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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APLS 이혜령 Jun 09. 2020

오랜만이야, 방글라데시

2020 방글라데시 ① 다시 방글라데시로

코로나와의 사투가 시작되기 전인 올해 1월, 일주일간의 짧은 일정으로 방글라데시에 다녀왔다. 5년 만에 방문이었다. 올해 다시 방글라데시에 방문할 일정을 계획하며 한국으로 돌아왔는데, 코로나로 인해 다시 기약 없는 약속이 되어버렸다.

코로나가 기승을 부리는데, 방글라데시 여정을 정리하는 게 조심스러워 미루다 보니 어느덧 여름이 되어버렸다. 더 늦기 전에 정리를 해둬야 할 것 같아 사진도 다시 꺼내 보고 여기저기 흩어져 있던 메모를 모았다.



방글라데시에서 귀국을 한 해인 2013년은 방글라데시 독립전쟁 당시 전범자에 대한 재판과 1년 앞둔 총선 등으로 정쟁 갈등이 최고조에 달하고 있었다. 귀국을 앞둔 3월에는 거의 매일 도로 봉쇄와 폭력 시위가 발생해 3월 한 달 동안 출근을 할 수 있는 날이 고작 8일밖에 되지 않았다. 이후에도 정치적인 대립으로 인해 불안한 상황은 지속됐다. 2014년 예정되었던 콕스바잘 아트 페스티벌 역시 불안정한 방글라데시 국내 사정으로 몇 차례 연기가 되다 2015년 하반기에야 진행할 수 있었다. 지금 생각하면 천운이었다. 이때 행사를 하지 못했다면, 연기만 하다 결국은 취소가 되었을 것이다.


아트 페스티벌을 무사히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오자마자, 방글라데시에서 언론인과 외국인을 대상으로 한 테러가 연이어 발생했다. 그리고 2016년 7월 1일, 수도 다카에서 끔찍한 테러가 발생했다. 이 테러로 일본인과 이탈리아인, 미국인과 인도인 등 20명이 목숨을 잃었다. 피해자는 휴일 저녁을 가족과 친구, 지인들과 지내고자 했던 평범한 사람들이었다. 전형적인 소프트 타깃 테러였다. IS가 자신들의 소행이라고 주장했지만, 방글라데시 정부는 방글라데시 내 IS의 존재를 부정했다. 테러가 발생한 곳은 방글라데시에 사는 외국인들이 자주 가던 식당이었다. 이 식당은 치안 상태가 좋다고 생각해오던 대사관 밀집 지역에 위치해 충격이 컸다. 방글라데시에 살고 있는 지인은 테러가 발생하기 불과 며칠 전에도 식당을 방문했었다고 했다.


"우리 중 누구의 일이 될 수도 있었어."

모두가 테러의 희생자가 되지 않았음에 안도하기보다는 희생자가 내가 될 수도 있었다는 충격과 공포에 휩싸였다. 상상하기도 싫지만, 방글라데시를 떠나 있는 나 역시 그랬다. 테러의 잔상과 공포감은 쉬이 없어지지 않았다. 테러와 정치적 갈등으로 인한 정세 불안. 거기다가 2017년 8월에는 이웃 나라인 미얀마에서 발생한 로힝가족에 대한 대학살 사태로 콕스바잘로 70만 명의 난민이 몰려들어왔다. 방글라데시 국내 상황으로 프로젝트는 제대로 된 논의조차 시작하지 못하고 자꾸만 미뤄졌다.


부채감, 두려움, 그리움.... 방글라데시를 생각하면 수많은 감정이 한꺼번에 쏟아진다. 눈에서 멀어지면, 마음에서도 멀어지게 되는 것일까? 자꾸만 미뤄지는 프로젝트로 지쳐 갔고 이대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매해 올해에는 꼭 가야겠다고 맘을 먹고 있었지만 쉽지 않았고 속절없이 다시 시간이 흘렀다. 지지부진했던 방글라데시 프로젝트는 뜻하지 않은 곳에서 기회가 생겼다. 코이카에서 귀국 단원을 대상으로 '고향방문단'이라는 모니터링단 프로젝트를 처음 실시한다고 해서 지원했는데 선발되어 활동했던 지역을 방문하게 된 것이다. 물론 주어진 임무가 있어 개인적인 업무는 보지 못하겠지만, 침체되어 있던 분위기를 전환할 좋은 기회임은 분명했다.


준비 시간이 많지 않았다. 랜딩 비자가 있지만 방글라데시 방문 경험이 있는 사람일 경우 랜딩 비자가 거부될 수도 있어 출국 전에 미리 비자도 받아야 했다. 제주도에 있어 시간이나 비용이 더 들어 항상 여유를 두고 준비하던 나는 틈 없는 일정에 피가 말라갔다. 기간이 짧아 엄청 마음을 졸였지만, 무사히 비자도 받았다. 그사이 사람들에게 연락해 취소와 컨펌을 여러 차례 반복하며 일주일간의 일정을 가득 채워 넣었다. 5년간 수없이 생각했던 여정이 불과 며칠 만에 빠르게 진행되니 실감이 나지 않았다. 경유지를 거쳐 방글라데시행 비행기를 타고서도 '여전히 실감이 나지 않는다'라는 말을 수백 번씩 반복하며 조금씩 그리운 사람이 있는 방글라데시로 향했다.


"5년 만이네. 이렇게 오래 걸릴 줄은 몰랐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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