국에서 인기가 있나봐. 아마 일주일에 두세번은 좀 늦게 올거야.”
“자기야 말로 힘들 텐데. 연구소 일에 번역까지.”
부부는 마주보고 빙글빙글 웃었다. 정미는 신나는 표정으로 냉장고에서 투명한 소주를 한명 꺼내 들었다. 영호는 환호성을 질렀다. 차가운 소주병에 맺힌 물방울이 플라스틱 이케아 식탁위로 뚝뚝 떨어져 고이기 시작했다.
- 저녁에 갈비찜 할거야. 내일 쉬니까 밤새 먹고 마시는 거지.
정미의 짧은 톡에 영호는 미소를 지었다. 갈비찜이라니 생각만 해도 입에 침이 고였다.정미가 하는 음식이 무엇이든 불만은 없었지만 일단 생선만 아니면 된다고 생각했다. 특히 마토지뉴스의 공장에서 출고되는 그것들. 매주 두 번씩 영호는 버스를 타고 마토지뉴스로 향했다. 히베이라 거리를 벗어난 버스는 바로 눈앞에 훅 들어선 도루강가를 빠르게 내달렸다. 이십여분간의 짧은 시간이었지만 포르투에서 늘 걸어다니던 그에게 버스를 타는 일은 새로운 긴장감을 주었다. 그것도 전혀 다른 일을 하기 위해 타는 것이어서 더 그랬다.
‘하미레즈’사. 대표 생선인 정어리를 비롯하여 참치, 대구 등의 통조림을 만드는 회사다. 1853년에 설립된 오래된 곳이지만, 포르투갈에는 뭐, 100년이상의 역사는 거의 기본이다. 그는 물류 창고에서 일을 했다. 한국에서도 해보지 않은 노동을 다른 지구반대편에선 아무 저항없이, 그저 감사히 받아들였다. 주 2회 3시간 근무치고는 페이도 꽤 매우 좋은 편이었다. 손바닥 반절 크기의 얄팍한 통조림이 스무개가 든 박스는 보기보다 훨씬 묵직했다. 근육통이 올 것 같아 일을 마친후엔 늘 ‘파스’냄새 없는 소염제를 발랐다. 한 달이 지났지만 적응하지 못하고 박스를 들고 휘청거리는 자신이 참 실망스럽고 나약하다고 생각했다.
“요즘 피곤하지? 많이 먹어.”
갈비찜 접시를 자신의 앞으로 밀어놓는 아내에게 그는 문득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과외 힘들면 그만두지. 공부도 그렇고, 얼굴도 안좋아.”
“아니야, 배우는 게 더 많은걸. 오랜만에 국어 보는 것도 재밌어.”
S그룹은 일은 많아도 직원들에겐 좋은 회사인 것 같다는 것, 아이가 너무 산만해서 집중시키기 힘들다는 등 아내는 조금 업 된 표정으로 쉴새없이 떠들어댔다. 그 속에 숨긴 희미한 불안의 냄새를 영호는 맡았다.
“S전자 과장이면, 월급도 많겠네.”
불안의 씨앗이 던진 생각을 그만 입밖에 내고 만 영호앞에 정미는 당황한 표정이 되었다. 영호는 괜히 미안해졌다. 잠시 이어진 침묵을 깨고 정미는 갈비찜을 영호 앞으로 조금 더 밀어 놓았다.
“얼른 먹어. 내일도 일 때문에 늦는 거지?”
구름이 깊이 가라앉은 날씨에 항만은 을씨년스러워보였다. 강한 햇볕으로 가려졌던 부서지고 낡은 것들이 흐린 하늘아래선 선명하게 눈에 띄었다. 아직 해가 긴 9월이었지만 어둑한 대기에서 불어오는 바람은 눅눅하게 불길했다.
퍼내고 퍼내도 고이는 샘물처럼 어제 정리한 물류창고엔 어제와 똑같이, 아니 더 많이 박스들이 빼곡하게 들어차 있었다. 샤르데냐, 바칼라우, 에퉁. 깊은 대서양을 떠돌던 정어리와 대구, 참치들은 익히고 조미되어 손바닥보다 작은 통조림에 밀봉된다. 그는 그의 꿈을, 노동을, 미래를 이곳에 밀봉해버렸다고 생각했다. 시체처럼 잠든 내용물은 스스로 밖으로 나올 수 없게 되었다고 그는 생각했다. 캔을 찢어버릴 거대한 외부의 힘이 필요하다.
누가 뭐래도 캔 안에서의 삶이라도 충실히 살아가자고 결심하며 그는 캐리어에 박스를 옮겨 실었다. 그러나 그때 박스에서 빠져나온 정어리 캔이 그의 몸 위로 쏟아지며 그는 바닥으로 쓰러졌다. 소리를 지르며 사람들이 달려왔다. 반대방향으로 꺾여버린 오른쪽 팔은 조금씩만 움직여도 너무나 아팠다. 극심한 통증 속에서도 그의 머릿속을 스친 건 아내였다. 뭐라고 얘기를 해야 할까. 사람들의 부축으로 보건실로 발걸음을 옮기면서도 머릿속의 스토리텔링은 멈추지 않았다.
보건실 문을 열었을 때. 그 스토리는 개연성없이 완결되었다.
간호사에게 치료를 받고 있는 한 여자가 눈에 들어왔다. 붉은 거즈로 소독중인 손은 화상을 입은 듯 붉게 부어올라있었다. 단발머리의 작은 동양인 여자.
아내, 정미 였다.
흐린 하늘이 걷히고 하늘엔 거대한 일몰이 시작되고 있었다. 바다가 보이는 주차장 공터에서 두 사람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녀는 통조림 살균실에서 일했다. 조심히 일을 했지만 누구나 한 두번 겪게 마련인 사고를 당했을 뿐이었다. 그러나, 그것이 바로 ‘오늘’이라는 점에서 누구나 겪는 사고는 아닌 셈이었다. 그건 영호도 마찬가지였다.
붉은색과 보라색, 분홍색, 온갖 색의 향연을 흩뿌리며 바다로 떨어지는 일몰이 마무리되어 갈 때 정미는 그를 향해 돌아서서 미소를 지었다. 태양이 남기고 간 마지막 보랏빛 흔적이 그녀의 머리위에 쏟아졌다. 그 순간 영호는 깨달았다. 통조림 밖으로 꺼내줄 사람이 바로 그녀라는 걸, 그가 갇힌 캔의 따개를 당겨줄 힘은, 바로 사랑이라는 것을.
“진리의 추구는 언제나 가치가 있지. 근데 사랑은 더 가치가 있어.”
잔뜩 감동한 얼굴을 한 그의 말에 정미는 피식 웃으며 대답했다.
“공부건 사랑이건 당장은 돈이 필요하잖아. 그게 가치이고 진리더라고. 앞으로 어떡할 건지 차분히 얘기 해보자.”
그는 그녀를 보며 고개를 끄덕이고 버스 정류장을 향해 걷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